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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열풍'으로 돌아본 데뷔 첫해 우승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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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열풍'으로 돌아본 데뷔 첫해 우승 감독들

[프레시안 스포츠]선동열 감독 데뷔 첫해 우승의 의미

모래알 같았던 삼성을 1점차 승부에 강한 팀으로 탈바꿈시킨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 해에 우승을 차지했다.

감독 데뷔 첫 해 우승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김응용, 강병철, 이희수에 이어 사상 4번째다. 하지만 다른 3명의 감독은 아마추어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실상 '진짜 초보'인 선 감독의 우승과는 의미가 다르다. 또한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한 1년차 감독은 선 감독뿐이다.

프로야구 역사가 50년인 일본에선 모두 7명의 감독이 부임 첫 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해 세이부를 우승시킨 이토 쓰도무 감독이 있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부임 첫 해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감독이 딱 4명이다.

1961년은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의미있는 해로 통한다. 그 이유는 양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동시에 새내기 감독의 지휘 아래 우승을 차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끈한' 스타트를 끊었던 당시 양키스의 랠프 후크 감독과 요미우리의 가와카미 감독의 운명은 엇갈렸다.

현역 시절 '타격의 신'으로 불렸던 가와카미 데쓰하루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 데뷔한 1961년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팀을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시키고 엄격히 통제하며 모질게 강훈련을 시켰다. 가와카미 감독은 1965~73년까지 요미우리의 9연패를 이런 바탕에서 일궈냈다.

반면 뉴욕 양키스의 랠프 후크 감독은 데뷔한 뒤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지만 가와카미와 달리 양키스 감독으로서는 단명했다. 1963년 월드시리즈에서 숙명의 라이벌인 브루클린 다저스에게 4패를 당했다. 후크는 양키스의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름만 남은 쇠퇴기의 노장들을 데려오는 실수까지 범했다.

야구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둔 삼성이 한국의 양키스나 요미우리와 같은 최고 명문구단으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선수 영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선동열 감독의 지도력까지 맞물려 야구계의 '삼성 천하'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힘을 얻고 있다.

선동열 감독은 스타라 하더라도 '해보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삼성 선수들을 내쳤다. 반면 단점이 있더라도 의지를 보인 선수에겐 기회를 주며 오랜 기간 귀족같이 야구를 했던 삼성 선수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다스렸다. 40여년 전 가와카미 감독이 엄격한 통제로 타성에 젖어 있던 요미우리 선수들을 지휘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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