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찰청에 대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과 허준영 경찰청장 사이에 '색깔론',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사안의 무게에 비해 김 의원이 던진 질문은 대개 '속이 보이는' 수준이었던 반면 허 청장의 답변은 '작심하고' 정면돌파하는 것이어서 허 청장의 판정승이라는 것이 이 논전을 지켜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행자위 국감장의 김기춘 vs 허준영**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출신인 김 의원은 질의 순서가 되자 가장 먼저 "경찰은 보수, 진보, 전체 국민 중 누굴 위해 일하나. 검찰은 누굴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시나?"라고 허 청장에게 대답이 '뻔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허 청장은 "검경 모두 전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허 청장의 답변을 기다렸다는 듯이 "청장은 오전 질의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검찰은 기득권 세력과 연결돼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는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청장의 소신인가?"라고 발언의 취소를 요구했다.
허 청장은 그러나 "답변의 취지는 검찰은 우리 사회 상층부와 많이 연결돼 있다는 말"이라고 답변 취소를 거부했다.
이에 김 의원은 다시 "검찰은 하층부를 돌보지 않고 상층부를 돌본다는 말인가. 어떻게 경찰청장이 특정 기관을 상대로 어떤 특정 세력과 연계 돼 있다는 발언을 하는가. 청장의 소신이 이런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며 허 청장을 몰아세웠다.
허 청장은 물러서지 않고 "검찰과 (수사권 조정에 대해) 협상하는 과정에서 검찰 기득권의 벽이 두텁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러면 '검찰의 벽이 두텁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김 의원이 거듭 답변 수정을 요구하자, 허 청장은 "'기득권의 벽이 두텁다'고 수정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물러서지 않았다.
***"'호국경찰' 글씨 없앤 것은 호국 의지 없는 것 아니냐"**
"경찰의 총수는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말로 일단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거둔 김 의원은 이번에는 "68년 1.21 사태 때 이를 막다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을 보고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존경의 대상인가, 북의 통일 노력을 방해한 비난의 대상이라고 보는가"라고 최근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을 의식한 질문을 했다. 허 청장은 이에 "(최무식 경무관을) 존경하고 있다"고 짭게 대답했다.
김 의원은 이어 "작년 국정감사 때 경찰청에 왔을 때는 현관에 '호국경찰'(護國警察)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질문하니 '경찰은 호국 경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허 청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허 청장은 "작년에 전임자가 그렇게 얘기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허 청장은 올해 1월 취임했으며, 작년 국정감사 때는 전임자인 최기문 전 청장이 재직 중이었다.
"아, 그런가"라고 다소 머쓱해진 김 의원은 다시 "허 청장은 '호국경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 안 하는가? 오늘 보니 '호국경찰' 글씨를 가리고 무궁화 그림이 걸려 있더라"라고 '호국경찰' 글씨를 뗀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허 청장은 "전임자가 그런 것 같다"고 또 다시 김 의원을 머쓱하게 했다. 문제의 '호국경찰' 글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작품으로, 논란이 일자 최기문 전 청장 시절이던 2004년 말 글씨 위에 무궁화 그림을 덮어 씌운 것이다.
김 의원은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글씨를 뗀 것은) 이제 호국경찰을 안 하겠다는 뜻이다. 매우 적절치 못한 조치다. '호국경찰' 글씨를 가린 경찰을 믿고 우리 국민이 안심할 수 있겠는가"라고 몰아 부치며 "호국경찰의 의지에는 변함없나?"라고 또 다시 '뻔한' 답을 요구했다. 허 처장은 짧게 "네"라고만 답했다.
***"지휘지침에는 왜 '자유민주주의 수호' 없나?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 없는 것 아니냐"**
허 청장이 '호국경찰' 글씨 다음으로 문제 삼은 것은 허 청장의 '지휘지침' 내용. 국정감사가 열린 경찰청 13층 대청마루 대회의실에 액자 형태로 걸려 있는 허준영 경찰청장의 지휘지침에는 '○민생보호와 친절봉사 ○경제살리는 선진질서 ○인류애로써 인권존중 ○조직화합과 사기관리' 등 4가지 항목이 적혀 있었다.
