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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의 댓글 갯수가 궁금하십니까?"

〈기자의 눈〉청와대는 보수언론과의 '시비'를 즐기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까지 국정홍보처에서 발행하는 〈국정브리핑〉에 단 댓글은 모두 40개다. 노 대통령은 지난 14일 공무원들에게 〈국정브리핑〉을 잘 활용하라는 서신을 보낸 이후 집중적으로 댓글을 달았고, 특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도 틈틈이 달았다. 또 국정홍보처는 대통령 사칭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 이외에는 '노무현' 또는 '대통령'이라는 아이디로 댓글을 올리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청와대는 최근 포털사이트 '파란닷컴'에 무료로 컨텐츠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다른 포털에서도 이런 제안이 오면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따라서 청와대는 '파란닷컴'에 컨텐츠를 제공하는 게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으며 일방적인 정권 홍보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요즘 청와대 발(發) 주요 기사들이다. 대통령이 전부 몇 개의 댓글을 언제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달았는지 열심히 취재해 기사를 써야 하는 게 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다. 아무리 사소한 대통령의 언행이라도 '정치적 행위'로 충분히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고 자위하지만 이런 류의 기사를 하루가 멀다하고 열심히 써야 하는 현실은 이제 허탈감을 넘어서 화가 치민다.

***청와대 "〈조선〉은 '문맹', 〈중앙〉은 '3류', 〈동아〉는 '무식'"**

위의 두 사례는 모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이 제기한 이슈다. 〈조선〉, 〈동아〉가 APEC 정상회의 기간인 지난 19일 대통령의 '댓글정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중앙〉은 지난 29일 사설까지 동원해 '파란닷컴'에 대한 기사 제공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처럼 '시비'를 먼저 거는 쪽은 대개 언론이다.

청와대도 지지 않는다. 국정홍보처란 지원군도 요즘엔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

'파란닷컴'과 관련된 〈중앙일보〉 사설에 대해 김종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보면 '세상과 당신 사이, 〈중앙일보〉'라는 슬로건이 있는데, 청와대와 국민 사이에 꼭 〈중앙일보〉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지난 10월 초 한 외신보도와 관련해 〈중앙〉을 "3류 언론"으로 낙인찍었다.

또 지난 15일엔 〈조선일보〉에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다"고 면박을 줬고, 지난 9월 말에는 〈동아일보〉에 대놓고 "무식하다"고 비난했다.

최근엔 〈국정브리핑〉에서도 보수언론과 '전면전'이 벌이지고 있다. "국적 없는 자해보도"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나" "대통령 비판이 유행 상품인가"…. 청와대 못지않게 노골적 표현을 동원해 비난한다.

노 대통령은 국정홍보처장에게 "소신껏 하라"고 격려하고, 〈국정브리핑〉의 언론 비판글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독려할 만큼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 총선 직후와 '연정정국' 제외하곤 '언론 갈등' 부각시켜**

소위 조.중.동이 언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이런 정부의 열성적 태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보수언론과 힘겨루기에 묻혀 정작 훨씬 더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쌀협상 비준안의 국회 통과로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고, 심지어 지난 15일 농민시위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농민 전용철씨가 뇌출혈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황인성 시민사회수석이 개인적 위로 차원에서 조문했을 뿐이다. 이 자리에서 황 수석은 농민들이 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자 "사망의 진상부터 규명하고 난 뒤 사안에 따라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청와대는 황 수석의 조문이 행여나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걱정됐는지 '개인 차원'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또 8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 문제가 달린 비정규직법안의 연내 제정이 사용자 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는데도 청와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물론 법 제정의 일차적 책임은 국회, 더 좁히자면 여당에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국정의 주요 과제로 양극화 해소를 내세웠고,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국민통합연석회의를 구성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대통령이 충분히 다시 한번 의지를 표명할 수 있는 문제다.

이처럼 양극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는 침묵하면서 보수신문의 '시비걸기'에는 열과 성을 다해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양극화'라는 현 사회의 가장 첨예한 사회경제적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면 억울한 누명인가.

돌이켜 보면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점한 제17대 총선을 전후한 시기와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던 시기를 제외하고 현 정부는 늘 언론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도 정치 전면에 말이다.

현 정부를 '좌파 정부'로 규정하는 보수언론과 '갈등'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들을 개혁적인 집단으로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 보수언론의 횡포를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을 피해자화 할 수도 있다. 이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정치력이 부족한 현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을 정치적 반대세력과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언론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또 정부의 '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은 지지층에게는 재결집을 촉구하는 호소로 전환된다.

***노대통령 "딱 하나, 양극화 지수만 나빠졌다"**

노 대통령이 지난 9일 신임 사무관 대상 특강에서 한 말들은 이런 '정치회피'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부추긴다.

노 대통령은 "딱 하나, 양극화 지수는 나빠지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지수들은 다 좋아지고 있다"고 스스로의 국정운영에 대해 평가했다. 물론 '양극화 지수가 나빠지고 있다'는 자성에 방점이 찍힌 말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뭐가 달라졌냐 불만"이라며 "내 처지에서 보면 많이 달라졌고, 그들의 처지에서 보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 큰 틀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 사회 안전망 분야에 예산을 늘리고 다른 분야를 아끼도록 했는데 더 짜낼 게 없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을 바꿀 것처럼 했는데 할 말도 없게 됐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엔 "원칙 없이 공동정부 하면 그 정부는 석달도 못 간다"며 선거연합을 제의한 정몽준 의원 측의 공동정부 제안을 호기롭게 거부했다는 사실을 밝히는가 하면 지난 7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선 "하도 괴로워서 안 받을 줄 알면서도 제안했다"고 고백하고 나섰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외견상 '정치'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도대체 제대로 된 정치인지는 전혀 확신이 가지 않는다.

***'정치 올인'이 아니라 '정치 회피'라는 비판을 잘 되새겨 봐야**

지난 9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판을 통해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 대해 "정치올인이 아니라 정치회피"라고 평가했던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현 정부의 정치회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심적 문제인 경제.사회정책의 이슈들은 근본적으로 갈등적이다. 민주정치의 중심 기능은 바로 이 갈등적인 경제.사회정책을 잠정적인 다수의 형성을 통해 합의적인 결정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동안 모든 민주정부들은 개혁이라는 말을 높이 내세웠지만 이들이 사회갈등의 중심문제를 진정으로 마주한 적은 없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혁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 중심적 사회갈등을 정치의 문제로 다루지 않으려 할 때 실제 정치를 지배하는 담론과 언어는 현실을 초월한 것이 되기 쉽다."

최 교수에 따르면 '중심적 사회갈등'을 정면으로 '정치'로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모두에 소개한 것과 같은 최근 언론과의 말싸움 비슷한 논란들이다.

이런 비판이 억울하다면 청와대는 이제라도 보수언론을 상대로한 '진흙 장난'을 그만 두어야 한다. 설사 보수언론이 싸움을 걸어와도 그냥 내버려두거나, 설사 대응한다 하더라도 좀 격조있게 하는 게 온당해 보인다. 그건 성인군자가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뿐 아니라 정부가 그토록 염려하는 한국 언론의 수준을 동시에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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