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연정론 군불때기'는 13일에도 계속됐지만, 연정의 대상인 야당의 냉소 속에 연정론의 불씨는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특히 여당 내 개혁 성향 의원들뿐 아니라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등 상대적 보수 성향의 의원들 사이에서도 한나라당과의 연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는 더 이상 '되지도 않을'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밀어 붙이기 보다는 대결 구도의 현 정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어, '연정 드라이브'를 계속하고 있는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어떤 대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문의장 나흘째 "한나라, 연정 심사숙고해야" **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야당은 보다 큰 눈을 갖고 열린마음으로 21세기 선진조국 창출이라는 대의선상에서 연정을 진지하게 논의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이 지난 10일 한나라당에 '선거제도 개편을 매개로 한 총리 임명권 이양'을 제안한 뒤 연일 반복돼 온 우리당의 '러브콜'은 나흘 만에 읍소 수준을 넘어 한나라당의 냉랭한 반응에 대한 비난에 이르렀다.
문 의장은 "나의 제안은 우리당이 제1당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정치발전을 위해 내놓은 충정인데 이를 정략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진의'를 몰라주는 한나라당을 향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회의석상 발언을 자제해 온 유시민 상임중앙위원도 "연정을 제안한 것은 우리당이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 스스로의 기득권을 내놓은 것인데 한나라당이 여기에 말꼬리를 잡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발전보다는 자기 이익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닌지 의심케 된다"고 문 의장을 거들었다. 유 위원은 "박근혜 대표 이하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자신들이 쏟아낸 냉소적이고 가시 돋친 말들을 성찰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배기선 사무총장 역시 "어려운 시절에 21세기 백년대계의 초석이 되는 여러 가지 현안을 두고 여야가 국력을 하나로 모아가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를 일언지하에 자르고 정략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제1 야당이 보일 수 있는 태도였냐"고 비난했다.
***안개모도 한나라당과 연정에 회의적**
우리당은 이날 회의에서 연정에 대한 문 의장의 제안을 실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개혁추진단'을 구성키로 했다. 야 3당이 모두 연정 제의에 거부 입장을 확정한 상태지만,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 아래 적극적으로 접촉면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도부가 연일 한나라당을 상대로 연정공세를 벌이는데 대한 당내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개혁성향 의원들이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면 정권 쟁취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냐"며 반발한 데 이어, 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의원들도 한나라당과의 연정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정적개혁을위한의원모임(안개모)' 간사인 박상돈 의원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한나라당이 연정을 하려 하지도 않을뿐더러 한나라당이 덥석 손을 잡고 나와도 정권 내에서도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려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뭐냐'는 반발이 나올 것"이라며 여권 내의 반발 기류를 우려했다.
최재천 의원 역시 "우리당은 사꾸라 소리를 듣더라도 어려운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힘을 모을 태도가 돼 있지만 한나라당에는 그런 위기의식이 없다"며 정작 연정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다.
최 의원은 "'정책적 탄핵'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정을 제안한 대통령의 절박함을 이해하고, 한나라당을 협상에 끌어들이기 위해 총리지명권 이양이라는 고육지책을 꺼내든 지도부의 절박함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한나라당이 국정에 참여하게 되면 현재 국회를 마비시키는 수준을 넘어 행정부까지 정쟁의 장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며 한나라당과의 연정이 정국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비관적이었다.
***"여소야대 극복보다 권력구조 개편이 근본 화두" **
최 의원은 "연정은 2,3년 이상의 효력을 기대할 수 없는 한시적인 발상"이라며 "대통령과 입법부의 정통성 충돌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을 성급하게 달려들어 또 다른 정쟁으로 비화시키지 말고 권력구조 개편이란 근본적 화두로 돌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당장의 여소야대를 메우는 방식보다는 좀 더 '긴 호흡'을 갖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여권 밖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인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12일 열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가 거의 일반화된 상황이므로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보다는 여소야대에서 원만한 국정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과 국회의 충돌을 어떻게 회피하고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 역시 "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는 여소야대라는 권력 분점구조가 아니라, 의회와 행정부가 실질적인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데 있다"며 연정보다는 정당·선거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도 홈페이지 글을 통해 "연정은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론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방법론 이상으로 우리 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한국 정치의 가치를 찾는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 연정, 개헌, 선거제도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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