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1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갖고 개혁신당 운동에 대해 “밑에서 젊은 의원들이 좀 밀어붙여서 떠밀려갔으면 좋겠다”며 소장파의 분발을 촉구했다.
이 부총재는 당내외의 젊은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 “굉장히 계산에 충실하고 정열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옛날 80년대나 70년대처럼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민족이나 우리 사회의 큰 방향에 물꼬를 트겠다는 모습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선거가 2004년인데 벌써부터 몸조심할 필요는 없다. 기득권 세력한테 미운털이 박히면서까지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라”고 주문했다.
이 부총재는 또 내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나설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한 바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지만, “이회창 총재가 대의원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경선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한나라당 상황에 대해 이 부총재는 “정권이 틀림없이 바뀐다는 예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안의 비민주적인 1인 지배구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것으로 곡해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부총재는 또 “이회창 총재가 보수적인 영남세 위에 올라서 있는 동안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DJ가 민주당을 탈당할 경우 정계 유동성이 커져 이 총재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당내 소수파, 개혁적 전망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무시하면 정권을 잡더라도 그 정권이 흡인력 있는 탄력성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YS-JP 신당설 등 정계개편에 관해서는 “두 사람이 아직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잃지 않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분명히 취할 거라는 기대감의 표현”이라며,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두 사람은 이미 2/3쯤 힘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의 연말 개각과 관련 이 부총재는 “거국중립내각을 하려면 대통령부터 당적을 버려야 한다”며, “그동안은 대통령이 욕심을 부려 정치개혁을 못했다. 정말 중립적으로 한다면 지구당 폐지, 예비선거제 도입, 기초단체장 정당 공천 배제 등 많은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한나라당 후보경선 제도 변경 등에 대해서는 “경선 출마 여부를 결정한 다음 말 하겠다”며 구체적 언급을 극도로 꺼렸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이부영 부총재 개인 사무실에서 정관용 정치에디터가 진행한 인터뷰는 50분 가량 계속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프레시안 : 내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겠는가?
이부영 : 아직 결정한 바 없다. 현재 한나라당 구도는 이회창 총재가 대의원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경선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여당이 일부의 주장대로 예비경선제나 대의원 수를 대대적으로 늘려 정말 환골탈태하는 커다란 변화 속에서 후보를 만들어 낸다면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이 문제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한나라당의 자세로 정치에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분열되기만을 바라는 것 같은데, 그렇게 소극적 내지 현상안주적인 자세로만 내년을 바라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지금 걱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걱정만 할 것인지 아니면 대안을 내놓을 생각도 있는지.
이부영 : 그간 당의 구조적 변화와 의사소통 구조의 변화를 요구했는데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요구했는지.
이부영 : 정책적인 부분이다. 일테면 국가보안법 문제도 이제는 냉전적 구조나 사고에만 집착하지 말고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고칠 것은 고치자고 정말 줄기차게 요구했다. 또 재벌 규제완화 문제도 한나라당은 여당이 완화하자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간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나친 규제 완화가 자칫 지난날 백화점식 재벌구조의 재현 등 여러가지 폐해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그러나 이런 나의 요구에 대해 당내에선 ‘이런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은 뭔가 여권과 연계가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불건강하게 해석한다. 한나라당은 변화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프레시안 : 민주당의 대통령 총재직 사퇴 이후 큰 폭의 쇄신이 일어나거나 대체로 현 수준에서 대권 후보들과 계파가 서로 타협해 경선을 치루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큰 폭의 개혁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부영 : 한나라당은 구여권, 민정계, 영남이 주축으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거나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은 동교동계, 호남이 아주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다.
