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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發 '색깔론'으로 날을 지샐건가"

<기자의 눈> "아직 이성을 덜 잃은 청와대가 논란 끝내야"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로 촉발된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극한 대립 상태를 치닫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사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현 정부에 '국가 정체성'을 묻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7-8월에도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정체성' 공방으로 여름을 났다. 이번 '정체성' 논란도 그 때와 똑같은 재탕이다.

***박근혜, 2004년 당 대표 되자마자 '정체성' 논란 촉발**

지난 2004년 7월 당 대표로 선출된 박 대표가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는 현 정부의 '정체성'이었다. 당시 박 대표는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월선 및 군의 허위보고, 의문사위의 간첩 혐의자 민주화유공자 판정 등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 애국세력을 부정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며 '전면전'을 선포했었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는 등 발언 수위를 계속 높여 갔다.

당시 '정체성' 문제 제기는 대중적 인기에 힘 입어 대표로 당선됐지만 당내 기반은 허약한 박 대표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게 지배적 해석이었다. 대여 강경파가 다수인 당내 비주류의 공세가 거세지자 박 대표가 이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서 당내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자 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의 공세에 대해 청와대는 "참여정부는 5·16군사쿠데타로 4·19혁명을 압살한 유신체제, 그리고 유신체제의 아류인 5공 정권과 대척점에 있다"며 한나라당을 '냉전수구세력'으로 모는 '역(逆)색깔론'으로 맞섰다.

박 대표는 '정체성' 논란을 한달 가량 이어 가다가 "이제는 경제에 우선하겠다"며 논란을 종식시켰다. 이는 '정체성' 논란을 계기로 박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비판적 여론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가 촉발한 '색깔론'은 그해 11월 당시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에 대한 '간첩 공세'와 12월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으로 이어졌다.

***1년만에 다시 재연된 '정체성' 논란…청와대 강경 대응까지 똑 같아**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표가 이제 와서 다시 '국가 정체성' 운운하는 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박 대표는 지난해 떨어지는 지지율과 당내 소장파들의 반발에 못 이겨 논란을 중도에 접었기 때문이다.

1년여 만에 정체성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올 '필요'가 생긴 것이다. 지난해 논쟁이 당 대표 취임 직후 당내 입지를 굳히기 위한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번엔 오는 26일 재선거를 앞두고 있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우세한 상태에서 한나라당은 '정체성' 논란을 통해 보수층을 재집결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청와대는 박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 "역사의 시계추를 유신독재로 되돌리자는 것인가"라는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만수 대변인이 발표한 청와대 입장에서 '유신', '냉전', '수구', '독재'라는 용어가 스무 번 넘게 등장했다.

이처럼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든 박 대표가 "현 정부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청와대가 "유신독재로 되돌아 가자는 것이냐"고 반박하는 것까지 지난해 '정체성' 논란 때와 똑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논쟁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게 뻔하다.

***'색깔론' 과정에서 드러난 여야의 모순…"이젠 겸손해지자"**

사실 '색깔론'의 본질은 결론을 기대할 수 없는 '정치공세'라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색깔론이 지겹다"는 비판조차 지겹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언제든 다시 재연됐다가 소기의 성과를 이루거나 역풍에 부딪히면 슬그머니 사라지곤 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강정구 교수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이번 '색깔론'은 여.야 모두의 최근 행보의 모순을 보여준다는 점 정도가 '성과'(?)일지 모르겠다.

우선 '정체성' 논란을 통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서로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양당 간에 정체성의 큰 차이가 없다며 한나라당에 연정을 하자는 노 대통령의 제안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여실히 밝혀졌다. 물론 한나라당의 '거부'로 여권에서도 연정 포기 선언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혼란과 소모적 논쟁이 있었나.

또 하나, 청와대는 18일 박 대표의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포퓰리즘 선동을 계속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민생과 경제를 생각하라"고 촉구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표퓰리즘'과 '민생과 경제를 생각하라'는 것은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공격하던 주 논리였다. 이런 '경제 올인' 요구에 노 대통령은 지난 9월말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과 간담회에서 "경제올인론은 무책임한 선동정치의 표본"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이처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서로를 공격하는 논리로 "민생과 경제를 챙기라"를 동원하는 상황은 역으로 어느 쪽도 민생과 경제를 우선시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최근까지 여권이 제기한 '연정론'으로 날을 지새던 정치권은 이제 야당이 제기한 '색깔론'으로 극한 대립 상태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이번 '정체성' 논란에서 여야는 서로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현재 조금은 덜 이성을 잃은 상태이며 국정 운영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가 먼저 이성을 찾기를 바란다. 한나라당이 먼저 잘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청와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강조했다. 야당의 공격에 곧바로 '유신독재의 망령'이라고 되받아치는 청와대 태도를 보고 누가 '대화와 타협' '상생과 화합'을 떠올릴 수 있겠는가. '연정'에 대한 냉소적 여론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이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지만 그런 여론이 국민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었다는 게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다.

'색깔론'의 또 하나의 본질은 발끈해서 응대해주는 상대가 있어야 더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대다수의 국민들이 더이상 '색깔론'에 현혹되지 않는다.

한 가지 더 바라자면 국민 한 사람의 입장에서 선출된 권력 집단인 한나라당과 청와대 모두 좀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권력은 그렇게 소모적인 정쟁에 쓰라고 위임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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