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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도 포기하고 가게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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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도 포기하고 가게 내놨다"

[불황 현장]상인들 "장사 30년만에 이런 불황은 처음이야"

연일 사람의 체온만큼 뜨거운 폭염이 계속되던 12일 오후 4시경 서울 공덕동 로터리에 위치한 공덕 시장. 저녁거리를 준비할 시간임에도 시장통은 한산했다. 에어컨은커녕 천막 지붕 아래에서 좌판을 열고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는 채소가게 김모 할머니(72)에게 말을 건넸다.

"요즘 더우시죠? 장사는 되세요?"
"장사는 무슨... 말도 마. 장사 30년만에 이런 불황은 처음이야."

***"요즘 장사되는 집은 닭집 밖에 없어"**

상추, 배추, 무 값을 물어보며 얘기를 이어갔다. 2주 전만해도 근(4백g)당 2천원하던 상추가 지금은 4천원이랜다. 무도 1천원 가량 올라 큰 건 개당 3천원씩 받는다. 다른 채소도 역시 값이 많게는 배 이상 오른 건 말할 것도 없다. 대학가 1인분 3천원짜리 삼겹살 집에서는 상추 없이 깻잎만 주는 집도 생겼다. 김치도 금(金)치다.

"이러니 사람들이 다 비싸다고 뭐라 그러고, 나도 무안해서 장사하기 힘들어. 그래도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단골들인데...요즘 장사 되는 집은 닭집밖에 없어."

할머니는 "(공덕 시장은) 다른 대형 시장만큼 장사가 크게 되는 곳은 아니지만, 동네 시장이라 경기를 타지 않고 찬거리 사러 오는 사람들로 수입이 꾸준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대형 마트들이 생겨나고 불황이 지속되면서 "하루에 5만원도 팔기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게다가 최근 만두 파동, 중국산 농산물 유입 등으로 사람들이 점점 재래시장을 외면하고 보기에도 깔끔하고 안전해 보이는 대형 마트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나름대로 시장 상인들의 분석이다. 이렇게 더운 날엔 채소들이 금방 시들시들해버려 오전 장사 아니면 제 값 받고 팔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부러워하던 닭집 주인도 '조류독감' 파동으로 본 손해에 비하면 요즘 복날 나가는 닭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나마 큰 식당을 끼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미 대형 마트에 손님을 다 빼앗겼다고 한다.

<사진1> 공덕시장통

***"요즘 누가 재래시장 가나요?"**

건너편 생선가게 박씨 아저씨도 거들었다. 인근 식당에 생선 주문 받고 가는데, 식당 주인이 채소도 함께 주문한 모양이었다. 할머니에게 마늘과 미나리 등을 챙기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이런 재래시장 오나요? 더군다나 이렇게 푹푹 찌는데, 누가 이런 시장 바닥에 와서 장바구니 들고 땀 뻘뻘 흘리며 장을 보나요? 다 시원한 대형 할인마트 가서 장보죠."

박씨는 재래시장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이 근처 다 돌아보세요. 장사하는 사람들 나이가 어떻게 되나. 다 예순이 넘은 사람들이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재래시장에 와서 장도 보지 않는데, 하물며 장사는 하고 싶겠어요? 예전엔 그래도 시장에서 판 벌이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재벌은 아니어도 동네에서 현찰 좀 굴릴만한 정도는 됐었는데..."

최근 충북 청주의 50년 전통의 서문시장은 1백50개의 점포 중 빈 점포가 30개나 되자 점포를 무료 임대하기까지 이르렀다.

<사진2> 텅빈 재래시장

그나마 박씨는 지붕 있는 점포를 갖고 있어 정부가 최근 마련 중인 재래시장 지원책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고 가게를 그럭저럭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30여분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 채소 좌판엔 앞 방앗간에서 콩국을 산 40대 주부가 오이 값을 물어보더니 그냥 갔다.

***"오는 손님수는 그대론데, 매출은 절반이다"**

그렇다고 대형 마트가 그렇게 사정이 좋은 것 같지도 않다. 대형 할인마트들은 최근 무더위로 인해 선풍기 등 여름용품 판매가 늘고 열대야를 피해 모여드는 손님들로 반짝 경기를 누리고 있지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 주거 밀집지역 상가 단지에 입주해 있던 대형마트 J마트의 사장 유모(52)씨와 이모(48)씨 부부. 부부는 1개월 전 가게를 정리했다. 개업 2년만이다.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 IMF 때도 남들 전부 '힘들다. 힘들다' 말해도 사실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 그냥 사람들 장단 맞추느라 '힘들다'고 말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때랑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이대로 가다가는 투자 비용도 건질 수 없을 것 같아 과감하게 가게를 정리했다."

