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연이어 북한 위조 화폐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이 과연 북한의 위조 화폐 제조를 확신하는 구체적 증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위폐 제조'의 구체적 근거에 대해 확인이 더 필요하다며 미국측 주장에 선을 긋고 있으며, 이 논란이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처럼 자칫 북미간의 '진실게임' 국면으로 넘어가 '있다' '없다'만을 반복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 "한국서도 북한 위폐 적발" 주장**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23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포럼에 참석해 "위폐에 북한산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미국 정부가 감정(鑑定) 등을 통해 북한산으로 믿게끔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에서도 올해 초 북한산 위폐가 대량 적발됐다"며 "(북한이) 단순히 위폐 제조를 중단한다는 약속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우리가 검증 가능한 구체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미국 정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의 위폐 제조에 대해 조사해왔고 최근 북의 위폐 제조 및 유통과 연관이 있다고 밝혀진 아일랜드공화국군대를 기소했다"며 "종합해보면 북한이 현재도 위폐를 제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올해 초 발견된 위폐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어디서 제조됐는지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는 기자의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앞서 버시바우 대사는 25일 방영될 SBS '한수진의 선데이클릭' 녹화에서 "물적 증거와 정황 증거, 목격자의 증언 등이 모두 고려되며 증거가 매우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증거 중 얼마만큼을 공개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정부 '버시바우 나설 일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정치·외교적 판단'으로 북한과 미국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미국에 보다 확실한 증거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위폐 유통의 창구라고 지목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과 마카오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이후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버시바우 대사를 내세워 위폐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의 방식에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에 대해 "(위폐 문제는) 과학적, 기술적 추적 과정이다. 그 때는 말이 문제다. 말이 신중해야 한다. 그럴 경우 말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얘기를 하는 순간 문제는 정상적 해결이 아니라 공개수사화 된다"며 버시바우 대사가 아닌 미 재무부가 이 문제를 설명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미 국무부 '위폐 설명회' 비보도 요청 '갸우뚱'**
미국 본토에서도 위폐 관련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 20일 "슈퍼노트(100달러 위조지폐)를 직접 봤다"고 말한 데 이어 데이비드 애셔 전 미 국무부 불법행위 대응팀장은 22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달러 말고도 위안화(중국), 엔화(일본) 등 6자 회담 참가국의 화폐를 위조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구체적 증거'를 묻는 질문에 모두 '증거가 있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하며 구체적인 확인을 회피하고 있다.
또 최근 미 국무부가 관련국 외교관들을 모아 실시했던 '북한 위폐 설명회'에서도 북한이 만들었다고 하는 위폐를 보여주기만 했을 뿐 그것이 북한에서 '제조'된 것인지, 북한이 유통한 게 맞는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무부는 이 모임의 내용을 언론에 알리지 말 것을 요청했는데 증거가 확실하다면 굳이 그같은 요구를 했겠냐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