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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억 원대 미술품 사기극 '몸통'을 드러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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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억 원대 미술품 사기극 '몸통'을 드러내야"

[기자의 눈]서울옥션도 책임 못 면할 듯

지난 7개월간 미술계를 들끓게 했던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 58점의 위작 논란에 검찰이 최근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모조리 위작이라는 판정이었다. 검찰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위조범이 위작을 만들어 온 유형을 구명했고 김용수 씨 등이 소장한 두 화가의 작품 2740점을 압수하기까지 했다.

두 화가의 작품을 위작으로 판정한 이번 수사의 파장은 여러가지 면에서 만만치 않다. 우선 미술계 스스로가 큰 몸살을 앓고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자신이 이미 구입한 두 화가의 작품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에 정신이 없고 가뜩이나 얼어붙은 미술품 시장은 더욱 경직됐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일단 불가피한 것으로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대가의 작품을 황학동 시장에서 헐값에 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스스로 화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유혹'이 끼어들 소지를 미술 애호가들과 미술계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 너머에 있다. 검찰이 싯가 3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해방 이후 최대 미술품 사기극의 몸통을 드러내지 못한 대목이다.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예술품 위조범이 이번에 그 꼬리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가 그 대목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검찰도 7일 수사발표에서 "이번 사건의 쟁점은 국내의 김용수 씨 소장품이 일본의 이태성 씨에게 전해져 동인의 소장품으로 둔갑해 판매된 사실이 있는지 여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태성 씨가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한 이중섭 작품 150점에 대해서는 압수 조치를 취하지 않아 두 소장자 간의 관련성을 속시원히 파헤치지 못했다. 이태성 씨는 자신이 소장한 이중섭 작품 150점의 도상조차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 이중섭 화백의 유족들이 약 50년간 소장했다며 올해 4월 서울 한백문화재단에서 전시한 이중섭 작품 가운데 3점이 김용수 씨가 소장했던 작품임을 검찰이 밝혔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김용수 씨의 그림이 이태성에게 넘겨져 유족소장품으로 뒤바뀐 증거는 이미 발견됐다. 지난 4월 22일 이중섭기념문화사업회 유족간담회장에서 문제가 됐던 <물고기와 아이와 게 1>이 좋은 예다. 이 작품은 올해 1월 30일 김용수의 소장 그림으로 SBS가 촬영한 것인데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 유족이 소장했다는 그림에 섞여 있을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미술계가 파악하고 있는 이중섭 화백의 유작은 대략 400점 정도다. 검찰은 지금까지 알려진 이중섭 작품의 두 배가 넘는 994점과 박수근의 나머지 작품에 대한 진위 여부를 가리고 위조단의 커넥션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태성 씨가 내놓은 이중섭 위작품이 서울옥션을 통해 경매에 붙여져 이미 판매됐다는 것도 검찰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지난 3월 서울옥션으로부터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에 대한 감정의뢰를 받고 위품으로 판정했다. 서울옥션은 위품 판정이 난 이후 이중섭 미발표작 8점의 경매와 관련해 여러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판매 중단을 권유 받았지만 경매를 강행해 <개구리와 두 아이>등 4점을 판매했다.

서울옥션은 "경매와 일반 판매를 통해 판 5점 중 4점은 위작 논란이 일면서 모두 환불했고 나머지 1점은 판매 취소가 됐다"고 밝혔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의 경매를 강행한 점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이호재 씨가 서울옥션의 대표 직을 사임한 것으로 그 책임을 다 해소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씨와 서울옥션의 책임 문제는 위조품의 제조 및 유통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그 결과가 나온 뒤 재론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미술계도 반성해야 할 부분은 많다. 매번 미술품 진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발벗고 나서야 할 미술평론가 등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자칫 진위 논쟁에 휩쓸려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미술계가 모두 인정할 만한 미술품 감정기관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감정사들에 대한 자격 조건이 명확하지 않고 감정위원들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제2의 이중섭, 박수근 위작 논쟁이 발생하면 미술계는 또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술계가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진위 논쟁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 국내 미술계에는 적지 않은 미술품 진위 논쟁이 발생했지만 결론이 난 사건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의 수사도 아직은 '미완'이다. 위품과 위품 제작 방식까지 발견됐지만 위조범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미술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검찰이 보강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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