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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 검찰' '못 믿을 국회' 대신 국민이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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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 검찰' '못 믿을 국회' 대신 국민이 결단 내려야

<기자의 눈> X파일 수사, 언제까지 끌 건가

***"안기부 테이프 수사할 자신 없으면 국회에 넘겨라"**

지난 9월 22일부터 20일간 진행된 국정감사가 11일 종료됐다. 이 기간 동안 국회 법사위 소속 여당 의원들이 검찰이나 법무부에 주로 던진 질의 중 하나가 "검찰은 안기부 시절 도청 테이프 274개를 압수해 놓고도 두 달이 넘도록 수사 검토만 하고 있는 이유는 뭐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과격하기로 소문난'(?) 최재천 의원은 "검찰이 수사할 자신이 없으면 정치권에 테이프를 넘기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기부 X파일'로 촉발된 이번 사건의 무게 중심이 어느새 YS정부 시절의 안기부에서 DJ정부 시절의 국정원으로 옮겨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원 도청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였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불만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 와중에 국정감사 마지막 날 천정배 장관은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했다. 천 장관은 11일 열린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검찰이 아직도 수사검토만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불법 도청에 의해 제작된 테이프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현행법에 저촉된다"며 "국회에서 이 부분 수사를 위한 특별법.특검법을 발의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보며 수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천 장관은 또한 "테이프 내용에 대한 공개나 수사 여부는 국민적 토론을 거쳐 결정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즉 검찰은 안기부 테이프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행법상 내용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법적 제도가 마련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불법적으로 제작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 이론이나, '수사 단서로 삼을 수 있다'는 팽팽한 법리적 논쟁 이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지와 합의'임을 강조하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국회가 안기부 테이프 법안 만들지 않겠다면 수사 여부 조속 결론"**

반면 정치권에서 안기부 도청 테이프 공개 및 수사에 대한 입법 논의를 하고 있는데, 검찰로서는 정치권 보다 앞서 나가 테이프의 수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큰 부담일 수 있다.

천 장관은 "국회에서 안기부 테이프 수사에 대한 법안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테이프를 스스로 공개해버리면 검찰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논의를 기다리지 않은 결과가 된다"며 "국회에서 특별법이든 특검법이든 안 하겠다고 의견이 모아지면 수사 문제에 대해 조속히 결정을 내려 처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정치적, 법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안기부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론 내고 수사에 착수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국회가 속시원히 결단 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속 시원한 해법을 제시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검찰 내부에서 진행되던 '독수독과' 이론과 같은 법리 논쟁이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현 국회의원들도 결국 YS정부나 DJ정부에 기반을 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들이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국정원 도청 수사에 관해 일희일비했던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국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속 시원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에 국민들은 너무나 지쳤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사회적 이슈의 양 자체가 크게 늘었으며, 그러한 이슈들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 역시 높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여당 의원들은 "X파일 사건이 터진지 두 달이 넘었는데…"라고 말했지만, 국정감사 기간 동안 다시 시간이 흘러 'X파일' 사건이 터진 지 벌써 석 달이 되어 가고 있다. 무더위 속에 시작해 어느덧 단풍철을 맞은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이 봐 온 것은 돌아오지 않는 홍석현 회장, 미국으로 떠나버린 이건희 회장, 매일 같이 '검토 중'이라는 검찰, 법안을 발의해 놓고도 진척이 없는 국회,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던 국정원의 충격 고백과 해답 없어 보이는 국회의원들의 말싸움뿐이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기자들의 관심'과 '국민들의 관심'이 상당히 다르다는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솔직히 도청 테이프에 담긴 육성의 주인공들은 새벽시장에서 생선 상자를 나르는 상인들도 아니고, 꼭두새벽같이 등교해 늦은 밤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학생들도 아니고, 월급날만 꼬박 기다리는 평범한 샐러리맨들도 아닐 것이다. 정치, 경제, 검찰, 언론 등 이른바 이 사회를 '주무르는' 권력층의 치열한 아귀다툼이 담겨져 있을 것이 뻔 하다. 테이프 내용이 공개된다고 해서 내가 날라야 할 생선상자의 양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도청 테이프 목소리 주인공들의 '나쁜 짓'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그들은 이미 '나쁜 놈들'이다. 도청 테이프가 공개되지 않고 영원히 검찰 캐비닛 속에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그들은 이미 '나쁜 놈'이다. 단지 그들이 어떻게 '나쁜 짓'을 했는지, 그 '나쁜 짓'에 의해 나라가 어떻게 굴러 왔는지 궁금해 하는 것뿐이다.

또한 그 '나쁜 놈'들이 여전히 이 사회의 권력층에서 활개하고 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도청 테이프의 공개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국민의 대의기관이라고 자처하는 국회가 도청 테이프의 공개나 수사를 거부한다면 지금의 국회 역시 과거의 '나쁜 놈'들과 '한 통속'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도청에 관한 수사는 검찰의 인지 수사이기 때문에 법리적 논쟁 없이 검찰 수사력만으로도 상당 부분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국정원 시절의 도청 내용이 검찰 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 도청에 관한 내용은 천 장관의 말을 통해 '검찰 능력 밖의 일'임이 분명해졌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이끌어내는 국민적 합의가 무엇인지는 두고 보겠다. 부디 단풍철은 지나더라도 첫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결론이 나길 바란다.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정치 신뢰'를 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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