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의 1년여간의 활동이 올해말 종료되는 가운데, 사개위의 개혁안이 법조계 중심의 '공급자 위주'였다는 지적과 함께 이후 사법개혁 추진 과정에서의 정치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사개위 구성부터 '공급자' 중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조국 서울대 교수)의 주최로 16일 열린 '사법개혁위원회 활동평가 및 향후 사법개혁 전망' 토론회에서는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사개위 구성에 대해 "법원.검찰.변호사 위원 외에 법학교수, 헌법재판소 위원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사법서비스의 수요자로서 사개위에 참석한 위원은 1/3에 미달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철저히 '사법서비스 공급자위원회'의 본질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운영과정에서도 대법원장이 부의한 안건들이 비전문가 입장에선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사안들에 대한 토론이 이어져 로스쿨과 같은 사안에선 법조 각 직역의 정치적 합종연횡을 일부분 반영하고 있다"며 "사개위는 결국 '사법서비스 공급자위원회'로서 공급자 집단의 총 이익을 확보하고 다시 공급자들 사이의 이익충돌을 조정하는데 매달리는 일종의 협상기관으로 시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사개위에서 논의된 안건들에 대해서도 "법원.검찰.변호사의 '법조3륜'의 수평적 관계에서 법원의 '법원 우위', '강한 사법'의 논리에 의해 긴장관계가 유발됐다"며 그러나 "돈을 낼 주체인 사법서비스의 소비자들이 배제된 가운데, 사법서비스의 공급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개위의 논의는 결국 여러 의제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며 내세운 대법원의 승리로 상당부분 귀결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결국 "'배심.참심제'나 '로스쿨' 등의 문제가 국가사회 전방위적인 개혁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후속개혁 작업에서는 '사법서비스의 소비자회'가 소집돼 '사법서비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사개위 종료임박해 졸속 결정"**
이러한 사개위의 '공급자' 중심 운영에 대해 사개위 전문위원인 임지봉 건국대 교수도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의견 결정 과정이 졸속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상고심이 너무나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대법원의 구성과 기능'에 관한 논의가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대법관 증원'으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으나 갑자기 논의가 중단된 후, 전문위원들이 법원행정처장 주최 만찬에 초대돼 빠진 가운데 사개위 위원들만의 회의를 통해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가 다수 의견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사개위 위원인 한인섭 서울대 교수도 "법원이 강력하게 미는 의견이 과반수로 결정되는 것이 필연적이었고, 언론.시민단체.학계가 이에 대해 충분히 견제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의사소통 구조에 있어 법원은 다수의견을 만드는데 노력했으나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러나 "법원 스스로가 사개위 활동 1년이 지나며 사법개혁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바뀌게 된 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검찰 개혁 논의, 사법 지방분권화 등 논의 부족해 아쉬워"**
구체적으로 사개위가 내놓은 안들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는 검사가 기소부터 공소유지까지 모두 독점하는 상황에서 판사보다 권한이 강한 것이 사실"이라며 "검찰을 비롯한 준사법기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한 "사법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법의 민주화'이며 이를 실현키 위해서는 '사법의 지방분권화'를 실현해야 하나, 이 또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독립을 위한 기관이어야지, 사법판단을 획일화 하는 기관이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개위 실무를 맡고 있는 이승련 법원행정처 판사는 "개혁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개혁을 실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역량이 수반돼야 한다"며 "개혁 요구를 제도화 해내기 위해 전문가 중심으로 사개위 논의가 진행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사개위 안은 '논의'일 뿐, 개혁 완성 위해서는 '정치력' 키워야"**
한편 1년간 사개위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비판 받을 부분이 있지만 분명 어느정도 합의안을 도출하는 성과를 냈다고 볼 때, 이후 어떻게 개혁안을 추진해 가느냐의 문제도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사개위에서 결정한 안들은 사개위의 '의견'일 뿐 입법부의 입법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의 사법개혁 논의들 처럼 결국 '변죽'만 울리고 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로스쿨'과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더욱 풍부한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국운 교수는 "사법개혁의 문제는 결국 정치력의 문제로 귀결 될 것"이라며 "대법원이 마련한 사법개혁안 추진을 법무부에 맡기거나 대통령에게 단순히 건의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민사회단체, 여야정당 등을 초청해 설명회를 하는 등 사회적 논의를 확산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는 "현재 준사법기관인 검찰과 경찰 등은 사법개혁 논의에서 빠져있는 상황"이라며 "후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는 반드시 논의 사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번 사개위가 과거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어느정도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라며 "그러나 결국 합의의 실현은 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추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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