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부 '디카족'들은 일반적인 스냅샷을 넘어서 고기능의 카메라를 구비하고 양질의 사진들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보기 좋은' 사진들이 넘쳐나는 가운데에서도 최민식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속에 담긴 진정성과 무게, 그리고 고스한히 담긴 민중들의 고단한 삶은 지금도 사회를 향한 큰 외침으로 밀려온다.
***'가난을 담는 사진작가' 최민식씨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재발간**
48년 동안 오로지 '가난'과 '인물'만을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어느덧 일흔일곱의 나이에 이르른 그가 96년도에 펴냈던 자신의 저서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현문서가 펴냄)을 8년만에 다시 펴냈다.
그는 책머리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것을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는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1955년 에드워드 스타이컨(Edward Steichen)의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 사진집을 만난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소식을 접한 것처럼 그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그 생명력에 감동하여 사진을 시작했습니다."라고 자신이 사진작가가 된, 가난한 민중들의 삶과 인물에 집착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1> "한 소녀가 남루한 옷을 몸에 걸치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카메라 쪽을 쳐다보고 있다. 나는 한없는 애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진실을 찾으려고 셔터를 누른다. 동시대의 삶을 기록한다. 이 한 장의 사진도 사회적인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최민식
그는 그 스스로도 지독한 가난을 견디며 살아왔던 인물이다. 1928년 태어난 그는 시골에서 농부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농사일이 싫어 상경했고, 6.25 전쟁에서는 무공훈장을 두 개나 받았으며, 제대 후에는 일본으로 밀항해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하며 사진을 알게 됐고, 도쿄의 한 헌책방에서 스타이컨을 만났다.
그는 미술 공부를 마친 뒤, 중고카메라 석 대와 부속품, 사진집 몇 권을 갖고 다시 밀항으로 부산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불편하고 아프다. 골목 어귀에서 땅바닥에 그릇을 놓고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 두다리를 잃고 아랫도리를 폐튜브로 감싼채 바닥을 기어다니며 구걸을 하는 장애인, 자갈치 시장의 허름한 행상들, 깊은 주름골이 가득한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들까지. 그는 끊임없이 가난한 민중들의 표정과 삶에 대한 흑백사진을 고집해왔다.
***사회의 어두움 고발에 반정부 인사로 몰리기도**
그러나 그에게도 우역곡절이 많았다 한다. 그는 이미 해외에서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우리 사회의 가난과 폐부를 가슴아프게 들추다 보니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탄압과 감시를 받았고, 그의 사진집이 판금조치 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게다가 삶이 버거운 사람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다 보니 '거지 작가'라는 오명을 써야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딸까지도 그가 언론매체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유명세를 타자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거예요. 딴 사람은 매스컴 안 타고도 얼마든지 좋은 일 하잖아요! 왜 자꾸 응하세요? 난 아버지가 그러실 줄 몰랐어요!"라고 따지더라는 것이다.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의 피사체는 '인간'들이기에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렌즈를 들이대는 것도 쉽지많은 않았다고 한다. 욕설은 물론 신사의 사진을 찍다가 멱살을 잡혀 파출소에 가서 해결을 보기도 했고, 젊은이나 노동자와는 몸싸움으로 옷이 찢어지기도 했으며, 찍은 필름을 내주기도 하고 카메라가 박살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법정에도 몇 차례 섰으며 벌금을 내기도 했다.
<사진2> ⓒ최민식
***"민중들의 삶 속에서 함께 숨쉬며 기록"**
그러나 그는 이미 어릴적부터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정신을 아버지로부터 부여 받은 듯 하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화가가 되려거든 농촌 화가인 밀레처럼 가치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예술이란 그 시대의 사회적인 표현 수단이며 그것을 이룩하는 책임 또한 예술가의 두 어깨에 걸려 있는 것"이라며 "밀레의 수많은 걸작들은 그의 생활 기록이며 진실의 표현이다. 그는 전원에서 손수 농사일을 해보았다. 바라보고 스케치하는 그림이 아니라 몸소 겪어 보고 더불어 공감을 호소하는 예술을 낳았던 것이다. 그는 예술은 전쟁이라고 말하였다"고 자신의 예술가적 사명을 밀레에서 찾고 있다.
이번 재발간본에서는 최민식씨의 12편의 글이 새로 실렸으며, 80여장의 사진을 바꿔 다시 실었다. 그는 이번에 새로 실린 글 중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입장도 밝혔는데, '디카족'이 들으면 서운할 만 하다.
그는 "사진가 입장에서는 사회적으로 사진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며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필름 자체가 갖는 특별함을 놓치고 싶지 않을뿐더러 인화 후 결과물의 예술성도 필름 카메라에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며 특히 "나의 사진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 '인간'에 대해 기동성 있게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기계적인 데이터로 민중의 눈물과 땀, 생생한 표정과 삶을 표현한다는 것은 뭐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카메라의 일회성, 덧없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3>표지
***"상상하라/생각하라/믿어라/행동하라"**
한평생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그는 책 말미에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떳떳하고 꿋꿋하게 노력하다 보면 땀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지금 당장 그 꿈을 실천하라. 상상하라(Imagine)/ 생각하라(Think)/ 믿어라(Believe)/ 행동하라(Do)"라고 후배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가 스타이컨의 사진집을 보고 인생을 결정했듯, 누군가 지금 그의 사진을 보고 인생을 다잡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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