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거 투표가 실시된 26일은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지 26주년이 되는 날이라는 점과 맞물려 여야의 신경전이 더욱 날카롭게 전개됐다.
***"정체성 논란을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국가관 문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날 오전 지도부 회의에 불참하고 국립 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 참석했다.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지만 자신의 정치행보에 변수가 될 재선거의 투표일에 부친의 묘소를 찾은 것이어서 정치권의 관심이 쏠렸다.
박 대표는 공식적인 추도사 없이 묘소에 헌화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뜻깊은 날이다. 공교롭게 선거와 겹쳐서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짧게 말했다. 박 대표는 국가정체성 논란과 관련해선 "정체성 얘기는 정치적인 얘기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서있는 기반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국가관이 이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남인 박지만씨는 인사말을 통해 "아버지께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토대를 세우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데 대해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께서는 저녁에 가족과 함께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대규모 건설 준공식이나 최전방에서 군사들을 격려하고 오셨을 때 보람된 표정을 잊을 수 없다"며 "산업현장을 다니면서는 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현장에 나온 노동자들을 보면서 가슴아파 했고, 그래서 대기업 야간학교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함께 참석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추도사를 통해 "아직도 어른(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무얼 모르는 못된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총재는 "오늘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뒤에는 박 대통령이 경제기반을 굳건히 닦아놓은 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그 위에서 그들이 마음대로 떠들고 춤을 추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세호 전 육참총장도 추도사를 통해 "과거사 청산을 한다는 이름으로 각하를 폄하하는 세력이 있는데 이는 살모사 같은 배은망덕한 부도덕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것은 조만간 아침이슬처럼 녹아내리고 각하는 영원히 추앙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호 헌정회 부회장도 "영애가 한 정당을 맡아 대선으로 나가는 길에 있다"며 "구국의 전장이 열릴 수 있도록 님이 굽어살펴 주소서"라고 기원했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박 대표 외에 박지만 씨 내외, 박서영 씨 내외, 민관식 전 국회의장, 김학원 자민련 총재,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한선교 의원 등이 참석했다.
한편 박 대표의 현충원 참배에 앞서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박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에 대해선 높이 평가하며 역사적으로도 정당한 평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손 지사는 "나 자신은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고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가난으로부터 국민을 구제한 산업화 세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박 대표, 고이즈미 망동과 닮은 꼴"**
반면 열린우리당은 10.26 사건 26주년과 한나라당의 최근 '색깔론'을 결부시켜 "박 대표는 인권과 민주자유 질서가 말살되던 유신독재의 시절로 이 나라를 되돌리고 싶은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유신정권이 저지른 명명백백한 인권탄압과 독재정치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해명과 사과도 없는 박 대표가 무슨 염치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들먹이는지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사의 과오에 대해 반성은커녕 국가의 정체성을 분열적이고 수구적인 색깔론으로 포장해 국민분열을 획책하고 선동하는 박 대표의 모순적 역사관은 전범에 참배하며 동양의 평화를 외치는 고이즈미의 망동과 정확하게 닮은 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26 이후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분열적 냉전적 사고관이 참다운 민주주의를 옭죄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병헌 대변인도 재선거 관련 논평을 통해 "박 대표가 색깔론과 흑색선전, 대국민 사기협박 등 과거 유신시절의 망령과 구태를 한꺼번에 복원시키려 한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