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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대통령은 혼선을 자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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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노대통령은 혼선을 자초했을까?"

<기자의 눈> '위헌 논란'의 단초 제공한 건 노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왜 8.15 경축사를 통해 '국가 권력에 의한 범죄에 대한 시효 배제' 제안을 했을까.

노 대통령은 하루 뒤인 16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공감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계속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규범을 바로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과거사는 결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에도 살아 있고 미래에도 살아 있는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지난 5월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됐으며, 이 법에 근거해 올 연말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왜 이 시점인가"라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과거사법이 '누더기법'이란 비판이 있지만, 여야 의원 61명이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이므로 지금이 꼭 대통령이 나서서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할 시급한 시점이라고 보이지도 않는다.

특히 법률적 검토를 충분히 했다면 현재 논란의 핵심인 '공소시효 배제' 문제에 대한 위헌 시비는 사전에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진의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경축사 발언이 '위헌 시비'를 낳자 노 대통령은 1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헌 시비를 걸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의도에 대해 아주 유감스럽다"며 위헌 시비가 정략적 차원이라고 일축했지만, 애초에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노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문제 제출하면 여당이 해답 찾고..."**

노 대통령은 "역사의 과오를 돌이켜보며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후일의 경계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자는 뜻에서 지난날의 어두운 이야기로 경축사를 시작하려고 한다"며 과거사 청산 문제를 이번 8.15 경축사의 화두로 삼았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과거사정리기본법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국가권력을 남용한 범죄의 배상과 보상에 대해 민.형사 시효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경제 등 당장의 현안에 대한 언급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가 없었다는 다소 원론적인 비판을 접어두더라도 노 대통령이 역점을 둔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도 적절한 문제제기 방식이었는지 의문이다.

'위헌 시비'라는 또하나의 시끄럽지만 무의미한 논란을 낳았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위헌' 논란에 대해 노 대통령은 16일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형사적 소급 처벌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 "과거사에 대한 형사상 시효 배제는 특수한 경우에 논의될 수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며 위헌 시비가 일 소지가 있었다는 점을 사실상 스스로 인정하며 한발 물러섰다.

사실 이 '위헌 논란'은 청와대 비서진들이 8.15 경축사 원고에 대한 법률적 검토만 제대로 했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오히려 노 대통령의 '공소시효 배제' 발언의 의미에 대해 "과거사 정리의 큰 원칙을 밝힌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사건도 시효 배제 또는 조정의 대상이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가 논란이 일자 "형사적인 시효의 배제나 조정 문제는 원칙적으로는 장래에 관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 비서실조차 대통령의 발언의 의미를 사전에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증거다.

청와대 내 상황이 이러하니 여당은 말할 것도 없다. 연정 제안, 공소시효 배제 등 최근 사안과 관련해 여당은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는 커녕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하는 모양새다. 여당 일각에선 "대통령이 문제 제출하면 여당은 열심히 해답 찾는다"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 17일자 보도)

이같은 혼선은 8.15 경축사가 전적으로 노 대통령의 '구상'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여름 휴가에서 8·15 경축사 구상에 들어가 사실상 연설 기조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김병준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청와대 비서실 내 연설문 태스크포스가 꾸려져 초고가 작성됐다. 광복절을 3-4일 앞두고서는 노 대통령이 직접 경축사 집필에 들어가 최종 원고는 14일 낮에야 나왔다. 참모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설익은 '연정' '공소시효 배제' 제안, 도대체 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참모들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을지라도 기념사 초고가 사전에 청와대 내의 일정 범위에서 공람됐다면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는 참모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원천적인 문제의 소지는 대통령에게 있었다. 기념사 초고의 공람 여부를 넘어서서 청와대 내에 공감대가 형성된 문제였다면 참모진들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정' 제안도 그렇고, '공소시효 배제' 문제도 그렇고, 사실 청와대 내에서 충분히 논의된, 준비된 제안이라고 볼 만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왜 이 문제를 이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제기하고자 했는지, 그 깊은 심중을 이해하는 참모는 찾아 보기 힘들다.

정말 노 대통령은 도대체 왜 지금 시점에 이런 제안을 내놓은 것일까? 참모들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아주 원천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범인들로선, 또 상식적인 사고로는 그 맥락을 짚어내기가 정말 어렵다.

노 대통령이 아무리 '진정성'을 강조한다 해도, 대통령의 설명 방식을 거의 그대로 되뇌는 일부 여권 관계자들의 범위를 넘어서면 공감대를 거의 확인하기 어려운 '연정', '공소시효 배제' 제안은 이 시점에서 또다른 소모적 정쟁의 단초일 뿐이다.

이러다 보니 노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 제안도 "'대연정'을 매개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영남-호남-충청을 아우르는 '노무현식 새판짜기'를 위한 수순"이라는 거의 소설에 가까운 정치공학적 해석까지 횡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공소시효 배제' 제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던 민주노동당도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경축사를 두고 대통령은 스스로 하루 만에 발언을 뒤집고 여당은 대통령 발언 진위를 두고 우왕좌왕하며 논란을 벌이고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에게 광복 60주년의 역사적 무게는 이토록 가벼운 것이냐"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민노당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과거사를 청산할 의지가 있다면 소모적인 퍼즐게임을 중단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과거 국가권력의 반인권적 범죄 대상과 범위, 구체적인 로드맵을 책임 있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는 퍼즐도 아니고 스무고개도 아닌데…**

정치는 퍼즐도 아니고 스무고개 놀이도 아니다. 여권 내에서조차 이제는 입에 올리기 쑥스러워 하는 '진정성'도 그만 얘기했으면 좋겠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피차 안타깝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생각은 이것이다. 준비도 제대로 안 되고 설익은 몇 가지 제안이 이렇게 연이어 나오게 된 것은 노 대통령 개인의 집요한 강박관념에 참모들의 미숙함이 더해진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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