김 의원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실시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라는 국가 방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색깔론'을 제기하는가 싶더니, "경찰청장 지휘지침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라는 말이 하나도 없는데, 이 문구가 빠진 것은 이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에 허 청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별도로 지위지침에 넣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물러서지 않고 "그렇다면 지휘지침에 나와 있는 '민생보호'는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한 것 중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하는 것을 (지휘지침에) 써 넣는 것이다"라며 "이제 체제 수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라며 다시 '뻔한' 답을 요구했다. 허 청장의 답변은 "그렇지 않습니다"로 끝.
***"맥아더 동상 왜 잘 안 지키냐"-"24시간 잘 지키고 있다"**
김 의원은 동료 한나라당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맥아더 동상 집회' 및 최근 각종 보-혁 대결 집회에서 보수 단체에 대한 '푸대접론' 언급도 잊지 않았다. 김 의원은 "8.15 행사 때 친북 좌파 세력을 격리한다면 몰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북의 만행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보수 진영을 격리 조치 했느냐. 참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충돌 예방 차원에서 했다는데, 예방하기 위해서는 진보도 격리해야지 왜 보수 단체만 격리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허 청장의 대답은 "양측을 다 격리했습니다."
김 의원은 공세는 계속됐다. 김 의원은 "경찰이 맥아더 동상을 지키는데 소극적이기 때문에 미국 국회의원들이 결례임에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걸 받고 외무장관이 부랴부랴 동상을 지키겠다고 하는데, 자주외교 국가에서 편지를 받고서야 지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이번에도 허 청장은 "경찰 2개 중대를 24시간 투입해 매일 같이 동상을 잘 지켜오고 있지 않느냐"라고 짧고 자신있게 답했다.
김 의원은 하지만 "요사이 잘 하는 것 같은데, 초기에는 잘 지키지 않았다"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김 의원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적화 통일이 돼 남한은 지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아버지에 아들이 권력을 세습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비참한 나라가 됐을 것"이라며 "유엔군과 국군이 지켜준 자유시장경제의 열매로 인해 북에 때로는 쌀로, 때로는 비료로, 때로는 금강산 관광료로, 때로는 200만kw 전력으로 나눠주고 나눠주기로 돼 있다.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나무를 지키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경찰이 잘 하면 수사권 알아서 줄 것"-"경찰이 검찰보다 더 도덕적"**
김 의원의 질의 마지막은 다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돌아왔다.
김 의원은 "경찰이 수사권 조정 문제 관련 엽서를 집단적으로 보내오는데, 경찰과 군대는 본인들이 원하는 바가 있어도 집단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총, 칼, 몽둥이를 가진 집단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당할 세력이 없다. 청장이 이를 자제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고 말했고, 허 청장도 "공감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수사권 조정은 경찰이 인권 옹호 등에서 검찰보다 나으면 국민들이 알아서 '수사권을 경찰에 주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경찰의 자질을 강화하고 신뢰를 주는 노력을 해야지, 제헌헌법 만들 때 검찰이 운동해서 영장심사권 등을 가져간 것이 아니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하다는 것을 유념하길 바란다"고 우회적으로 경찰의 '자질론'을 지적하며 질의를 마쳤다.
하지만 허 청장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수사권 개혁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의 70~80%의 지지를 받고 있고, 도덕성에 있어서도 경찰이 검찰보다 항상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참조해 주시길 바란다"고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해냈다.
***이영순 의원 "진보세력이 격리대상이냐" 김기춘 의원에게 항의**
한편 김기춘 의원과 허 청장의 미묘한 신경전은 김 의원 다음 질의자인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에까지 넘어갔다.
이 의원은 질의 순서가 되자 "김기춘 의원님의 말씀 중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며 "8.15 광복절 남북공동행사에서 왜 진보 세력을 격리시키지 않았느냐 하시는데, 왜 진보는 그런 행사에서 격리를 당해야만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이에 김기춘 의원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답했고, 이 의원은 다시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남북의 화해 협력은 정부의 방침이기도 하다"고 다시 맞받았다.
하지만 이용희 행자위 위원장이 이 의원에게 "다른 의원 말씀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제지해 설전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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