"숭북 교수 강정구는 평양으로 떠나라."
8일 오후 서울 동국대 본관 앞 광장에서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자유넷, 자유수호국민운동, 나라사랑 등의 보수단체가 집회를 벌인 것이다. 이들이 집회를 연 것은 이날 오후 4시에 같은 장소에서 이 학교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의 첫 '천막 강의'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6·25는 통일전쟁' 주장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강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있으며, 지난달 동국대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직위해제 된 상태다. 이날 천막 강의는 '강정구 교수 탄압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학교 측의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마련한 것.
하지만 강의 예정시간인 오후 4시가 다가오면서 반대집회를 진행하던 보수단체 회원들이 방해 움직임은 보다 가시화됐고, 강의 시작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하려는 학생들과 보수단체 회원들 간에 승강이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강의가 예정돼 있던 천막 안으로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한 학생의 얼굴을 때리는 일까지 벌어지자, 주최 측은 천막 강의를 포기하고 강 교수가 평소 강의하던 사회과학동 안의 한 강의실로 장소를 옮겼다.
***"동국대 학생들은 취업하기 힘들 것"**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측은 확성기로 구호를 계속 외쳐대 본관 앞 광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마침 이곳을 지나던 학생들도 관심을 보였다. 이 학교 건축공학과 4학년 장모 군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실제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 자리에 모인 동국대 학생들을 향해 "수준 미달의 대학생"이라고 비아냥대거나, "취직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해 학생들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강정구 "반일은 괜찮은데, 반미는 왜 안 되느냐"**
강 교수는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강의장소를 옮긴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150여 명의 '자발적 청강생'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강 교수는 '한국사회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주제로 한 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가 시작되자 강 교수는 한반도가 강대국 간의 전쟁에 의해 희생됐던 19세기 말의 청일전쟁과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작전계획 5026, 5027과 같은 미국의 단기적 대북 침략 계획이나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긴장을 조성하는 주요한 원인은 미국에게 있다면서, 미국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기 힘든 한국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반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괜찮은데, 왜 반미를 주장하는 것은 안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강의는 무사히 끝나**
행사 진행을 방해하던 보수단체 회원 중 일부가 강의실에까지 들어와 강의를 들었지만, 막상 강의가 시작된 후에는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이날 강의가 끝난 뒤 공대위 측은 앞으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홍세화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등을 초대해 '사상의 자유'를 주제로 한 천막 강의를 매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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