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노대통령은 이 책에서 무슨 해답을 얻었을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노대통령은 이 책에서 무슨 해답을 얻었을까?"

<기자의 눈> 책 읽고 고민하는 대통령

미국 출판계에는 '오프라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하는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출판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린다.

노무현 대통령도 책을 많이 권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권하는 책은 대개 베스트셀러가 된다. 25만 부 이상 팔린 이순신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칼의 노래>(김훈. 생각의 나무)가 대표적인 예. 출판사와 대형서점에선 '노 대통령이 권한 책'이라는 점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이 권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을 두고 일각에선 '천박한' 출판문화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읽은 책이 적어도 정치권에서 필독서가 되는 현상에 대해서야 굳이 탐탁치 않게 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청와대 "대통령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 보자"**

지난 11일 오후 3시께 청와대 출입기자실에선 흔치 않은 광경이 연출됐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최근 인상 깊게 읽었다는 책을 한 권씩 나눠준 것.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배기찬 지음. 위즈덤하우스)란 제목의 이 책은 한반도와 그 주변국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난 2000여 년간의 '코리아 흥망사'를 다루고 있다.

청와대는 책과 함께 나눠준 소개의 글에서 "이 책은 100년 전처럼 요동치고 있는 현재의 국제관계와 동북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비전과 수립해야 할 전략, 그리고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며 "이는 대통령의 오랜 관심사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책이 이 시대의 과제에 대해 대통령과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 보자"고 제안했다.

청와대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대통령이 읽은 책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글과 '세종대왕을 다시 읽은 대통령의 생각 한 자락'이라는 글을 통해 두 차례나 이 책을 소개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정책팀장을 맡는 등 노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 노대통령, '대연정' 제안 이후 부쩍 책 많이 권해**

특히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이후 책을 권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난 7월 처음 '연정'을 제안하면서는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강원택 지음. 인간사랑)를 언급했다.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 대한 충격이 컸던 만큼 이 책은 일시적 품귀 현상이 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출판사에선 학술서적인 이 책을 대학원생 수요 정도만 생각하고 최소 분량만 찍었다가 부랴부랴 추가로 책을 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말 중앙언론사 논설.해설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선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쓴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를 탐독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임기단축' '2선후퇴'라는 폭탄 발언을 쏟아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를 대립 구도의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대통령 스스로도 "책 내용이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고 고백했듯 상당히 난해하기도 하다.

대통령이 정치에만 몰입하고 경제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노 대통령은 지난 9월 27일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 외 지음. 부키)를 읽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대통령이 부딪친 장벽의 의미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깊고 생각이 많다는 증거다. 동시에 어떤 책을 읽느냐는 것은 고민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책 읽기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와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는 두 권 다 상당히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넓은 시각으로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일을 하는 자리라고 노 대통령이 최근 강조했지만, 집권 4년차를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도 국정 전반에 대한 마스터플랜 모색에 적합한 듯한 이런 부류의 책을 읽는 대통령의 독서 취향은 우려스럽다.

어쩌면 '여소야대 구도로는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여야 대립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던 노 대통령은 모든 걸 새롭게 쓰고 싶은지도 모른다. 애초 자신이 제시한 비전과 계획대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기엔 장벽이 너무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기엔 노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해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리처드 E. 뉴스타트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책 <대통령의 권력(Presidential Power)>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도덕적 민주적 바탕 위에서 장기적으로 국가발전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정확하게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하며 지도층과 국민이 그것에 동참하도록 강력하게 설득력하는 능력'이라고 봤다. 또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통령의 힘의 근원은 '대중적 지지'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비전과 방향에 따라 제시된 각종 정책 과제들과 관련해 끊임없이 결단을 내리는 자리다. 그게 대중이 한시적으로 그를 정점으로 하는 정치집단에 권력을 부여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권력 집단은 그런 결단과 실천에 대해 4년 또는 5년 뒤에 선거에서 대중을 설득함으로써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과연 노 대통령이 애시당초 자신이 제시한 '길'을 그렇게 충실하게 따라갔고, 그 와중에 현실적 장벽에 부딪쳐 표류하게 된 것일까? 노 대통령 본인이나 국민이나 모두 3년 가까이 되는 현 정부의 권력 운용 양상과 관련해 한번쯤 생각해볼 대목이다.

최소한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 해답이 책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