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김근태 고문이 최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판이 잘 안 되면 당신과 같이 강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농담 아닌 압박을 했다. 강 전 장관으로부터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때가 되면 먼저 말씀드리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고 한다.
김 고문은 고건 전 총리에게도 '러브콜'이 극진하다. 강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초대 총리로 몸담았던 '공동책임론'이 그 메시지의 골자다. 고 전 총리로부터는 간접적으로 "여당에서 연락이 오면 만나겠다"는 답을 들었다.
김 고문측은 이런 얘기를 은근히 언론에 흘리며 두 사람의 답을 마치 "반은 넘어왔다"는 식으로 해석해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김 고문은 '반(反) 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위한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이라는 명분으로 이들에 대한 구애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지방선거와 관련해 '강금실 서울시장 만들기'에 '올인'한 듯 비쳐지는 여권의 처량한 모양새만 각인시키는 것 같다. 언제부터 고건 전 총리가 민주개혁세력의 맨 앞줄을 차지했는지도 의아하다.
김 고문이 주장하는 '전선' 개념에선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상품성' 있는 명망가들도 '아군'이다.
요컨대 득표력 있는 정치인은 물론, 시민단체, 노동계, 재계의 대표인사들이 모두 '우리 편'이 (돼야 하)며, 그 구심은 민주화운동의 '훈장'에 빛나는 자신이어야만 '수구 보수' 한나라당과의 결전에서 '필승카드'가 보장된다는 논리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낡은 정치 슬로건"**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권 한 섹터의 당권 및 대권 경쟁을 위해 외부 영역을 '제 멋대로' 끌어들인, 지극히 '구태정치스러운' 접근법이다. 김 고문 본인의 생각인지, 캠프의 '머리 좋은' 참모들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쳇말로 '섹시한' 실명 거론에 정작 당사자들은 불쾌하다는 표정이다.
박원순 변호사는 2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기자의 첫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왜 그렇게 일방적으로 실명을 들어 얘기했는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최근 김근태 고문과는) 만난 적도 전혀 없다"고 했다.
이수호 전 위원장도 "김 고문과 함께 일을 하는 분이 얼마 전 찾아 왔길래 (김 고문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만 듣고 돌려보냈다. 구체적인 얘기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사전에 논의를 한 것도 없었는데, 자기 희망에 따라 실명을 거론한 것은 솔직히 기분이 안좋다. 게다가 나는 전 위원장이고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박 변호사는 "정치권은 항상 시민단체를 들먹여 자기들의 도덕성을 보완 받으려고 한다. 이는 정치권이 매번 하는 방식이다"라고 김 고문 측의 시도를 일축했다. 이 전 위원장도 "외부의 힘을 빌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얇은 생각으로 인기에 영합하려는 것은 낡은 정치 슬로건이다. 안타깝다"고 했다.
당이 맞고 있는 '위기'의 탈출구를 당 밖에서 찾으려는 생뚱맞은 시도라는 얘기다. 시선을 당 밖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당 내 문제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담겨 있다.
***'고장난 차'에 동승하라고?…차 수리가 우선**
순서도 뒤바뀌었다. 당 밖의 유력 인사를 영입하거나 연대를 꾀하는 일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여권 전반의 무기력과 침체의 원인부터 찾고 이를 해결한 뒤에라야 '초청'의 명분이 서는 법이다.
이 전 위원장은 "먼저 당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이런 지리멸렬한 모습이 나타났는지 정확히 분석하고 해결하고 집권여당으로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보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좋은 사람들을 찾는 행위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사람만으로 해결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며 "여태까지 잘못한 것이 임기응변식 말로 해결될 수는 없다"고 했다.
"고장 난 차를 그냥 타고 다니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처한 위기의 원인을 찾고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 김 고문의 말에 대입을 해봐도 현 시점에서의 '러브콜'은 대형사고가 날지 모르는 고장 난 차에 동승하라는 손짓에 불과하다.
결국 김 고문이 고건-강금실-박원순-이수호-문국현 등을 '자의적 연대세력'으로 열거하는 의도는 이들의 '상품성'에 기대 가깝게는 '민주세력 대연합론'이 이슈인 당권경쟁에서 정동영 고문에 대한 비교우위를 내세우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당권 경쟁의 틀을 넘어서 봐도 지방선거 전망, 나아가 정권 재창출 전망이 지극히 침울한 상황에서 급한대로 '표'가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세를 부풀리고 전망도 그럴싸하게 색칠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김 고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표가 된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 것은 개혁도 실용도 아니다. 이는 혼란과 혼선, 무능이다"라고.
황우석 신드롬에 편승한 일부 정치인, 특히 라이벌인 정동영 고문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젠 김 고문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 된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