***한나라, 민주 양당 기득권세력은 상호보완적**
양당의 기득권 세력은 사실 상호 보완적이다. 아마 이런 얘기를 하면 펄쩍 뛸지 모르지만 민주당에 호남지역 기반을 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앞으로도 계속 민주당의 기득권을 장악해 나가기 위해선 영남의 기득권 세력이 계속 영남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영남 구여권 기득권 세력도 마찬가지로 영남에서 자신들이 안전하게 당선되기 위해선 호남 기득권 세력이 호남을 계속 장악해야 한다. 현재 우리 정치권의 발전을 얽어매고 있는 족쇄 가운데 가장 큰 족쇄가 바로 영호남의 기득권 세력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민주당 안의 동교동, 호남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응집력이 해소될 수 있는가. 서울, 수도권 지역의 뜻있는 민주당 의원들이나 지구당 위원장들도 서울의 호남출신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가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호남 유권자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17대 총선에서 자신들의 당락이 결정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정말 이제 우리 정계, 특히 현재 민주당을 저렇게 얽어매고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드는 지역구조를 깨는 것이 정치구조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연말이면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 아마 그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김종필씨의 정치권에서의 역할이 거의 끝날 것이고. 이는 우리 정치에서 지역주의의 영향력을 현저하게 퇴조시키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에야 말로 민주당 안에서 정당 구조를 개선하고 정당 민주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설 때이다. 호남 출신중에 이제는 그걸 깨자고 나올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다른 무엇보다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 지역주의를 완화시켜 가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진보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역주의는 남북관계를 화해협력 쪽으로 끌고 가는 것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이번 진통이 정치개혁, 한국 사회 진보에 있어 대단히 의미 있는 진통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프레시안 : 민주당의 쇄신바람이 한나라당에 미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이부영 : 정당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다면 어찌 한나라당과 무관하겠는가. 예를 들어 크로스보팅 문제나 여야 의원들 사이에 개혁과제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만들어 간다면 대단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한나라당의 의원들은 민주당에 비해 자유스럽지 못하다. 민주당 정권의 실정과 부정부패로 국민들의 민심이 민주당을 떠났다. 정권이 틀림없이 바뀐다는 예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안의 잘못된 관행이나 비민주적인 1인 지배구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것으로 곡해되고 있다.
프레시안 : 양당의 기득권 세력을 깨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과제라며 민주당 내에 뜻있는 의원들이 나서야한다고 말했는데 이런 움직임을 한나라당 안에서 먼저 할 수 없는가.
이부영 : 방금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은 당권도 그렇고 정부, 청와대 권력도 레임덕 상태에 들어가 질서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은 지난 3년 동안 여권의 야당 파괴, 분열 공작을 견뎌 내고 당권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 차이다.
여야가 균형 있게 같이 가는 게 아니라 한쪽이 처지면 한쪽이 앞서고 다른 쪽이 앞서면 다른 쪽이 또 처지고, 이런 비대칭적인 정치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여야 모두 똑같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여는 지도력이 붕괴되니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모색이 비교적 자유스럽게 표출되고 있는가 하면 야당은 점점 견고화, 공고화 되고 있다.
프레시안 : 이부영 의원이 지금까지 살아온 역정을 보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일에 줄곳 헌신해 왔다고 본다. 지금 지역주의를 불식시키는 것이 이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과제라고 표현했는데 한나라당 안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정권교체에 대한 방해 혹은 저지로 곡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혁파 주장이 중요한가, 아니면 뭐가 됐든 정권교체가 중요한가, 어느 쪽이냐?
