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등반을 하면서 밝힌 집권 3년 소회 때문에 '개헌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물론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노 대통령의 발언에 크게 동조하지 않아 당장 개헌이 정치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도 이날 오후 이병완 비서실장이 나서서 개헌 추진 쪽으로 기사를 쓸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제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개헌은 5.31 지방선거 이후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이슈다. 노 대통령은 "개헌이 대통령 역량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만 했지, 개헌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노대통령, 개헌 1%도 염두에 두지 않은 발언"?**
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임기 중간중간에 선거가 너무 자주 있고 선거 변수가 끊임없이 국정운영에 끼어들어 국정이 너무 흔들리고 있다"며 "선거 때문에 하던 일도 멈추고 바꿔야 된다"고 현 5년 단임제의 비효율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임기 중에 있는 총선, 지방선거에 대해 노 대통령은 "형식적, 논리적으로는 중간평가이지만 제대로 된 업적평가가 아니라 이미지 평가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심판은 한꺼번에 모아서 딱 진퇴를 결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해, 대안으로 4년 중임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산행 후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개헌을 내가 먼저 들고나갈 생각이 없다"며 "(국정의) 우선순위에 있어 다른 일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정치의 중심 쟁점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개헌론'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려 했다.
노 대통령의 직접 해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발언이 너무 구체적이라 기자들이 '개헌론'과 결부시켜 해석하려 하자 청와대 참모진들이 재차 진화에 나섰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발언은 개헌과 연결된 1%의 의도도 없었다"며 "양극화와 FTA,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 미래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헌문제를 꺼내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라고 해명했다.
***노대통령 "사전에 정리한 발언"**
노 대통령의 발언이 별다른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구체적'이다.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이 시기상으로 거의 겹치므로 개헌을 통해 대선과 총선 시기를 맞추자는 정치권 내 개헌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문제가 제기돼 사회적 공론이 될 경우 부분부분 할 얘기는 있을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결국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개헌을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노 대통령이 이날 '대통령 임기'에 대한 발언에 대해 "(기자들을 만나기로 하고) 너무 아무 얘기 없기는 그래서 생각을 좀 정리해 본 것"이라고 밝혔다. 즉 산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 아닌 '준비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산에서 이 발언을 꺼내기 전 1~2분가량 뜸을 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해찬 총리도 지난 22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총리는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이고 국회의원은 임기가 4년이며 국회의원 선거 사이에 지방선거가 있어 상당히 혼란스럽다"며 "개헌을 통해 정비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개헌은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적용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고 말하기도 했다.
***여야, 지방선거 앞두고 부정적 반응**
노 대통령의 이날 의미심장한 '집권 3년 소회'가 곧바로 개헌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야당 뿐 아니라 여당도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라는 점에서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지금은 지방선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말을 아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발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중어법을 구사하고 있다"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적절한 정략적 접근"이라고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 부대변인은 "국민과 정치권이 개헌 소용돌이에 한번 빠지면 양극화 해소는 물 건너가고 온 나라가 개헌논쟁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적어도 지금 논의할 시점이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개헌은 '선거 책임론'과 '대통령 레임덕'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카드다. 물론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현 정권 임기 하에서는 어떤 개헌 논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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