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현명한 판단으로 피고인의 범행을 밝히고 피해자 가족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검사 대역 김진 변호사)
“갑작스럽게 범인으로 몰린 피고인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내린 것 같고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라도 범인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습니다.”(변호인 대역 한택근 변호사)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민사 대법정에서 벌어졌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형사 배심.참심 모의재판’을 열어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를 시연했다.
***사개위, 배심제, 참심제 모의 재판 열어 ‘시민의 사법 참여’ 가능성 모색 **
배심제와 참심제는 사법 판단에 일반 시민을 참여토록 하기 위한 제도로 사법 권력의 절대성과 오심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배심제는 12명의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석해 유.무죄를 가려 판사에게 통보하는 것이고, 참심제는 일반시민 2명이 판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판관으로 참석해 판결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12명의 배심원이 모인 법정은 기존 한국의 법정 풍경과 사뭇 달랐다. 과거 딱딱한 문서더미와 법률용어로 판사에게 증거가 제출됐으나, 배심제에서는 각종 증거자료가 치밀하게 준비돼 배심원들에게 소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변호사와 검사들은 일반 시민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철저하고도 치밀한 논리전개를 펼쳐야 했다. 기존 법정에서 판사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되던 재판이 일반시민들의 시점으로 내려온 것이다.
게다가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들이 자칫 상대측의 유도심문에 현혹될까봐 연신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를 외쳐댔다.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의 객관적 판단을 유도하는 역할에 그쳤다.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이날 모의 재판은 실제 살인사건을 모델로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 증인 등 배역을 나눠 진행됐다. 20대 남성이 유흥비 마련을 위해 공원에서 주부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사건이다.
피고인을 검거한 경찰(대역)이 증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검사: 피고인이 범행시간 당시 친구와 당구를 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증인: 빗나간 우정으로 인한 허위 알리바이 주장입니다.
변호사: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증인으로 하여금 사실관계를 증언케 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개인적 판단을 묻고 있습니다.
판사: 이의를 받아들입니다. 검사는 증인으로 하여금 정확한 사실만을 증언하도록 주의를 주십쇼. 배심원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증인은 개인적 판단에 의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증인의 지금 발언은 이번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유의하시기 바립니다. 속기록에서도 삭제해주시길 바랍니다.
2명의 시민이 판사로 참여하는 ‘참심제’에서도 법복을 입지 않은 일반 시민은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에게 “증거물로 압수한 옷에서 혈흔을 발견했습니까?” 등 신문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은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들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결국 이날 모의재판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번 모의재판의 모델이 된 실제 살인사건에서도 피고인은 1심에서 무죄를 받고 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를 받았었다.
***배심원 “우리 시민 의식 많이 달라졌다”**
배심원 선정은 서울중앙지법 관내의 관악구, 서초구, 성북구(주민 합계 1백38만명)에 대해 선거인명부에서 각 투표구별로 무작위 추출한 2명씩 명단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수집된 5백76명에 대해 배심원 참석 가능 여부를 우편으로 확인한 뒤 참석의사를 밝힌 41명 중 선발 절차를 거쳐 최종 배심원 12명 및 예비배심원 2명을 선발했다.
참심원은 같은 대상지역 구의회에 4~5명의 후보자 추천을 의뢰해 주거지, 연령, 성별, 경력 등을 고려해 최종 2명(40대 남자 1명, 50대 여자 1명)을 선정했다.
배심원으로 참석한 심묘수(54. 주부)씨는 “처음 유죄 의견을 냈다”며 “그러나 합리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거가 인정돼야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생각을 차츰 고쳐 나갔다”고 말했다.
심씨는 “정서적으로 지연.학연에 얽혀 공정한 판단이 내려질까 부정적 생각도 있었지만 배심원 재판을 보면서 우리 시민의식도 많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며 배심제 도입에 대한 찬성의 뜻을 밝혔다.
사법개혁위원회는 ‘사법제도의 민주화’ 차원에서 ‘시민의 사법 참여 방안 모색’의 일환으로 이번 모의 재판을 열었으며, 그동안 공청회 토론 결과 및 이번 모의 재판 과정을 분석해 올해 말까지 배심.참심제도의 도입 여부에 대해 결정할 방침이다.
***사개위, 배심제.참심제 장.단점 분석해 연말게 도입 여부 최종 결론**
배심제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고 국민참여의 의의를 크게 살릴 수 있고, 직접주의. 집중심리의 철저한 실시가 불가피해 충실한 재판이 가능하고 오판을 줄일 수 있으며, 상식에 기초한 판단이 이뤄져 일반인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재판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배심제는 그러나 배심원들이 사실 인정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어 오류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고, 배심원이 전문적이지 않아 언론이나 여론 또는 자신의 선입견에 의해 판단할 수 있고, 증거관계가 복잡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건의 경우 배심원들이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비용과 시간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참심제 또한 법관에 대한 전반적인 견제 기능을 할 수 있고, 국민에게 재판 및 심의 과정이 실질적으로 공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배심제에 비해 국민의 사법참여라는 점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고, 일반 시민인 참심원이 직업 법관과 대등한 위치에서 합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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