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선거구제 개편은 제로섬 게임···개헌보다 어려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선거구제 개편은 제로섬 게임···개헌보다 어려워"

<분석>"선거구제, 연정과 함께 수면 밑으로 잠복?"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국회의원들이 정당의 기득권에 구속돼 법제도나 구조적 개선 등이 충분치 못하다"며 거듭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 등을 촉구하고 나섰으나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있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노 대통령이 최근 여소야대 대응책으로 들고 나온 연정(연립정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노 대통령은 "야당이 진지하게 지역구도를 해소하는 제도로 대통령에게 협상해 온다면 내각제 이상의 권력 이양도 협상할 용의가 있다"며 연정을 미끼로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했다.

하지만 선거구제 문제는 각 정당뿐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결코 쉽게 합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문제가 과연 이 시기에 논의돼야 하느냐, 혹은 논의될 수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도 정치권에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권 중진 의원은 "개헌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선거구제 개편은 제로섬 게임"**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구 의원은 1개 선거구에서 1명의 후보를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비례대표 의원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99명의 의원 중 지역구 의원은 243명, 비례대표 의원은 56명이다. 16대 총선까지는 1인 1표제로 지역구 의원을 선출하고, 각 정당별로 지역구 의원 수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을 취해 왔으나, 이런 선거제도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 17대 총선에서는 정당투표가 도입됐다.

정당투표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소선거구제이며 지역구 의석 비율이 월등히 높은 현행 의석 배분 방식은 유권자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13%의 지지를 얻었지만 의석은 전체의 3.4%인 10석에 그쳤다. 또 영.호남의 지역분할구도도 그대로다.

바로 이 대목에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하는 명분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연히 찬성이다. 그러나 "선거구제 문제는 철저하게 제로섬 게임이 돼서 어느 당이 유리하면 다른 당은 불리하기 때문에"(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 각 정당이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나라당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영남 의석만 뺏길 것"이란 나름의 계산에 토대를 두고 있다. 2기 정개특위에서 한나라당 간사를 맡았던 박형준 의원은 "중선거구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열린우리당의 영남권 지지율과 한나라당의 호남 지지율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7대 총선의 각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을 살펴보면 열린우리당은 경북에서 23%, 경남에서 31.7%를 얻은 반면 한나라당은 전북에서 3.4%, 전남에서 2.9%를 얻었을 뿐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호남에선 민주당, 열린우리당, 민노당과 쟁쟁한 무소속들 순으로 의석을 얻을 것"이라며 "반면 영남에선 열린우리당이 20%정도만 득표해도 상당수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의원 개개인 득실 계산도 걸림돌**

정당 간 득실 계산과 더불어 의원 개개인의 득실 계산도 선거구제 개편 논의의 걸림돌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선거가 3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지게 되는 일에 동의할 의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선거구제 도입 시 유권자들 사이에 '정당별 나눠주기' 식 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예를 들어 광주의 선거구가 6개에서 두 개로 줄었다고 가정하면 열린우리당이 한 지역에 두 명 이상을 공천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당 다른 공천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밀리는 후보는 중선거구 도입을 철저히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시에는 후보 개인에 대한 인지도가 당락에 중요한 관건이 된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중진급 의원들 경우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 중진 의원측에선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간판으로 당선된 사람들은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이라며 "수도권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별로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중대선거구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돌아섰지만...**

이처럼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말 꺼내기 조차 쉽지 않은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노 대통령은 최근 지속적으로 지역구도 해소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선거구제 개편 방향과 관련해 중대선거구제를 몇 차례 대안으로 제시해 왔던 노 대통령이 최근 권역별 비례대표제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열린정책연구원의 임채정 원장은 1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의 당론은 중대선거구제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독일식 선거제도에 대해 상당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노 대통령이 독일식 선거제도를 관철해나가겠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어떤 제도가 좋은지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도 지난 10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되면 지역구도는 상당히 해소되겠지만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며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겸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 지역구도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중대선거구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기류 변화'는 연정 가능성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후보 개개인 인지도에 비해 정당 지지율이 높은 민노당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민노당은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당론이다.

또 현재 영호남 지역구도만 놓고 보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한나라당에 불리하지만 수도권까지 놓고 보면 계산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동조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서울지역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은 각각 36.7%와 37.7%였다. 1%포인트 밖에 뒤지지 않았지만 의석수는 16석으로 열린우리당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를 수도권 전체로 넓히면 열린우리당에 11%포인트 밖에 뒤지지 않았지만 의석수는 33석으로 76석을 얻은 열린우리당에게 43석이나 뒤졌다.

