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신기술과 문화의 각축장으로 불리는 엑스포 사상 최초로 한국 전시관이 디자인상을 받게 됐다.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개최중인 '2005 아이치 엑스포'에서 디자인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받은 김준기 CNS 디자인연구소장을 14일 만났다.
김준기 소장이 엑스포 전시관 디자인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는 '재미있고 쉬운 조형언어'로 '한국의 미(美)'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지적된다. '한국의 미'에 너무 얽매여 '재미'와 '국제적 보편성'을 잃어버리면 공간 디자인의 생명력이 없어진다는 것이 김 소장의 소신이기도 했다.
김 소장은 "한국의 것을 공간 디자인에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표현하다보면 외국인들은 거부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어차피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적인 미가 자연스레 예술활동에 투영된다. 철저하게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주제개발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강한 효과를 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사진 1.> 김준기 소장
김 소장은 "과거의 엑스포 한국관 디자인들은 한국적 가치를 강조하는 조형물을 앞세우는 경향이 많았다. 측우기, 첨성대, 거북선 등의 상징물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공간 디자인에선 오히려 사족"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어 "타문화의 우수성을 먼저 인정하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간략하고 정련된 보편적 조형언어로 우리 문화를 녹여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 2000년 한강의 미래 모습을 주제로 하노버 엑스포의 한국관을 디자인 하면서 외국인들로부터 호평 받았던 김 소장은 이번 아이치 엑스포에서는 청, 적, 황, 흑, 백의 색채를 사용한 5개의 코너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IT 기술을 국제감각의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데 역점을 뒀다.
마치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씨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영상 메시지로 한국 문화를 쉽게 설명한 것처럼 김준기 소장도 IT 기술을 활용해 한국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관람객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흑색코너에 설치된 스크린 앞에 관람객이 다가서면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나비 몇 마리가 날아든 뒤 점차 나무로 변해 한국 수묵화의 한 장면이 되는 방식이다. 또한 황색코너에 있는 황룡(黃龍)을 반도체 칩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제작한 것도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사진 2> 수묵화 (IT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 수묵화. 흑색 코너에 있다)
김 소장은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로 한국관이 외국 전시관으로는 가장 많은 관람객을 동원했다. 디자인 부문 심사에서 한국관은 주제 부분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관람객의 뜨거운 반응도 심사위원들에게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소장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관 적색 코너에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의 대표적 화가 호쿠사이 가츠시카의 <붉은 후지산>을 한국 진경산수화의 대표자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와 함께 배치했다. 김 소장은 "'너희 것도 좋지만 우리에게도 이렇게 좋은 것이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사진 3> 적색 코너 (호쿠사이와 겸재 정선의 작품이 함께 배치돼 있는 적색 코너)
김 소장은 "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미를 '쓸쓸한 비애미'로 표현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 보여주려 했다.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한국의 모습을 담기 위해 '붉은 악마'를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라고 설명했다.
향후 디지털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김 소장은 "한국의 디자이너는 기술적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철학이 부족하다. 디자인 외에 인문사회학 공부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공간 디자인에서 공간을 꾸미는 작업이 1%라면 공간을 어떤 의미로 채워야 하는지는 99%를 차지한다"며 기술적 부분에 얽매인 한국 공간 디자인의 후진성을 꼬집었다.
<사진 4> 백색 코너(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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