이부영 : 나는 정권교체가 맹목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테면 구여권의 많은 인사들이 생각하듯 정권 잃고 보니 못 살겠다, 다시 찾아와야 겠다, 옛날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자, 그래서 현재 김대중 정권이 해왔던 것은 모두 전복하고 그전으로 되돌아가자 그런 과거회귀형 정권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냐, 아니면 우리사회가 어찌됐건 여러 가지 시행착오나 잘못을 저질렀지만 양 민간 대통령을 경험하고 그 기간 동안에 민주화라는 시대적 정신이 사회 밑바닥까지 스며들었다, 이를 올바로 계승하면서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가는 정권교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냉전해체 진행이 한반도에 바람이 불어서 민주화의 부분적 성취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87년 양김이 분열하지 않았더라면 민주개혁 주도 세력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개혁과제를 민주화 과제와 결부시켜 우리 사회에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을 것이다. 이는 자연히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양김의 분열로 둘이 경쟁적으로 구 기득권세력, 구 여권세력과 연합하려 애쓰고, 이는 민주화와 개혁과제에 왜곡을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지역주의 구도를 우리 정치구도에 항수로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내년에 양김, 삼김이 다 물러나는 것은 다시 우리들에게 87년 이전의 과거 회귀적 시국관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당시 민주개혁 주도세력이 이뤄내려 했던 전망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혁신당, 젊은 의원들에게 떠밀려가고 싶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는 것은 87년 이전의 시국관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민주개혁 주도 세력의 전망을 자신들의 집권 과제에 부분적으로라도 함께할 것이냐, 이건 한나라당에서 집권을 하려는 사람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선택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할 것이고.
프레시안 : 아직까지는 별 응답이 없는 것 아니냐.
이부영 : 계속 했다. 계속했는데 아직까지는 별 응답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프레시안 : 학계 등 정치권 외부에서는 이제야 말로 이른바 개혁신당과 같은 운동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은데, 단도직입적으로 개혁신당 운동을 할 생각이 있는가.
이부영 : 지금 내가 그것을 얘기하는 건 대단히 경솔한 일이다. 나는 정말 요즘 좀 젊은 정치권의 인사들이나 외부 인사들에게 되물어 보고 싶다. 전에는 보통 소장 그룹들이 그런 운동을 일으키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를 하고, 나중에 힘을 보태주는 상황이었는데 요즘은 좀 반대로 되는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아마 동서 냉전 이후 미국적 기업주의 등이 세계를 통분해 버려 사람들로 하여금 대안적 전망을 하지 못하게 된데 따른 이데올로기적인 해체현상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해석이 안 된다. 조금 손해도 보고 또 냉수 먹고도 헛기침하는 기백이 필요한데 젊은 의원들이 좀 손해도 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지켜왔던 당당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당위나 앞으로의 가능성이 있다 해도 확 달려드는, 이런 걸 못한다. 굉장히 계산에 충실하고 정열이 부족하다. 이런 방향으로 할 것이냐는 질문은 무성한데, 손해 보면서도 좋다 확 모여서 뭘 하는, 옛날 80년대나 70년대처럼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민족이나 우리 사회의 큰 방향에 물고를 트겠다, 이런 모습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그런 말을 젊은 의원들에게 자주 하는가
이부영 : 얘기한다. 오히려 50대 전후 사람들이 더 담백하고 겁도 덜 내는 것 같다. 40대 중반부터 30대로 내려가면서 훨씬 그렇지 못한 느낌이 든다.
프레시안 :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는가. 시대적인 필요성이 있는데도 젊은 의원들의 세태가 과거와 달라져 과거처럼 동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이부영 :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좀 떠밀려갔으면 좋겠다. 밑에서 젊은 의원들이 좀 밀어 붙여서 떠밀려갔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그런 조짐이 좀 보이는가.
이부영 : 뭐 논의들은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근데 기득권 세력한테 미운털이 박히면서까지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한다. 선거가 2004년인데 벌써부터 몸조심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정말 개혁을 해야 될 것이 아직도 많다면, 좀 당당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세대들이 옛날에 많이 얘기했던 지도자론에 충실한 지도자가 되려면 그 세대들을 대표하는 뚜렷한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된다.
프레시안 : 좀 떠밀려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제대로 충족이 안 되면 스스로 깃발을 들 의향은 없는가.
이부영 : 지금은 그 이야기보다 한나라당 안에서 아까 얘기한 87년 이전의 시국관과 그 이후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전망을 놓고 논쟁을 벌여야 할 시기라고 본다. 난 한나라당이 과거로 돌아가는 그런 정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기에 몸담고 있건 아니건 그걸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의 공약이 순기능을 하도록 정해지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될 전망이 없을 때는 다른 선택이 가능해지겠지만.
