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한나라당 사람들을 만나면 '표정관리' '부자 몸조심'이란 말이 실감난다. 한때 위협적이었던 '노풍'은 이미 꺼졌고, 민주당은 자중지란 '신당' 얘기가 난무한다. 이러니 이회창 후보실은 이미 청와대가 된 듯하다.
"이제 걱정할 것은 우리 실수뿐"이란 얘기가 자연스럽다. 당연히 '표정관리' 해야 하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몸을 상할까 '부자 몸조심'으로 매사 신중하다.
특히 한나라당 사람들이 이렇게 느긋해지는 까닭은 민주당의 '신당' 논란 때문이다. 이들은 신당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신당' 논란이 시끄러울수록 한나라당 승리는 굳어져 간다고 본다.
왜?
***신당 논란은 대선 이후 당권 경쟁일 뿐?**
우선 한나라당 분석가들은 최근 민주당의 신당 논란을 연말 대선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고려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당 논의를 촉발시키는 보다 중요한 배경은 정권교체 이후 야당이 될 현재 민주당의 헤게모니를 누가 쥘 것인가, 그래서 차차기 고지에 누가 얼마만큼 가까이 갈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으로 본다.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해 보자.
현재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특히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중진급 국회의원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이회창 당선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까?
한나라당의 분석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신당을 얘기하는 사람은 다들 대선승리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속셈은 따로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판단이다. 그러니 겁날 게 뭐 있겠는가.
***연출자 없는 신당 논란, 지리멸렬해 질 것**
또 하나 한나라당을 안심시키는 것은 이번 신당 논란엔 연출자가 없다는 점이다.
신당 창당은 과거 DJ의 단골 메뉴였다.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일이 되풀이 될 것이란 지적도 많다. 하지만 이번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는 점이 한나라당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든다.
과거 DJ의 잇따른 신당 창당은 DJ의 카리스마적 지배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 지배력을 바탕으로 어떤 경우는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경우는 힘을 키우기 위해 신당을 만든 것이다.
당연히 그간의 신당 창당은 주도면밀한 전략에 의해 연출되었다. 재야 영입, 젊은 피 수혈, 전문가 시대, 동진정책 등등 여러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이것들 모두 DJ라는 기본 바탕 위에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 그 출발이 다르다. 현재 민주당은 지도력 궤멸상태다. 많은 신당설이 있지만 그 누구도 주도면밀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일단 물꼬가 터지면 언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 신당 논의의 출발은 이인제 의원 등 사실은 탈당해야 할 사람들이 탈당 구실을 못 찾자 신당이라고 말을 바꿔 표현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가 노 후보 지지도가 계속 하락하고, 언론의 부추김이 지속되면서 한화갑 대표도 심지어 노무현 후보조차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대책 없이 신당론에 동참해 버리고 말았다. 이젠 완전히 대세다. 하지만 누구도 다음 수순이 어떻게 될지 이끌어 가는 사람이 없다.
이러니 앞으로 펼쳐질 민주당의 신당 창당이 과연 힘을 보태는 과정이 될 것인지, 아니면 힘을 빼는 과정이 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가. 과거엔 사실 뜯어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양새만은 그럴 듯하게 연출해 낼 수 있었다. '환골탈태'니 뭐니 괜찮은 용어로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재보선 끝나면 노 후보는 또 일종의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이인제 등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박상천 정균환 등은 또 엉뚱한 소리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렇게 조만간 본격화될 민주당의 신당 창당은 지리멸렬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이것이 한나라당을 행복하게 한다.
***한나라당이 보는 세 가지 시나리오**
어쨌든 한바탕 소란 끝에 마감이 되긴 될 터인데, 한나라당 분석가들은 대체로 세 가지 가능성을 본다.
첫째 노 후보가 대세를 잡는 경우다. 개혁신당을 천명하고 당의 다수가 동참하는 형식, 노 후보 주장처럼 외부 인사들이 영입되어 다시 한번 경선을 하고 그때 노 후보가 승리하는 형식 등등 과정은 여러 가지다. 어쨌든 대선은 이회창-노무현 구도로 짜여진다.
이 과정이 정교하게 노 후보 중심으로 연출된다면 파괴력이 클 것으로 우려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노 후보는 더더욱 상처 입고, '노풍' 재점화는 물건너 간다는 얘기다.
둘째 정몽준을 간판으로 내건 신당 창당이 이뤄지고 당의 다수, 그리고 외부세력들이 한데 집결하는 경우다. 노 후보 중심의 개혁신당엔 소수만 남았다가 힘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동시진행될 것이다.
지난 2일 한나라당 당직자회의에선 이런 시나리오가 주로 거론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한나라당이 가장 경계하는 경우라는 얘기들도 떠돈다.
하지만 반대 얘기도 많다. 심지어 "정몽준은 대선 후보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1주일 이내에 사퇴해야 할 것"이란 호언장담도 나온다. 그만큼 약점이 많다는 주장이고, 공격거리를 많이 갖고 있다는 암시다.
정몽준의 복잡한 가계, 개인의 성격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그래서 겁내기보다는 자신 있어 하는 분위기가 더 우세하다.
셋째 민주당이 완전히 두 쪽으로 나뉘어 결국 대선이 삼파전으로 흐르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대선은 하나 마나"라고 입을 모은다.
"반(反)이회창으로 똘똘 뭉쳐도 힘든 판에 둘이 동시에 나서서 어떻게 이긴다는 얘기냐"고 반문한다. 지역구도로 봐도, 후보의 노선과 정책방향을 봐도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즉각 중단하라"는 한나라당, 정말 '중단'하길 바랄까?**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신당 논란에 대해 내놓은 공식적 반응은 별로 없다. 대변인 논평에서 한두번 등장한 정도다.
"개헌과 신당설은 국민에게 외면받고 8.8 재보선 선거 패배가 확실해지자 판을 흔들어보려는 책략", "부정부패와 안보파탄으로 나라가 이토록 어지러운 마당에 오로지 정략에만 혈안인 민주당의 파렴치에 할 말을 잃을 정도", "국민은 현 정권의 어떠한 술수와 사술에도 더 이상 속지 않을 것". 대략 이런 정도다.
그러면서 "즉각 중단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속마음도 중단하길 바라고 있을까.
민주당의 병역비리 공세에 대한 한나라당의 맞대응은 가히 처절할 정도다. 연일 논평을 내고,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조사 등등 법석이다. 의원들이 집단으로 버스 타고 검찰청사를 찾는다. 소송엔 맞소송으로 즉각 맞선다. 어느 것 하나 놓치는 법 없이 초강력 대응한다.
'병역비리 공세'가 겁나기 때문이다. 가만 있다간 상처 입을까 걱정돼서다. 이렇게 한나라당은 위해요인에 대해 당력을 총동원 초강경 대응으로 맞선다.
한화갑 대표까지 나서 신당론을 공식화해도 별 대꾸를 하지 않는 한나라당, 이건 그만큼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반증 아닐까.
한나라당 분석가들을 행복한 미소 짓게 만드는 신당 논란, 이걸 어떻게 빨리 그리고 힘 있게 마무리하느냐가 민주당의 대선승리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