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년간 KBO(한국야구위원회)를 이끌어온 박용오 총재가 사퇴했다. KBO는 25일 "박용오 총재가 일신상의 이유로 12월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끝으로 총재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KBO 역사상 첫 민선 총재였던 박용오 총재의 도중하차는 두산그룹 '형제의 난'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까지가 임기였던 박 총재의 사의 표명으로 KBO는 오는 12월 중순 이사회를 개최해 후임 총재의 인선 문제를 논의한 뒤 구단주 총회에서 차기 총재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총재의 취임 이전까지 KBO의 관행이던 '낙하산 인사'가 다시 살아날지, 아니면 구단주 출신의 민선 총재가 야구계의 수장 자리에 오를지가 관심사다. 벌써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의 총재 내정설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더이상 '낙하산 총재'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더욱이 내년엔 국내 야구붐 조성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펼쳐질 예정이라 정계나 관계 출신이 아니라 야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가 총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총재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의 도입, 쌍방울과 해태의 성공적 매각, 경찰청 야구단의 창단, 프로야구 최초의 타이틀 스폰서십 계약과 대한야구협회와의 통합 등 여러 업적을 이뤘다. 하지만 박 총재는 1998년 총재 취임 당시부터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 총재가 취임하기 이전에 일어난 홍재형 총재의 사임은 그렇지 않아도 IMF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프로야구 시장을 위축시켰다. 홍재형 총재는 같은 해 5월 종금사 인허가 문제로 의혹을 사게 되어 사의를 표명했다. 그 뒤 낙하산식 인선에 의해 총재직에 오른 정대철 총재는 9월 경성그룹 특혜대출 비리와 관련해 6천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급기야 구단주들은 간담회 형식으로 모임을 가졌다가 구단주 총회로 회의 명칭을 바꾸고 박용오 OB베어스 구단주를 총재로 선임했다. 하지만 감독관청인 문화관광부는 총재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문화관광부는 '총회의 임원(주로 구단주)도 총재가 될 수 있다'는 KBO의 정관 개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집권층에서 '낙하산 인사'를 하기 위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해 박용오 OB 베어스 구단주에게 힘을 실어줬다.
당시 문화관광부 신낙균 장관은 11월 구단주들과 만나 "KBO 총재는 중립적인 인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용오는 '중립적 인사'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OB 구단주 자리를 친동생 박용성에게 넘겨주고 12대 총재로 취임했었다.
*역대 총재와 재임기간
제1대 서종철 1981년 12월 11일 ~ 1984년 3월 31일
제2대 서종철 1984년 4월 1일 ~ 1988년 3월 31일(임기만료)
제3대 이웅희 1988년 4월 1일 ~ 1991년 3월 31일
제4대 이웅희 1991년 4월 1일 ~ 1992년 5월 26일(대통령 추대위 진출)
제5대 이상훈 1992년 5월 27일 ~ 1993년 7월 12일(구속)
제6대 오 명 1993년 11월 26일 ~ 1993년 12월 20일(입각)
제7대 권영해 1994년 3월 21일 ~ 1994년 12월 23일(안기부장 진출)
제8대 김기춘 1995년 2월 8일 ~ 1996년 6월 8일(국회 진출)
제9대 홍재형 1996년 7월 4일 ~ 1997년 3월 31일
제10대 홍재형 1997년 4월 1일 ~ 1998년 5월 17일(도의적 책임)
제11대 정대철 1998년 5월 18일 ~ 1998년 9월 14일(구속)
제12대~14대 박용오 1998년 12월 8일 ~ 2005년 12월 11일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