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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은 고문, 절망적인 판-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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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악몽같은 고문, 절망적인 판-검사"

[현장] 국가보안법 고문.조작 증언대회

"발가벗겨진 수치심, 쉴새없이 날라오는 주먹.발길질, 물고문, 전기고문 등등 모두 상상만해도 떠올리기 힘든 끔찍한 고통들이다. 그러나 고문피해자들을 마지막까지 절망케한 것은 꼭두각시 같은 검사와 앵무새같은 판사들이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의 주최로 16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고문·용공조작 피해자 증언대회'에선 고문 피해자의 생생한 육성 증언들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그 당시 상황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으나, 자신들이 당한 고문과 조작을 철저히 외면한 검찰과 법원에 대해서는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고문도 악몽같지만 꼭두각시 검사와 앵무새 판사를 보고 절망"**

우선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한 전창일씨. 전씨는 "미군야전침대를 만드는 참나무로 개패듯 패는 바람에 지금도 허리를 잘 못 쓰고,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지하실로 끌고가 팬티까지 벗긴 뒤 도살장 돼지 묵듯 손발을 묵고 매달아 주전자로 콧구멍에 물을 부었으며, 그 다음에는 전기고문이었다"며 "차라리 정신을 잃고 무의식 상태로 있는게 얼마나 편한가를 느꼈다"고 당시의 악몽 같은 상황을 떠올렸다.

전씨는 이어 "검사의 조사를 받게 됐는데 '그래도 검사들이니깐 조금 낫겠지'라고 생각해 검사에게 '성함이나 알고 신문에 응하겠다'라고 했으나 검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옆에 수사관을 2명 세우고 취조를 하다가 고문당하며 진술한 진술서 내용을 부인하면 '왜 진술했으면서 지금와서 부인하느냐'며 수사관에게 눈짓을 했다"며 "그러면 수사관이 나를 끌고 나가 죽도록 고문하고 다시 검사 앞에 피를 흘리고 있으면, 검사가 '왜 그러냐'고 모른척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전씨는 또한 공소장을 받아보니, 검사가 법조인의 양심에 의해 작성한 것이 아닌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그대로였다"라며 "게다가 당시 군사재판을 받는데 전부 군인들인 판사들은 공소장에서 검사가 틀린 철자법까지 그대로 베껴 판결문을 썼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전씨에 따르면 민간법정인 대법원에서는 날조된 1,2심에서의 법정기록을 바탕으로 판결을 내려버렸다. 전씨를 비롯한 당시 인혁당.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에서마저 완전히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법살인'의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다.

전씨는 "나중에 출소한 뒤 그 검사들을 찾아보려 했으나 '그들이 모두 암에 걸려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래도 하느님이 있구나'라고 느꼈다"며 고문 수사관 못지 않게 검사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음을 나타냈다.

***검사에게 고문 호소하자 검사왈 "다시 정보부로 보내!"**

1980년 진도간첩단 사건으로 복역한 석달윤씨의 아들 석관호씨. 석씨는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채 끌려갔고, 수사관들은 매달아 놓고 잠을 재우지 않느 것은 물론, 물고문, 송곳으로 하반신 찌르기, 성기에 볼펜심 찔러넣기 등의 고문을 자행하며, '너 하나 죽어도 의사 진단서 한장이면 된다'고 협박하며 허위진술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석씨는 특히 "아버지는 허위진술을 하고 간첩이 됐고, 친척들은 공작원이 됐다"며 "아버지가 검사에게 '혹독한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다'라고 말하니까, 조사기록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정보부로 다시 보내'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석씨는 "지난 93년 고문을 자행한 수사관들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에선 이미 87년 공소시효가 완료돼 기각했다"며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해 정치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소시효'가 스스로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가족의 공소시효는 따로 없다. 아버지 진실 찾기는 내가 못하면 내 자식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1980년 재일동포 간첩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신귀영씨. 신씨의 형은 재일동포로 신씨는 형에게 아버지 묘비 제작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조총련 접선한 혐의를 뒤집어 쓰고, 해병대 시절 백령도 근무 경험을 얘기했더니 군사시설 첩보 수집 혐의를 씌우고, 고향 친구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고리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원자력 기밀 수집 혐의를 씌워 간첩이 됐다. 이 모든 것이 혹독한 고문에 의한 것이다.

신씨는 "행정부(경찰) 법무부(검찰) 사법부(법원) 모두 공범이다"라며 "얼마전 대법원 앞에 1인 시위를 하러 갔다가 서초동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1심 재판관을 만나러 갔는데 만나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당시 조작 증거들이 나타나 재심 신청을 했으나 대법원에서 기각돼 아직까지 사면복권을 못하고 있다.

***"고문과 가혹행위 알리려면 죽어야 한다 생각했다"**

1990년 노동해방문학 사건. 즉 사회주의노동자연맹, 이른바 '사노맹'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한 이원혜씨. 이씨는 "이 자리에 증언하시는 어르신들 앞에서 감히 내가 '고문을 당했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내가 받은 고문은 미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 역시 안기부 지하 조사실에 끌려가 온갖 구타와 멸시를 당했었다.

이씨는 상황이 조금 나았던게 당시 3일간만 구금이 가능하던 시기로, 처음 끌려갔을 때 수사관들은 별다른 허위자백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씨는 '설마 구속영장이 나오겠나' 싶어 대부분의 진술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씨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서 유치장에 잠깐 내려가 형식적으로 유치신청을 하고 안기부 조사실 고문이 시작됐다.

이씨에게 가해진 고문은 구타와 잠 안재우기 등에 끝나지 않았다. 집을 압수수색해 가져온 물품들 중에 남편과의 연애편지 등 사소한 것 까지 모두 가져와 수사관들은 이씨 앞에서 그 편지들을 읽으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인간적 모멸감과 조롱. 멸시에 대한 분노가 상당히 컸다"며 "국가보안법은 한 사람을 가두어 두고 법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아무런 인권에 대한 배려 없이 사람을 조종할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의 김삼석씨. 김씨도 안기부 조사실에 끌려간 뒤로 구타는 물론 성희롱까지 당했다. 김씨는 그 중에서도 '잠 안재우기'가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김씨는 심지어 "고문과 가혹행위를 고발키 위해 죽을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10일이 지난 뒤 변호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부딪혀 자살하려 했다. 그러나 자살기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부상당한 채로 계속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검찰, 법원, 변호사 모두 허수아비. 국가의 자기 고백과 반성 있어야"**

생생한 고문들에 대한 증언을 들은 뒤, 박연철 변호사(대한변협 인권위원)는 숙연해진 채 "감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말문을 열었다.

박 변호사는 "고문 그 자체가 비인간적임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고문에 의해 얻은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 헌법에 규정돼 있다"며 "고문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한 "검사와 판사들이 개인적으로 수치심과 반성을 고백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까지 판결문이 고쳐지지 않듯 기관이 과거의 과오에 대해 고백하고 반성한 경우는 없다"라며 "국가의 자기고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치권에는 검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간첩으로 암약'했다는 법률적 용어를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라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을 비난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과거에는 재판 도중에 쪽지가 전달됐는데, 그 쪽지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에서 형량을 매겨 보내는 것으로 재판부는 그대로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현재의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됐다 하는데 과거의 자기 판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등 반성을 할 줄 모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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