이들 부부는 10년 전부터 '슈퍼마켓'을 운영해왔다. 처음에는 인천 삼산 지구에서 50평 규모의 점포를 운영했다. 매일 새벽6시부터 밤11시까지 가게를 지키고 물건을 진열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지만, 벌이가 나름대로 좋았다. 마진률이 40% 정도 됐고, 생필품을 파는 곳이라 경기도 타지 않았다.

<사진3> 무료임대

이렇게 10년을 장사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 5백평 규모의 대평 마트를 열었다. 주거 단지는 10평 안팎의 원룸에 젊은 공장 노동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어 수요는 탄탄했다. 새로 간척해 조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위험은 있지만 기존 상권을 파고들어야 하는 부담도 덜했다.

규모에 맞게 마트 안에 쌀가게와 생선가게, 정육점, 문구점도 입주시켜, 대기업에서 하는 마트는 아니지만 대형 마트로서의 구색을 갖췄다. 직원도 10명이나 고용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돈을 안 쓴다. 전에는 100 나가던 것이 지금은 50 나간다고 보면 된다. 전산관리를 하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데,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 수는 똑같은데 수입은 반으로 줄었다. 사람들이 전에 1천원 쓰던 걸 요즘은 5백원만 쓴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돈을 쓰기 때문에 슈퍼마켓에는 불황이 없을 것 같다고 말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정말 어려우면 생필품 값도 아낀다."

<사진4> 김밥

***"권리금도 포기하고 가게 내놨다"**

불황은 음식점들도 강타하고 있다.

대전에서 15~25평 아파트 5천여세대와 40평형 7백20세대가 몰려 있는 아파트 단지 인근 상가에서 8년 동안 5평 규모의 조그만 분식점을 하던 이모(63. 여)씨. 그는 3개월 전 가게 문을 닫았다. 메뉴는 주로 김밥과 칼국수, 돈까스 류였는데, 나름대로 음식솜씨가 좋아 상가 상인들이 주 고객이었고,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많고 임대아파트도 있기 때문에 주로 젊은 세대 위주의 서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2년 사이 비슷한 형태의 점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어머니 김밥', '또와 분식' 등등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분식점이 10개도 넘게 생겨났다. 게다가 가격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씨는 김밥 한 줄을 2천원에 팔았다. 재료도 아끼지 않았고, 크기도 컸다. 2천원은 해야 그래도 맛있게 먹을 만한 김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인근 분식점들의 1천원짜리 김밥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값이 절반인 김밥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씨는 2천원의 김밥값을 고수했다. 덕분에 아이들 도시락이나 소풍용 김밥을 찾는 부모들은 2천원짜리 김밥을 종종 사다먹었다.

<사진5> 상가 임대표

하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기본적인 수입원이 되던 상가 상인들이 점포를 철수하고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설상가상으로 힘겹게 살아남은 점포 상인들도 도시락을 싸다니기 시작했다. 야속하지만 그 사정 뻔히 아는데 싫은 기색 한 번 할 수 없었다.

1천원짜리 김밥을 팔던 다른 분식점들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지나친 출혈 경쟁과 불경기로 인해 문을 닫는 가게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수지타산이 맞아야 장사도 하죠. 사람들은 먹는 장사라면 불경기도 없고, 볼황 때도 어차피 밥은 먹지 않느냐 그러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불황 때면 너도나도 먹는 장사에 뛰어들기도 하고. 요즘 같아선 정말 힘들어요. 밥 장사만 15년을 했지만, 이제 나이도 먹고 힘도 빠지고 지금 버텨서 계속 이 장사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상가 관리비도 안 나오는 장사 계속 하다가는 더 큰 빚만 지게 될 것 같아 집안일도 있고, 과감하게 관뒀어요."

그나마 이씨는 가게 문은 계속 열려고 했다. 가게가 계속 장사를 하고 있어야 가게 '권리금'이라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놓은 지 5개월이 넘어도 가게는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전기세, 수도세, 인건비, 기본적인 재료비 등 유지비만 계속 지출되기 때문에 하루에 10만원씩 적자를 보며 가게를 계속 할 수 없었다. 문 닫은 3개월 사이 마이너스 통장 한도 5백만원도 다 찼다.

