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늑장 대응과 리크게이트에 시작돼 아브라모프 스캔들, 체니 부통령의 총기오발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온갖 정치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않은 사안에 대한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의 집단반발에 부딪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중동 두바이 국영기업의 미국내 6개 항만 운영권 인수에 대해 상원 원내대표, 하원의장 등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이 일제히 반대 의사를 표멍하고 나선 것.
***"항만 안보는 중대한 사안…계속 추진하면 거래 막는 법안 제출할 것"**
논란은 뉴욕, 뉴저지, 볼티모어, 마이애미, 필라델피아, 뉴올리안스 등 6개 항구의 항만 운영권을 가진 영국의 'P 앤 O(P & O)'사를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영기업인 '두아비 포트 월드(Dubai Ports World)'가 인수하면서 불거졌다.
그러자 우선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항만 안보는 외국 정부의 수중에 맡겨두기엔 너무나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이번 거래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고 백악관을 향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도 이같은 의견에 일제히 동조하고 나선 것. 공화당 소속의 프리스트 상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 "이 거래를 추진하려고 하는 결정은 이 문제에 대해 행정부가 좀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조사를 벌일 때까지 잠정적으로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행정부가 이 거래를 연기할 수 없다면, 나는 이 결정이 좀 더 꼼꼼한 검토를 거칠 때까지 거래를 보류하도록 하는 법을 제출할 것"이라며 부시행정부에 정면 도전했다. 프리스트 원내대표는 자신의 기자회견을 불과 1시간 전에 백악관에 알렸고, 백악관측은 그의 정면반발에 경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공화당 소속의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 의장, 밥 얼리히 메릴랜드 주지사, 조지 파타키 뉴욕 주지사,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등 해당지역 정치인들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특히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21일 밤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킬 적절한 보장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이들의 주장은 중동국가에 미국 항만의 운영권을 맡길 경우 테러 공격 등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반대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9.11테러공격의 범인 중 2명이 아랍에미리트연합 출신이며 이들의 공작금이 두바이에서 돈세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을 구성하는 7개 토호국가 중 하나다.
사실 미국 항만은 이미 30% 이상이 외국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싱가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에이피엘 리미티드(APL Limited)'의 경우 로스앤젤레스, 오클랜드, 시애틀, 그리고 더치 하버, 알래스카 등의 항만을 운영하고 있다.
이같은 외국기업들의 미국 항만 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 이미 높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국가의 해안을 사기업이 운영하도록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아랍권 기업들이 항만운영권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미국의 안보와는 관계 없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아랍권이 소유한 기업들도 다른 무엇보다 주주들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따라서 그들은 항만이나 다른 주요 국가 기반시설의 관리자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의 몇몇 관리들의 말을 빌어 이번 논란에는 아랍권이 항만운영권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의식의 냄새가 난다고 지적했다.
어찌 됐건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거래는 광범위하게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검토를 위해 거래를 막는 긴급 법안을 제출하겠다며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구동성으로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번 사건은 이라크 전쟁 등 미국 정부가 처한 국내외적 상황에 맞물려 부시 대통령을 궁지로 몰고 있다.
***부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같은 공화당 의원들의 집단 반발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거부권 행사 등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21일 콜로라도주 방문 후 공군1호기 상에서 기자들과 만나 "두바이 기업의 인수 작업은 안보 위협이 없는 합법적인 거래"라며 "이 거래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사람들은 왜 중동 기업과 영국 기업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지 나에게 설명해주기를 바란다"고 의원들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행정부의 주의 깊은 검토와 조사 결과 이 거래는 마땅히 진전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그는 "전문가들은 이것이 항만 안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며 "이 거래는 미국이 (어떤 지역의 기업에도) 공정하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신호탄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행정부의 결정을 막기 위한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5년여의 재임기간중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으며 거부권 행사 방침 천명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의 반발에 분노와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의원들의 반발에 불만을 표시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아랍 국가들은 군사전략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안경비대가 해안의 안보를 맡고 있다"며 "그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안보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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