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프로다. 승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플레이를 할까 고민해야 한다."
일본이 낳은 '야구 천재'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의 말이다. 이치로는 21일 일본 스포츠 전문지 〈닛칸스포츠〉를 통해 "목표는 우승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팬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늘 찾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3월부터 시작되는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일명 야구 월드컵)에서 야구 스승인 고(故) 오기 아키라 감독의 가르침을 재현하겠다는 각오다.
지난 15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사망한 오기 아키라 감독과 이치로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오릭스 사령탑에 오른 오기 감독은 1,2군을 오르 내리던 이치로를 발굴해 시범경기부터 주전 외야수로 중용했다.
오기 감독은 "스즈키라는 네 성(姓)은 야구계에서 너무 흔하다. 어느 팀의 스즈키인지 팬들이 정확하게 기억하기 힘들다"며 이름인 이치로로 선수 등록명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결국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라는 선수 등록명은 이치로(イチロー)로 변경됐고, 이치로는 제2의 야구인생을 구가했다.
이치로는 94년 일본 프로야구 기록인 210안타를 쳐내며 오기 감독에게 화답했다. 자신을 알아주는 오기 감독을 만난 이치로는 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동안 수위타자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오기 감독은 95년 만년 하위팀인 오릭스를 퍼시픽리그 정상에 올려 놓으며 고베 대지진으로 시름에 잠겨 있던 홈팬들에게 희망을 선물했고, 이듬 해에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 냈다.
'승부사' 오기 감독은 팬들에게 어떻게 기쁨을 줄지 늘 고민했다. 96년 일본 올스타전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오기 감독은 마쓰이 히데키(당시 요미우리, 현 뉴욕 양키스)를 상대하기 위해 외야수로 뛰던 이치로를 투수로 내세웠다. 일본 최고의 슬러거 마쓰이와 일본 최고의 교타자 이치로 간의 투타 대결을 팬들에게 선사하기 위한 이벤트였던 셈.
오기 감독의 혜안으로 다시 태어난 이치로는 항상 팬을 위한 플레이에 신경 쓰라는 스승의 교훈을 깊게 되새기고 있다.
"WBC 대회가 축구 월드컵과 같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를 만들려면 첫 걸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식을 갖고 WBC 대회에 임하겠다." 팬들에게 진정한 야구 경기의 묘미를 WBC 대회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치로의 당찬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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