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8.15 대사면에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당이나 선거대책본부의 공식 직책에 있던 정치인들을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혀 정대철 이상수 이재정 전의원 등의 사면을 기정사실화했다.
우리당은 또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공식-비공식 경로를 통해 자당 소속 정치인들의 사면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정치인 사면'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다른 정당까지 개입시키는 '물귀신 작전'으로 희석시켜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사면 대상 명단을 만든 일도, 건의한 일도 없다"고 부인해 양당간 진위 공방도 새로운 논란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상수-이재정 '유력', 정대철은 논란 예상**
우리당 박병석 기획위원장은 25일 브리핑을 통해 "불법 대선자금 관련자 가운데 당이나 선거대책본부의 라인선상에 있던 사람들을 사면대상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선거 당시 공식 직책에 있었던 분들은 그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리에 연루되게 된 것"이라고 그같은 방침의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당이 밝힌 취지대로라면 2002년 대선 당시 선대위원장이던 정대철 전 의원, 유세본부장이었던 이재정 전 의원, 총무본부장이었던 이상수 전 의원 등은 사면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정대철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외에도 윤창렬 전 굿모닝시티 대표에게 받은 4억원이 뇌물로 인정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개인비리'에도 연루돼 있어 사면 대상에 포함될지는 확실치 않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아직 원칙만 정해졌을 뿐 개개인을 두고 포함 여부를 따져본 적은 없다"며 "상식 차원에서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안희정, 최도술, 여택수씨 등 비리에 연루된 대통령 최측근에 대해서는 "안씨가 당에 편지를 보내와 자신들로 인해 대통령께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밝힌 만큼 검토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야당, 겉으론 사면비판-뒤로는 실속챙기기"**
박 위원장은 이어 "한나라당을 비롯한 민주당, 자민련 등 야당에서도 공식 혹은 비공식적 통로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사면 대상자 명단을 보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10명, 민주당은 70명 정도의 정치인 사면을 건의했으며 민노당은 정치인이 아닌 국보법, 집시법 위반자 100여명의 사면을 요청했다.
우리당이 구체적인 명단 공개를 꺼리면서도 야당의 사면건의 사실을 공개리에 거론한 것은 8.15 대사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한나라당, 민주당 등과 공유하자는 속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야당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모두 사면에 반대하며 우리당을 공격하지만 뒤로는 모두 자기 실속을 챙기고 있다"며 "사면을 하려면 우리당처럼 떳떳하게 국민의 용서와 이해를 구하라"고 비판했다.
***한나라 "사면대상 명단 만든 일도, 제출한 일도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자당 소속의 10명의 정치인 사면 건의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은 어떤 사면대상 명단도 만들거나 제출한 일이 없다"면서 "여권에서 집요하게 명단을 만들어내라고 요청해 왔지만 우리는 여당의 전략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만들지도 않았고 제출한 적도 없다"고 펄쩍 뛰었다. 김 총장은 "그런 제안을 했다면 나나 원내대표를 거쳐야 했을 텐데, 나는 모르고 강재섭 원내대표도 명단 제출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인 유승민 의원도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대표는 그런 일을 안 했고, 나도 안 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고, 법률지원단장인 장윤석 의원도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다만 김무성 총장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이 한나라당에서는 대선자금 관련된 사람이 누구누구 있다고 말할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비공식 루트'를 통한 전달 가능성은 열어놨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의 발표 이후 사무총장과 기획위원장, 원내대표에게 확인해본 결과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면서 "한나라당은 당 관련 인사에 대해 사면을 요청한 바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별적으로 사면 대상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원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거론될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선 굳이 해명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부인에 대해 우리당 박병석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공식적으로' 신청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라며 "한나라당 지도부가 모른다고 한다면 잘 알아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고 재반박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나 한나라당이 전달한 '비공식 루트'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우리당이 '비공식 루트'에 대한 명쾌한 공개를 미룰 경우, 8.15 사면을 둘러싼 여야간 '진흙탕' 공방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우리가 언제 정치인 사면 비판했냐"**
반면 민주당은 정치인을 포함한 사면 대상 명단을 제출한 사실을 인정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청와대의 요청으로 권노갑 전고문, 임창렬 전경기지사 등 민주당 소속 정치인 70여명의 명단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박 위원장의 비판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한 번도 정치인의 사면에 대해 비판한 바가 없다"고 변명하며, "국민 통합 차원에서 털고 갈 것은 털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이상열 의원은 당장 "의원총회 등의 합법적인 절차 없이 한화갑 대표가 당직자들과 상의해서 명단을 작성했다"며 "그 안에 정치인이 포함돼 있다면 대다수 의원들의 생각과는 무관한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반발했다.
***민노 "여당 추진 사면도 문제지만, 야당 표리부동도 문제"**
정치인이 아닌 국보법, 집시법 위반자 등 100여명의 사면을 건의한 민주노동당은 정치인 사면에 접근하는 여야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 셈법을 비판했다.
김성희 부대변인은 "여당이 추진하는 정치인 사면도 문제이지만, 겉으로는 '정략적 사면이 안 된다'고 비판하며 사면법 개정안까지 발의해 놓고 뒤로는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을 요청하는 야당의 태도도 표리가 부동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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