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청와대의 '금산법 내사'는 국민 기만 아닌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청와대의 '금산법 내사'는 국민 기만 아닌가?

<기자의 눈> 시민의 눈초리가 '삼성'에서 어디로 옮아갈까

노무현 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에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의 작성 과정과 관련해, 부처를 명시하지 않은 채 '주의' 조치를 내리는 선에서 정부 차원의 '삼성 봐주기 의혹'을 덮으려 했다.

의혹이 가라앉을지도 미지수지만 주의 조치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련 부처 중 어느 부처에 주의 조치를 내린 것이냐"는 질문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징계나 문책 차원이 아니므로 부처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다소 미진한 측면이 있었다"며 개정안 작성 과정에 분명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면서도 어느 부처의 잘못인지는 묻지 않겠다는 너그러운 모습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금산법 개정안과 관련해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윤증현 금감원장을 질타하던 노 대통령의 태도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재경부, 과연 '실수'로 부칙 부분 빼먹었을까"**

금산법 제24조는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특정 회사의 주식을 20% 이상 소유하거나 5% 이상 소유하면서 계열사들과 함께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은 사전승인 없이 각각 삼성 에버랜드의 지분 25.6%와 삼성전자의 지분 8.55%를 갖고 있으므로 금산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7월 의결한 금산법 개정안은 부칙에 경과규정을 둬서 초과 지분에 대한 강제 처분은 법 개정 이후에만 적용하고 이전에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만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1997년 보유하고 있던 지분인 8.55%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별도 승인 절차 없이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삼성그룹이 삼성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지배구조로 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 부칙은 삼성측에 사활적인 조항이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시정 조치를 명문화 한다는 애초의 개정 취지와 완전히 배치된다"며 "삼성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특히 이 부칙 조항은 지난해 11월 금산법 개정안의 입법예고 안에는 없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삼성 봐주기' 의혹이 제기됐으며, "이런 개정안 마련 과정에 문제가 없었냐"는 게 노 대통령이 내사를 지시한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부칙이 갑자기 끼어든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재경부와 공정위의 단순한 '실수' 차원에서 문제를 덮으려 하고 있다.

문재인 수석은 "재경부가 부처 협의 때 관계부처에 법안을 송부하면서 부칙에 대한 자세한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 실질적인 부처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요컨대, 문제의 부칙 조항이 갑자기 끼어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는데 설명을 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문 수석은 공정위에 대해서도 "부칙 변경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 법안 검토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인 입법 과정에서 (부칙이) 그런 식으로 다뤄지는 게 보통"이라고 해명했다.

정말 그런가. 소가 웃을 노릇이다. 백보 양보해서 부칙이 왕왕 그런 식으로 제대로 검토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치자. 그러나 부칙 중에서도 경과규정이란 대개 법문의 적용을 면제해주거나 예외조치를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법문의 효과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사흘만 일을 해봐도 그런 정도는 다 안다.

그런 마당에 "법안 검토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 수준에서 넘어가려는 것은 그런 정도로 기본이 안 된 행정관료들을 그냥 두고 헐렁헐렁하게 이 정부를 이끌겠다는 의사 표시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기본적이면서도 결정적인 대목에 눈을 감은 관료들에 대해 면죄부를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삼성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라고밖에 할 수 없다.

***청와대, 국회로 '공' 넘겼으나...**

청와대는 또 이날 금산법 개정안을 둘러싼 법리적 논쟁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밝히면서 재경부와 금감위의 주장을 옹호했다.

특히 삼성생명이 제24조 신설 이전에 5%를 초과해 취득.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문제에 대해 "97년 이전에 초과취득.소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서는 97년 부칙의 해석상 승인 받은 것으로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97년 당시 소유비율인 8.55%까지 모두 의결권을 인정할 것인지, 또는 현재 보유비율인 7.25%까지만 인정할 것인지는 논란이 있다"며 청와대 내에서도 상당히 '전향적 차원'의 법리 해석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청와대 또 삼성카드의 삼성 에버랜드 지분 25.6% 보유에 대해서도 여당 안인 "일정 유예기간 부여 후 처분 명령령을 내리는 방안"을 지지했으나, "소급 적용"을 이유로 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이 위헌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공'을 슬쩍 국회로 넘겼다. 노 대통령은 "여러 대안이 입법 정책적으로 검토 가능하므로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최종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재경부와 금감위 등 관련 부처의 의혹과 관련해 본질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발짝 더 나아가 '면죄부'까지 주어놓고 국회에서 논의를 하라는 것은 참으로 괴이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대통령이 관료들에 대해 일갈한 것으로 시민들의 의구심과 분노에 대해 일정부분 카타르시스 시켜줬으니 결과는 이렇게 '핫바지에 방귀 새듯' 적당히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앞으로 이 문제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초리가 삼성에서부터 어디로 옮겨가는지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