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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기준, 보다 명확하고 투명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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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기준, 보다 명확하고 투명해져야"

검찰정책자문위 공청회 "기준 공개도 필요"

2005년 말, 검찰 주변에서는 다소 헷갈리는 일이 발생했다. 천정배 법무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지휘를 찬성하던 일부 사람들이 두산그룹 박용성 전 회장 형제에 대한 불구속 결정이 나오자 난감해 했다. '재벌에 대한 봐주기 수사'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원칙이 박 전 회장 등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 것으로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70조는 '구속의 사유'에 대해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로 제한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구속요건이 매우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같은 법 201조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라고 구속의 요건을 추가하고 있어 혼란이 발생한다. 어디에도 우리나라 검찰이나 법원이 구속 이유로 주로 거론하는 '범죄 혐의가 중대해서‥'라거나 '실형이 예상되기 때문에‥'라는 구절은 없다.

다만 '범죄 혐의가 중대할 경우 도주의 우려가 높기 때문에', '실형 선고가 예상되면 도주할 수 있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자체기준에 따라 관행적으로 구속영장 청구와 발부가 이뤄져 왔다.

***"구속의 주체는 검찰…법원의 '실형 선고 가능성' 기준 동의 못해"**

이런 '비법적인'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검찰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허영 명지대 석좌교수)는 27일 대검찰청에서 '바람직한 구속기준의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제시된 해법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사의 효율성과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한 구속기준을 마련해 법제화하고 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석동현 천안지청장은 법원의 영장발부 기준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나섰다. 석 지청장은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월 '실형 선고 가능성'을 구속영장 발부의 기준으로 세웠는데, 이는 재판을 마치고서야 비로소 판단 가능한 것으로 재판과 수사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실형 선고 가능성을 구속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구속영장 심사를 본안심리화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석 지청장은 "구속의 주체는 수사기관이며, 법원의 구속영장은 명령장이 아니라 허가장으로 봐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검사는 수사의 필요에 따른 공익의 요청이 개인의 신체적 자유라는 사익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으로, 구속의 기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검찰이 결정할 문제"라고 못 박았다.

석 지청장은 또한 "최근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마치 구속 자체가 인권침해이며 공권력의 남용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데, 반대로 우리 국민들은 구속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상반된 법감정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민들은 구속되면 범죄자로 낙인…구속사유 구체화·명문화해야"**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구속에 대한 국민들의 이런 모순된 감정을 고려한 구속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구속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급박해지는 상황에 놓이며, 주변에서는 이미 '범죄자'로 낙인을 찍게 된다"며 "불구속 시에는 변호사 비용이 200만~300만 원이지만 구속 시에는 변호사 비용이 1000만~2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검찰이나 법원은 '범죄의 중대성', '공권력의 엄중함 과시', '여론 반영'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발부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데, 이로 인해 충돌이 생기는 것"이라며 △재범의 위험성이 구체적인 경우 △마약과 같은 습관성 범죄 △피해자·증인·참고인 등을 협박하거나 회유할 위험성이 있는 경우 등을 구속사유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이어 "검찰이나 법원은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도주의 우려가 높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자의적 판단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범죄의 종류와 피의자의 태도 등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구체화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현재 검찰과 법원이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이를 적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명문화해 국민적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쳐야 국민들의 구속에 대한 모순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또한 "구속과 불구속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는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의 추가 범죄를 발생할 경우 판검사 책임론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자감시, 조건부 석방 등 중간적 의미의 구속 상태를 설정하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는 수사기관이, 처벌은 법원이‥법원이 양형기준 엄격히 적용해야"**

이어 토론자로 나선 이석연 변호사는 "구속영장 청구시 검찰이 자의적, 선별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는 형평성의 문제가 핵심"이라며 "다만 구속비율이 인권의 척도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과거 엄혹한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의 구속과 고문 등의 기억이 국민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들에게 명확한 구속기준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사법신뢰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특히 "이건희 회장, 김승연 회장 등에 대해서 수사 단계에서 출국금지조차 하지 않아 당사자가 해외로 출국했다가 수사가 끝날 때에야 돌아오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검찰을 신뢰하기 어렵고, 법원도 파업한 노동자에 대해 몇 억 원 손해를 끼쳤다고 실형을 선고하면서 수백억 원을 횡령한 재벌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는 상황에서 사법기관이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역설했다.

김 처장은 "정치인들이나 재벌들에 대한 집행유예 이유를 보면 '고령이어서', '국가경제에 기여해서', '정치발전에 기여해서' 등의 사유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럴 바에야 '나이 얼마 이상', '10대 재벌 그룹'과 같은 이유를 양형 이유로 법제화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보라"고 주장했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 심각…별도 기준 마련해야"**

오영근 한양대 법대 교수는 "검찰 실무 차원에서 반드시 구속해야 할 사유와 꼭 그렇지만은 않은 사유를 신중히 구별해 새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합의나 고소취하를 받아내기 위해 협박과 회유를 하는 사례가 많다"며 "성범죄를 하나의 항목으로 별도의 구속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형 동아일보 법조팀장은 "불구속 원칙은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방어권을 위해 충분히 보장돼야 하지만, 일정 기준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며 불구속 원칙 실현을 위해 양형이 엄격해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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