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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부시…경색된 美 입장 보여준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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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부시…경색된 美 입장 보여준 정상회담

<분석> 미국, 기존 입장만 고수…진전 없어

천년 고도(古都) 경주에서 17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모양새는 참 좋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정상회담, 30분 가량의 공동기자회견, 1시간 반 동안 오찬회동에 이어 30분 동안 불국사를 방문하는 등 장장 4시간 동안의 긴 만남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또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회담에 임했다. 격식을 차린 긴장된 모습보다는 격의 없는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자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매끄럽게 진행된 모양새와 달리 정상회담의 성과는 '참 좋았다'는 평가를 하기엔 못내 아쉽다. 주요 의제였던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에 있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부시, 북한 경수로 제공 시기에 쐐기 박아**

사실 이같은 회담 형식은 지난 16일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과 똑같은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 도쿄가 아닌 교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적지도 함께 방문했다. 이는 국내에선 지지도가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이며, 지난 주 있었던 남미 순방에선 대대적인 반미.반부시 움직임을 맞닥뜨렸던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 이번 아시아 순방을 자신의 외교력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형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부시 대통령의 태도는 심하게 말하면 신경질적이었다. 재선 1년만에 지지율이 35%대로 추락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조급한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 했다.

부시 대통령은 공동회견장에서 첫번째 질문으로 이라크전의 정당성 문제가 던져지자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답했다. 부시 대통령은 "내가 만약 일부러 미국 의회를 오도하고 또 미국민을 오도했다고 한다면 그건 무책임한 발언이다. 그들도 내가 봤던 것과 똑같은 정보를 봤고 그들도 투표를 해서 나를 지지한 바 있다"면서 "물론 질문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고의로 오도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내에서 부시 대통령의 처한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받은 두 번째 질문은 제4차 북핵 6자회담의 합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제4차 6자회담 합의 중 미국과 북한 간에 시각이 가장 엇갈리는 부분은 '경수로 제공' 문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경수로 제공 시기에 대해 쐐기를 박았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의 입장은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적절한 시기란 그들이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게 포기한 후"라고 밝혔다. 북한이 핵 무기와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경수로 제공을 검토하겠다는 미국 정부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기대 이하였다고 평가되는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반기문 외교장관은 이날 오후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의 경수로 관련 발언에 대해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게 아니다"며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을 때도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경수로 제공 시점을 공동 발표했다. 경수로 제공에 대한 협의 시기는 북한이 핵무기와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하고 IAEA로 부터 핵 사찰 받은 후라고 명시했으며 이런 점을 부시 대통령이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부정적 입장 밝혀**

이날 회담 결과 중 또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중한' 태도다. 애당초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회담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된 의견 교환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돌기도 했다.

내년이 노 대통령 집권 4년차이며, 5월에 지방선거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내년 상반기가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또 내년 상반기에 원만히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선 이날 회담에서 어느 정도 의견 교환이 있을 것이라는 건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며 회담 자체를 위해 무리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북쪽에서 북핵문제가 풀리기 전에 만나는 게 유리하다고 할지 아닐지에 대해 저도 확실한 판단을 못하고 있다. 한국이 정상회담 자체를 하나의 성과로 생각하고 너무 거기에 매달렸을 때 여러 남북관계, 북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까지 가능한 발언이다.

***한미, 북한 주민 여건 개선하기 위한 방안 모색키로**

또 이날 회담 후 발표한 한미 공동선언에 따르면 양 정상은 북한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공동의 희망에 입각해 그들의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계속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이는 양 정상이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했다는 의미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링컨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길게 답변했다. 노 대통령에겐 그만큼 곤혹스러운 문제라는 의미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한국도 인권 정책에 관해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남북 간에 정치적으로 합의해서 이뤄내야 할 많은 문제가 있고 남북간 정치적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 '립 서비스'조차 없어**

이날 양국은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등 큰 성과를 낸 듯 하지만 정작 북핵문제와 북미관계에 있어 미국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하다못해 '립 서비스'도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첫 방한 때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도라산역을 함께 방문했다.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비난하는 등 북한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숨기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은 도라산역에 도착해 콘트리트 침목에 'May this railroad unite Korean families'(이 철도가 남북의 가족을 이어주길 기원한다)고 서명하기도 했다.

또 지난 6월 초 워싱턴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미스터(Mr.) 김정일"이라고 불렀다. 당시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불러 북한 측이 크게 반발하고 있던 상태였다.

부시 대통령은 11월 초 남미 순방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또다시 '폭군'이라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이번엔 경수로 제공과 관련된 미국 정부의 확고한 원칙을 재차 밝혔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제4차 6자회담 이후 미국 정부의 경색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모습이 제5차 6자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휴회된 상태에서 북한에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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