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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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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정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위기"

<정치학자들의 분석> "해법은 정치 구조 아닌 정책에서 찾아야"

노무현 대통령이 7일 언론인들과의 대화에서 권력구조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에서는 다 연정을 하고 프랑스는 동거정부다. 어느정도 잘 꾸려나가느냐는 그나라 정치의 수준이다. 우리 정치도 그 수준으로 가자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여권 수뇌부 모임인 '11인 회의'에서의 노 대통령 발언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 연정(연립정부)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목이 알려지면서 촉발된 연정 논란과 관련, 그나마 가장 구체적인 모델인 셈이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계속 제기할 것이고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연정이 부도덕한 게 아니구나 인식되면 제가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를 던진 대통령 스스로도 현 시점에서 연정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낮게 보고 있으며, 연정이 목적이 아님을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문제제기**

노 대통령은 지난 5일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제기하게 된 첫번째 이유로 여소야대 국회로 인해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게 어렵다는 대목을 꼽았다. 1988년 13대 총선 이래 되풀이된 여소야대 구도로 비생산적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두번째로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가 혼재된 있는 권력구조의 '불일치'를 지적했다. 특히 다른 대통령제 국가에 없는 각료 해임권 때문에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정치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연정' 발언에 대한 언론과 야당의 비판이 이어지자 노 대통령은 6일 자신의 진의가 '정치개혁'에 있는 것이라며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다면 대통령 권력의 절반 이상이라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말해 지역주의 극복, 선거제도 개정 등으로 논의의 범위를 계속 넓혀갔다.

이어 7일 '언론과의 대화'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선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내놓을 수 있다"며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까지 거론하기에 이른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 국민들은 논의할 준비 안돼"**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사회에서 토론의 성역이나 금기는 없지만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현재 이 논의를 주도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노 대통령의 문제제기에 대해 반박했다.

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 대해 얼마나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야당, 심지어 여당, 그리고 전문가들, 국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진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서 대국민 서한을 계속 발표하는 등 논의를 주도해 나가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대해 "진단이 옳아야 처방이 올바를 수 있는데, 대통령의 기본적인 현실인식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연정이라는 처방을 내린 전제는 여소야대 상황이라 개혁을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라며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잃은 지 두 달 정도밖에 안됐다. 지난 17대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어줬는데 과연 그때는 개혁과제를 제대로 실현했는지 질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한 노 대통령의 처방은 기관지염 환자에게 소화제를 투여하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연정이라는 처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정계개편은 정책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합당이나 의원 빼가기 등 야합이나 밀실거래를 통한 것이었다"며 "민주적 사회에서 연정은 정책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현재 정치구도에서 사안별 정책 공조가 아니라 특정 정당과의 연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유시민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정책적 차이가 한나라당보다 더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 위기는 형식이 아닌 내용의 문제"**

물론 현재의 한국 정치가 '위기'라는 노 대통령의 인식은 맞지만, 이는 형식의 위기가 아니라 내용의 위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광일 <정치비평> 편집위원은 "오히려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과거와 비교할 때 지금이 더 진전된 상태"라며 "문제는 여당 등 집권세력이 진전된 형식을 채울 내용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비정상성의 근원이 여소야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현재의 비정상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보여진다"며 "경제적 양극화로 중산층이 몰락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고, 현재의 위기는 여기에서 오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열린우리당 지지세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며 "심지어 일반 서민들은 한나라당이 오히려 자기들을 보호해주는 세력이라고 지지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대화 교수는 "현재 권력구조를 놓고 전선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며 "북핵문제, 남북관계, 비정규직 문제, 교육 등 하나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우리당이나 정부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졍 교수는 "우리처럼 집행권과 견제권이 분점된 형태를 '분할정부'라고 하는데, 미국 대통령제도 마찬가지다. 이것 자체가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여당이 소수이면 좋은 정책을 통해 정책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최근 정부가 "부동산 정책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밝히는 등 정책적 실패에 있는 것이며, 이런 정책 실패도 야당의 반대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여당과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최근 부동산 안정 정책, 비정규직 보호입법, 사립학교법 개정 등 일련의 개혁 정책과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보여준 모습은 '무능력'과 '무소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누구와 어떻게 갈 것인가...대통령 결단이 우선돼야"**

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다"며 연정 문제가 국면 돌파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할 만큼 국민적 공감대와 이해가 형성됐냐는 점을 고려할 때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이광일 위원은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정치구도를 개혁-보수 구도로 가져가는 게 유리하다"며 "이를 위해선 비정상성을 강조해야 하고, 문제의 근원을 한나라당 등 보수.수구세력으로 지적하면 된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도 "개헌 등 권력구조 문제를 차분하게 논의하기 위해선 오히려 지난 총선 직후가 더 적절한 때였다"며 "그 때는 가만히 있다가 위기 상황이 왔다고 판단됐을 때 끄집어 내는 것은 정파적 문제제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 정치의 '위기'와 '비정상성'의 근본 원인이 권력 구조라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법도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 구조 개편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근원적 해법을 정치 구조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여당의 철학과 정체성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광일 위원은 "현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정운영이 어렵다면 연대를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결국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선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그러나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진보세력과 큰 줄기에서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한나라당과 타협할 것인지, 거듭나기 위해 누구와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 먼저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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