<사진6> 폐업정리

이씨는 취직한 아들들에게서 용돈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뻔한 월급인데, 내가 빼앗아 오면 걔들은 얼마나 더 힘들겠냐"며 "미안해서 용돈 올려달라는 말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다 싸와서 먹지 길에서 뭐 사먹지 않는다"**

이같은 극심한 불황에 대해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성과 휴가철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결합됐다는 주장도 있다. 손님들이 피서를 떠나 소비가 줄어 그런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피서지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도 결코 좋은 편이 아니다.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면서 대전에 살고 있는 윤모(46)씨, 최모(44)씨 부부. 대전에서 5평 되는 점포에서 배달 전문 족발집을 하지만 매년 7월말이면 과감하게 1달씩 가게 문을 닫고 충북 옥천 등지에서 옥수수와 감자 등을 사 짊어지고(강원도 옥수수는 8월이 돼야 여문다고 한다) 강릉 친정집으로 간다. 경포대 등 해수욕장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다. 친정 어머니가 휴가철마다 가판을 열지만 일손이 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철 장사 수입이 족발집 한 달 수입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사진7> 해수욕장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하루에도 10번씩 옥수수를 쪄 날랐는데, 요즘은 오전에 쪄 나간 옥수수가 점심때가 다되도록 그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먹을 걸 죄다 싸와서 먹지 돈을 안 써요. 그나마 애들이 졸라야 한 두개 사 먹지, 지갑 참 안 열리더군요. 집에 한 가득 옥수수가 쌓여 있는데 이를 다 어쩌나 몰라."

나름대로 최씨는 "요즘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피서지가 구석구석 개발이 많이 돼서 사람들이 다 흩어지는 바람에 경포대 같은 전통적인 피서지는 예년만 못한 것 같아요"라며 "마찬가지로 먹거리도 몇몇 유명한 집만 미어 터지지 안 되는 집은 정말 파리만 날린다. 예전엔 사람들이 피서지에서 쓰는 바가지도 그냥 휴가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알뜰해진건지, 진짜로 다들 돈이 없는건지 모르겠다"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사진8> 할인

***"땡팔이라도 해야 가을 장사를 하지"**

불황은 5만여 상가가 운집해 있는 국내최대시장인 남대문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9년째 의류점을 하고 있는 김모(49)씨는 올 여름 '10년만의 무더위'라는 말에 평년보다 수영복을 더 들여 놓았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들여 놓은 수영복 반도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영복은커녕 반바지도 몇 장 못 팔았다"고 하소연이다.

"이제 8월 넘어갔으니깐 수영복도 끝이죠. 이제 가을 옷 들여 놔야 하는데, 자금이 회전이 돼야 옷을 들여놓지"라며 울상을 지었다. 의류상가는 이번주가 휴가지만, 김씨는 너무 답답해 휴가도 못가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의류 시장에는 '땡팔이'가 한창이란다. 철이 지나기 전에 재고 정리를 위해 헐값에 물건을 내놓은 것인데, 땡팔이라도 해야 가을 옷을 들여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손해보고 파는 장사꾼이 어디 있냐고 그러는데, 이런 불황에서는 손해 보며 파는 장사꾼들이 진짜로 있다. 1백만원 손해볼 거 50만원만 손해보면 장사꾼한테는 그게 남는 것이다"라며 "땡팔이 물품이라고 괜히 의심하지 말고, 잘 고르면 좋은 제품을 많이 고를 수 있다"고 귀뜸하기도 했다.

김씨는 "올해는 추석이 9월인데, 그 때 되면 이 장사를 계속 해야 할지, 정리해야 할지 결판이 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어쉬었다.

장사가 안되고 되고는 권리금, 시쳇말로 '자릿값'이 바로미터다. 남대문시장은 요즘 자릿값이 폭락한 상태다. 평당 4천~5천만원 하던 것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고, 이제는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인들 가슴에는 폭염보다 더한 열기가 가득해 보였다.

남대문 상가 건너편 북창동. 몇해전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서울 강북 최대의 환락가로 떠올라 수십년간 장사하던 음식점 등이 모두 쫓겨나고 룸살롱이 빼곡히 들어서며 밤만 되면 불야성을 이루던 이곳도 지금은 내놓는 룸살롱들이 줄을 잇고 있다. 수억씩 들여꾸민 내장비를 날리더라도 하루빨리 문을 닫는 게 그나마 덜 깨지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 택시기사는 "예전에는 밤손님이 없으면 북창동에 오면 더블로 손님을 태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이곳도 빈택시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기 마찬가지"라며 "불황도 이렇게 지독한 불황은 처음"이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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