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원내대표가 7일 국가보안법 연내처리 유보 방침을 발표한 데 대해, 열린우리당내 재야파가 일제히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여기에다가 당 지도부가 '합의처리'를 강조하는 나머지 3대 개혁입법의 연내처리 전망도 밝지 않아 천정배 원내대표를 사면초가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 재야파 "국보법 연내처리 양보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 재야파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장영달 의원은 8일 오전 "국보법 연내 처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이유로 국보법 처리를 내년으로 미룬 천정배 지도부를 맹성토했다.
장 의원은 이날 재야파 21명 의원과 함께 긴급회의를 갖고 "국가보안법 연내처리는 우리가 민주화를 완성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하고 민족적, 역사적 과제를 청산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박정희가 목숨을 걸고 지킨 것이 국가보안법이고 한나라당 역시 그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당"이라며 "국보법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년으로 미루는 것은 악폐를 내년에까지 연결시키자는 것인데 내년 정치를 초장부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한나라당과 함께 국사를 의논키 위한 원내대표의 전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연내처리가 지혜롭다"고 지적했다.
당초 이들 의원들은 지도부에 국보법 폐지안의 '연내처리'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앞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지도부가 "한나라당과의 타협선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달라"며 극구 만류해 공식 기자회견 일정은 당분간 보류했다. 지도부는 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 응할수도 있다는 반응이 감지됐기 때문에 당분간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 게 장 의원의 전언이다.
그러나 장 의원은 "수삼일간만 지켜보겠다"고 밝혀 지도부에 한시적인 말미를 준 것이지 입장은 굽히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국보법 처리 유보한다고 한나라당이 협조하겠냐" **
국보법 완전폐지론자인 임종인 의원도 "열린우리당이 외치는 개혁의 핵심은 국보법의 폐지에 있고 열린우리당은 연내에 이를 이루도록 흔들림 없이 앞장서야 한다"며 이에 가세했다.
임 의원은 전날 의총에서 국보법의 기습상정을 "열린우리당이 민주세력의 적자임을 드러낸 쾌거"로 규정하고, "천정배 원내대표가 당선되고 가장 잘한 일"이라며 천 대표를 추켜세운 바 있다. 임 의원은 칭찬했던 천 대표가 하루만에 국보법 폐지에 관한 입장을 급선회한 데 대해 강한 배신감을 피력한 뒤, "지도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한나라당과 타협하지 말고 강력하게 나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임 의원은 "국보법 처리를 유보한다고 한나라당이 나머지 법안들에 협조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며, "한나라당과 타협의 산물로 정만 국보법 연내처리가 유보된다면 다른 의원들과 뜻을 모아서, 안되면 혼자서라도 계속 지도부를 비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날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소속의 안영근 의원이 '법사위 기습상정'의 적법성을 문제삼으며 리더십에 반기를 든 데 이어, 이와 성격은 다르지만 재야파도 지도부의 '연내처리 유보' 방침을 정면으로 비판함에 따라, 천대표는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리는 분위기다.
***당원-네티즌, 비난 봇물**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는 당원과 네티즌의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있어 천대표를 한층 곤혹케 만들고 있다.
ID '한천자'는 '기껏 쥐어준 칼자루로 자기 목을 치다니...'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몸을 불태우며 수십만 명이 촛불행진하며,아니 그보다 오래 전부터 민주주의의 제단에 피로 아로새긴 그 이름들의 희생으로 쥐어준,그들로부터 위임받은 칼자루로 당신들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을 치라고 칼자루를 당신들에게 건네준 것이 아니다.기껏 요리조리 당략에 따라 재주나 부리라고 건네준 칼이 아니다. 정의를 바로세우라고 물려준 칼이다"라며 "이제 더이상 입에 발린 소리로 '국민'을 팔아먹지 말고 당장 허울뿐인 오합지졸당 해체하라. 당신들은 칼자루를 휘둘 자격이 없는 당이다"라고 성토했다.
ID '아프락사스'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사람인데 현시국을 보니 점점 실망스러워진다"며 "날치기 상정이란 소리까지 각오하며 법 상정을 한건 진작 쇼였단 소린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천정배 대표의 어제 발언은 다된 밥에 재빠뜨리는 격"이라며 "열린우리당은 오합지졸이 되지말고 창당 목적이 뭐였는지 기본부터 되짚어야 할 때"라고 질책했다.
자신이 당원임을 밝힌 ID '임용제'는 "이건 뭡니까? 유보라니요"라며 "안됩니다. 내가 왜 촛불 들고 설쳤는데요,왜 여의도에 가서 울었는데요. 그럴라고 당신네들 찍은거 아니고 그럴라고 당신네들 위해 핸폰 문자 보낸 거 아닙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만약 이번에 4대 입법이 통과 되지 않는다면 난 당신들을 민족 반역자로 규정합니다. 당연 탈당입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ID '허탈'은 "지금까지 당신들을 지지해준 내가 바보"라며 "대권과 과반수 의석을 준 우리를 철저히 배신하다니 스스로 당을 해체해라. 더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4대입법 연내처리 물건너가나**
국가보안법 외의 다른 3개 법안도 연내 처리 전망이 불투명해 지도부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당은 전날 국회 교육위 논의사항인 사학법개정안 상정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여야 간사협의에서 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연내에 강행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가까스로 개정안을 상정시킬 수 있었다.
강행처리 방침을 철회함에 따라 우리당의 사학법 개정안 연내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관측이 많다. 김현미 대변인은 8일 "표결처리는 강행처리가 아니다"라고 연내처리 의지를 밝혔으나, 법안심사 소위가 여야 동수로 구성돼 있고, 황우여 교육위원장이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문광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의되고 있는 언론관계법도 여야간 입장차이가 큰 상태여서, 연내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과거사기본법도 행자위에 상정조차 안된 상태. 다만 친일진상규명법이 한나라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전체회의에 회부됨에 따라 과거사기본법도 핵심쟁점에 대한 의견조율을 이룰 가능성이 남아 있다.
만약 국보법과 함께 나머지 3개 법안의 연내 처리마저 불발로 그칠 경우 지도부로서는 심각한 리더십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내 모든 세력이 '4대입법' 처리를 내년 전당대회 향배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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