물론 아직까지는 한나라당이 수도권 의석을 위해 영남 지역의 일부 의석을 포기할 것으로 단정하긴 이르다.

또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의석 수가 대폭 느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도 실제 도입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지역구 의원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지는 것을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또 정치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역구 의원 숫자는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려 의원정수 자체를 늘리는 방안은 국민이 동의를 받기 어렵다. 일본의 석패율제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중복 출마를 허용하는 것도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는 지난 4월 현행 소선구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원수를 지역구의 절반수준까지 늘리는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안에 따르면 지역대표는 기존 243명에서 200명으로 줄어들고, 대신 비례대표는 56명에서 99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정개협은 중대선거구제로 갈 경우 선거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소선구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이후 개헌과 함께 논의될 것"**

이처럼 합의점을 찾기가 난망하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개헌과 함께라면 그나마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우리당 이강래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개헌을 논의할 때 선거구제를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도 선거구제 개편이 현재 구도에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며 "개헌과 연관해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선거구제 개편에 앞서 권력구조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며 선거구제보다 개헌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으로 반짝 불거졌던 선거구제 개편 논란은 이같은 여야 간 접점을 찾을 길이 없는 중구난방식 논란 속에서 일단은 연정론과 마찬가지로 수면 아래로 잠복할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인 자가발전식 군불때기만으로는 정상적이고도 체계적인 논의와 협상이 이뤄질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18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선거제도를 통해 지역구도를 깨겠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일축한 것이 선거구제 논의를 일단 봉수(封手)하는 쐐기 노릇을 할 것 같다.

<박스 시작>

***소선거구제**

우리나라의 현행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이다. 비교적 지역을 작게 나눠 표가 제일 많이 나온 정당이 의석을 갖는다. 여당과 제1야당이 의석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 양당제가 성립되기 쉽다.

***중대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보다 지역구의 크기를 크게 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 갖는 제도다. 한 지역구에서 2인 이상 5인 이하를 뽑는 방식을 중선거구제라고 한다. 보통 2인의 중선구제에서는 한 정당에서 1명의 후보를 공천하며, 3인 이상일 경우 복수 추천한다. 대선거구제는 보통 한 선거구에서 10명 정도의 대표가 선출되는 방식이다.

***정당명부제**

크게 독일식 정당명부제, 일본식 정당명부제, 이스라엘식 정당명부제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독일식 정당명부제**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에게 한표, 정당에 한표 등 총 두 표를 행사한다. 의석수 배분은 정당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에 따른다. 예를 들어 전체 의석수가 500석이고 A정당의 정당 득표율이 30%라면 이 정당의 총 의석수는 150석이 된다. A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120명이 당선됐다면 비례대표 명부에 등재된 후보 중 30명이 의석을 더 갖는다. 만약 A 정당이 지역구에서 155명이 당선됐다면 5명은 '초과의석(Ueberhangmandate)'이라 해 그대로 인정해준다. 따라서 국회의 재적 수가 일정하지 않다. 독일의 녹색당은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고 정당투표에만 참여해 20여 석을 확보한 일도 있다.

한편 독일은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비례대표에 중복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이렇게 2중등록한 중진급 인사에 대해서는 지역구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헬무트 콜(Helmut Kohl) 전 총리는 지역구에서는 두 번 낙선했지만 그때마다 비례대표로 등원했다.

***2. 일본식 정당명부제**

독일식과 마찬가지로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다. 지역구의 의석은 그대로 인정하고, 비례대표는 이미 나눠진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추가로 배분한다. B정당이 비례대표가 10석 배정돼 있는 ㄱ지역에서 지역구 의원이 10명 당선됐고 30%의 정당득표를 확보했다면 이 지역에서 비례대표 3명이 당선된다. 따라서 B정당의 ㄱ지역 의석수는 총 13석이 되며, 다른 권역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의석이 배분된다.

일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중복출마를 허용한다. 일본은 비례대표 후보의 특정번호에 각 정당마다 지역구에 출마하는 2중등록 후보를 등록하고 지역구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3. 이스라엘식 정당명부제**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놓고 정당에 투표하는 방식. 전체 의석수가 100석이고 C정당의 정당득표율이 30%라면 이 정당의 의석수는 30석이 된다.

<박스 끝>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