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태춘씨, 만화가 이두호씨, 그리고 화가 신학철씨는 예술가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검찰의 잣대에 의하면 국가보안법이나 청소년보호법 등을 위반한 범법자들이라는 점이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가 표현자유 침해와 검열사례들을 모아 7일 발간한 ‘표현의 자유 침해백서’에서 밝혀진 것이다.
신씨는 자신의 작품 ‘모내기’가 전시된 후 3년이 지나서 갑자기 국가보안법상의 고무, 찬양죄로 고발돼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정태춘씨는 음반에 대한 사전검열을 계속 거부하다 음반법위반으로 기소됐고 이두호씨는 자기 자녀들도 즐겨보던 자신의 만화가 폭력적이고 음란하다며 당국에 의해 청소년보호법위반 혐의로 취조를 받은 후 충격으로 한때 절필하기도 했다.
이 백서에 따르면 3백명의 국내 예술가를 대상으로 '창작행위와 관련, 어떤 법률에 저촉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가보안법이 74.2 %로 1위로 나타났고, 음반 및 비디오, 게임 등에 관한 법률이 12.9%로 두 번째였다.
이는 아직도 정치적인 문제나 이념표현에 대한 부담감이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저하시키는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또 음반법이 저촉 법률 중 두 번째인 것은 독립레이블의 음반이나 독립영화 등이 일단 심의 없이 배급되다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생각되는 법’을 묻는 문항에서는 역시 75.9%로 국가보안법을 첫째로 꼽았고, 청소년 보호법이 8.4%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기존의 풍속법 등으로 음란물 처벌이 가능한데도 이 법들을 계속 존치시키고 있는 것은‘옥상옥’이라는 예술가들의 불만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같은 표현침해에 대해 민예총의 정은희간사는 “예술창조의 기본적 요건이 표현의 자유인데, 갈수록 국가기관이 표현의 구체적인 사항까지 법으로 간섭하는 점이 문제"라고 밝히고 "당국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국민을 청소년수준으로 바라보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또 이번 백서에 실리지는 못했으나 울산인권영화제에서 현대노조의 압력으로 상영이 취소된 독립영화‘밥,양,꽃’이나 월간조선 10월호의 용공성보도로 상영기회를 잃은 영화‘애기섬’ 문제 등 이익단체나 언론 등의 예술에 대한 사적인 검열과 압력도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소년보호위원회 이주연 사무관은 “청소년보호법 등은 검열법이 아니라 창작물을 청소년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법”이며 ‘옥상옥’이 아닌 각개의 법들을 종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미 사회에 음란물이 퍼진 상태에서의 사후 검열 실효성에 대해서는 “(살인 등을) 법으로 막아도 범죄가 일어나니까 법이 필요 없다”는 식의 주장은 억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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