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낙하산 인사 가능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갖춰야 할 최고 덕목은 무엇일까?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중장기적인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CEO형 총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하지만 마땅한 CEO형 총재 후보가 없고 다시 낙하산 총재 시대로 돌아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야구인들은 2002년 월드컵으로 초현대식 구장을 갖게 된 축구계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 프로야구 경기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자면 상품을 파는 가게(경기장)가 너무도 형편없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안방에서 지켜 보는 야구팬들 대부분이 현대식 야구장과는 거리가 먼 국내 프로야구 경기장의 노후성을 꼬집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국시리즈 일정이 뒤로 밀리면 추위에 떨며 경기를 치러야 했던 선수나 시즌 종료 뒤 야구월드컵 예선 등 국제대회를 주최하려 해도 돔구장이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KBO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돔구장 건설 계획이 답보 상태에 빠진 현 시점에서 "돔구장으로 대표되는 야구장의 현대화만 이뤄진다면 낙하산 총재도 괜찮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의 야구인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많은 야구인들은 KBO를 맡아 왔던 낙하산 총재들의 전력 때문에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의 총재 내정설에 반기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낙하산 총재들은 KBO 총재직을 맡으며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등 '사고'를 많이 쳤고, 언제든지 정권에서 부르면 KBO를 박차고 나가 정관계로 향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게 문제다. 낙하산 총재 내정설을 접한 야구인들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낙하산 총재가 와서 짧은 시간에 돔구장 건설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밀어 붙이기' 행정을 폈던 군사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야구 발상지인 미국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는 지금까지 판사부터 장군, 대학총장, 구단주, 야구기자 출신 행정가 등 각계 인사들이 맡아 왔다. 다양한 계층의 인사들이 커미셔너로 일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사가 커미셔너가 됐다는 점은 한국 프로야구에 적지 않은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지난 1966년 메이저리그 선수협회가 철강노조 출신의 노동운동가 마빈 빌러를 영입하자 메이저리그는 3년 뒤 변호사 출신의 보위 쿤에게 커미셔너 직을 허락했다. 앞으로 닥쳐 올 많은 법정 분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쿤 커미셔너가 법정 분쟁에만 치중하다 물러나자 메이저리그는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야구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커미셔너를 찾았다.
1984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된 주인공은 당시 LA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피터 위베로스. 미국 여행업계에서 일대 바람을 일으킨 위베로스는 동구권이 보이콧한 LA 올림픽을 흑자 올림픽으로 만든 CEO형 커미셔너였다. 위베로스는 스포츠협회의 최대 수익원 중 하나인 TV 중계권료 협상 등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메이저리그 살림을 윤택하게 했다. 위베로스가 커미셔너로서 모든 일을 잘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커다란 업적을 남긴 셈이다.
분명 지금 한국 프로야구가 원하는 총재는 '정치논리'를 앞세운 낙하산 총재가 아니라 위베로스 같은 경영 마인드를 갖고 있는 CEO형 총재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프로야구의 수장 역할을 할 수 있는 CEO형 총재는 아직 찾아지지 않고 있다. 그런 마당에 낙하산 총재는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는 형국이다.
구 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하면서도 대안은 찾기 힘든 야구계의 딜레마, 그 앞에서 지금 야구인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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