***장기표씨 신당, “논의범위를 넓혀라”**
그리고 올해 연말 안에 남북교류 협력법이나 재벌 규제완화 문제, 방송법 등 중요한 법안이 걸려있다. 당내에서 이런 문제들이 좀더 온당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 경우, 젊은 의원이나 이런 사람들이 다른 대안을 놓고 크로스보팅을 요구하든지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 국가보안법도 아직 끝난 문제가 아니다.
프레시안 : 민주당에선 이미 후보경선방식이 쟁점이다. 대의원수를 대폭 늘리거나 예비경선제를 도입하는 등이 거론되는데, 아마 한나라당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후보경선 방식에 대해 이런 것을 요구하겠다는 생각은 없는가.
이부영 : 내가 지금 후보경선 참여 의사를 안 밝히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 안 하고 있다.
프레시안 : 본인의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예컨대 대의원수를 늘리라든지 그런 제도적인 개혁에 대해...
이부영 : 그건 지금 이야기하지 않겠다. 내 나름대로 생각은 정리를 해가고 있지만 그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얘기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프레시안 : 후보경선에 대한 입장이 정리된 후에 얘기를 하겠다는 뜻인가.
이부영 : 그렇다.
프레시안 : 당 바깥의 이야기를 해 보자면 과거에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장기표씨가 신당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이부영 : 장기표씨는 여러 차례 시도를 했는데 항상 그것이 불발 내지는 실패로 그쳐서 참 옛날에 같이 했던 사람으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시도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논의의 범위를 좀 넓혀보라고 권하고 싶다.
프레시안 : 논의범의를 넓히라는 뜻은 기존 정당들의 향후 예상되는 재편과정과 함께 하라는 의미도 포함하는 것인가.
이부영 : 그건 훨씬 뒤의 이야기다. 지금은 시작을 그렇게 좁은 범위로 해놓으면 논의구조가 확산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두명이 얘기를 시작해 놓은 다음에 그리로 들어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기 어렵다.
프레시안 : 또 YS-JP신당설, 더 나아가 DJ가 총재직에서 물러나면서 반대로 정계를 이회창때 반이회창 구도로 재편하기 위한 삼김연합 등등 소설성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부영 : 우선 JP가 대구에서 전당대회를 해서 다시 자민련 총재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YS하고 신당 창당을 고려한다는 이런 말을 했다. 이분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잃지 않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분명히 취할 거라는 기대감의 표현인 것 같다.
***“DJ가 해라면 JP, YS는 달 같은 존재”**
JP나 YS가 아직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은 DJ의 존재를 전제한 것이다. JP나 YS는 DJ라는 햇빛을 받아 빛을 내는 것 같다. DJ를 해라고 하면 DJ가 빛을 발하지 않으면 달 같은 존재인 JP나 YS는 빛을 낼 수 없다. 이들의 관계는 항상 경쟁하고 부딪히는 것 같으면서도 상호의존적이다. 바로 호남 기득권 세력이 영남 기득권 세력과 상호보완적인 것과 똑같다. 향후 JP와 YS의 어떤 정치적 전망을 갖느냐는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내놓은 직후부터 YS와 JP는 월식당한 달 같다. 빛이 한 반쯤 없어진 것 같다. 달이 한 3분의 2쯤은 지구 그늘에 가려서 빛이 안 나는 것처럼 3분의 1밖에 없는 것 같지 않나. 이런 비유가 그 사람들에게 좀 언짢게 만들지 모르겠는데 그게 현실이다.
