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2대0으로 제압한 아드보카트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강한 카리스마로 대표 선수들을 휘어 잡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 준 태극전사들의 집요하고 끈끈한 '압박 축구'와 '협력 수비'를 이끌어 내며 한국 축구를 정상 궤도에 진입시켰다.
이제 독일 월드컵까지 남은 7개월 동안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필요한 건 조직력을 좀 더 가다듬을 수 있는 전지훈련과 전술적으로 효용가치가 큰 멀티 플레이어들의 발견이다.
***히딩크의 모험적 용병술에 숨어 있는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당시 히딩크 감독은 0대1로 이탈리아에게 뒤지자 수비수 2명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빼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등 공격수 3명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히딩크의 용병술은 성공적이었다. 한국은 이탈리아 수비진의 실책을 놓치지 않고 동점골을 터뜨렸고 연장전에서도 안정환이 체력이 떨어진 말디니를 넘어 헤딩슛으로 골든골을 뽑아냈다.
이탈리아는 토티가 퇴장당한 것을 두고 심판 판정의 문제를 제기했고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심판이 한국에게 승리를 선물했다"는 노골적인 제목까지 뽑았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제외한 외신은 히딩크의 손을 들어줬다. 히딩크 감독이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용병술을 구사한 반면 이탈리아의 트라파토니 감독은 창조적 공격수 델 피에로를 빼고 몸싸움에 능한 전사 가투조를 내세우는 소극적 전법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점 때문.
히딩크의 용병술이 이탈리아 전에서 대성공을 거둔 배경은 유상철에게서 찾을 수 있다. '진공청소기' 김남일과 함께 월드컵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대활약한 유상철은 수비의 핵 홍명보가 차두리로 교체된 뒤 중앙 수비수로 위치 변경됐다. 유상철은 중앙 수비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고 그의 이런 멀티 플레이어적 능력은 한국의 기적 같은 역전승에 디딤돌이 됐다.
세계적 권위의 영국 축구 전문지 <월드사커>가 한일 월드컵을 결산하는 2002년 7월호에서 유상철을 당당히 베스트 11에 선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베스트 11에는 유상철 외에도 중앙 수비수로 한국의 4강 신화를 진두지휘한 홍명보가 포함됐다.
***유럽 평가전서 재발견된 이을용과 김동진**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미 박지성, 이영표라는 세계적 멀티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다. 이영표가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겸한다면 박지성은 중앙 미드필더에서 윙 포워드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전천후다. 실제로 박지성은 스웨덴 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다 경기 후반 윙 포워드로 뛰었고 세르비아 전에는 차두리, 안정환과 함께 스리톱을 이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미드필더보다 공격수로 뛸 때 더 효과적"이란 진단을 했다. 박지성이 공격수로 나설 경우 중앙 미드필더 요원이 마땅치 않은 대표팀에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세르비아 전에는 돌아온 튀르크 전사 이을용이 중앙 미드필더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이을용은 특유의 정교한 프리킥으로 최진철의 첫 골을 어시스트했고 중앙에서 짧고 정교한 패스로 경기 템포를 잘 조절했다.
이을용의 성공은 향후 박지성의 공격수 기용을 좀 더 편안하게 해줬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을용은 대표팀에서 이영표가 맡고 있는 왼쪽 미드필더 자리도 소화할 수 있어 여러 모로 아드보카트호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각인됐다는 게 축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을용과 함께 또 한가지 중요한 변화는 김동진. 본프레레호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뛰던 김동진은 스웨덴 전부터 스리백을 형성하는 수비수가 됐다. "김동진이 공중볼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공격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분석에 의한 포지션 변경이었다. 수비수로부터의 좀 더 빠른 공격 연결을 강조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의중을 읽기라도 한 듯 김동진은 공격적 플레이를 매끄럽게 전개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유상철, 송종국, 이영표, 박지성 등을 멀티 플레이어로 훈련시켰고, 자신의 '압박 축구'를 펼치는 과정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히딩크 감독의 멀티 플레이어에 대한 강조는 이탈리아 전 유상철의 활약에서 증명됐던 것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과연 누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행운을 안겨 줄 '제2의 유상철'같은 멀티 플레이어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팬들에겐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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