프레시안 : DJ의 총재 사퇴에 대해서도 정말 손 뗀 것이라는 해석과 노림수가 굉장히 많은 것이라는 해석이 엇갈리는데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부영 : 지금 그런 의심을 받을 만 하다.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언제든지 다시 영향을 미칠 통로가 있지 않나. 대통령이 평당원하고 같겠는가. 항상 정치에 대해선 영향을 미치려는 한 귀퉁이는 잡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부터 당적 버려야 거국중립내각 된다”**
연말에 개각을 한다고 하는데, 그 개각을 거국중립내각으로 하려면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당적을 버린 사람이 가야 될 것 아닌가. 어느 당적을 가지고 있으면 특정 정당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거기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면 당적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부터 당적을 버려야 한다. 거국 중립내각을 만들어 일년 동안 선거관리를 중립적으로 하고 정말 민심과 남북문제에 전념하려면 대통령 자신이 그 거국 내각을 만들기 직전에라도 당적까지 버려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대통령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그런 위치에서 중립적인 거국 개각을 끌고 간다면 대통령은 정치개혁도 할 수 있다. 대통령 자신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정치개혁을 못했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간에 지구당을 통해 대통령 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하는데, 원래 합의됐던 것은 지구당을 없애기로 했던 것 아닌가. 정당들이 돈 막 쓰고 그런 통로가 지구당인데 이런 것을 없애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자기들 유리한 몇몇 사람들로 대의원 만들어서 전당대회 치루는 것도 대통령제 하에서는 예비선거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주장하고 고집 부려 만들었던 기초 자치단체장을 당에서 공천하는 제도도 없애버려라 이거야. 그래야 일반 지방자치구의 뜻에 따라서 지방정부들이 움직이지. 지금은 정당의 하수인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것도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고 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정말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나라는 잔치가 끝났다. 이번에 WTO, 뉴라운드도 만들어지고, 기회라고 하는데 난 전혀 기회라고 보지 않는다. 농업도 다 망하게 생겼고. 거기다가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날개를 달았지. 용이 날개를 달았다. 우리의 주요 수출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이 장기 불황인 상태에서 우리가 내다팔 물건들을 하나하나 중국이 다 대체하고 있다. 중국이 저렇게 등장한 것은 마치 산사태가 무너지는 것 같다. 내가 이번에 기후변화 협약을 다녀왔지만 교토 의정서가 타결이 되서 그 파워가 우리한테 밀려오고 있다.
***보수파에 업힌 이회창 총재, 불안정하다**
이런 우리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이 착착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내부가 지역의 문제, 계층의 문제, 세대의 문제 특히 남북간의 관계가 이런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고 앞으로 나가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란 말이지. 그런데 정치권의 동향을 보면 마치 정권만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 양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정치 엘리트들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위기다.
여야건 간에 초당파적 자세가 정치인들에게 필요하다.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화해와 전진포럼’이다. 그런데 이게 선거가 앞으로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모여지기가 어렵다. 그래도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뭐 선거 운동 와중에야 그럴 수 없지만.
프레시안 : 국보법이나 이런 정책적 쟁점은 많이 말씀했고 당 구조의 변화나 당 체제의 혁신과 관련해 이회창 총재에게도 한 가지만 요구한다면.
이부영 : 이회창 총재가 당내의 다수파인 구여권, 영남, 민정계의 가치도 인정해야 겠지만 한나라당 안의 소수파, 이른바 개혁적 전망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무시하면 정권을 잡더라도 그 정권이 흡인력 있는 탄력성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세력 대 세력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이회창 총재를 보수적인 영남세가 밀어붙이니까 그 위에 올라서 있는 동안에는 안정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물러나고 민주당을 탈당까지 할 경우에 어떤 구도가 될 것인가를 유념해야 한다. 그만큼 정계 안에서는 유동성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안전한 배라고 생각했던 배가 꼭 그렇게 안전한 배는 아니라는 점을 좀...
프레시안 : 정계 개편 가능성을 이회창 총재가 대비해야 될 것이라는 얘긴가.
이부영 : 뭐 그렇게 확대해석할 것은 없고. 아, 내가 시간이 없어서 미안한데.
프레시안 : 또 찾아 뵙겠다. 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맙다.
(여기까지 인터뷰를 마치고 이부영 부총재는 광주행 비행기편을 예약해 놓아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이회창 총재에게 할 말은 많지만 다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이 부총재의 말대로 이 총재에 대한 공격이 정권교체를 방해한다는 당내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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