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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꿈꾼다"

[더불어숲학교] 미술가 임옥상 화백의 미술 이야기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꿈꾼다"는 미술가 임옥상. 그가 더불어숲학교(교장 신영복)에서 자신의 미술 세계에 대해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털어놨다. 1시간 30분만하기로 했던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도 지루한 줄 모르는 새 훌쩍 3시간이 지나 있었다.

***"내 작품은 미술관에 갇힌 '만지지 마시오'가 아닙니다"**

지난 13~14일까지 1박2일 동안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에 위치한 '개인산방'(開仁山房)에서 열린 더불어숲학교 제 13강 '미술... 나의 이야기'란 주제로 임옥상 화백이 강연을 열었다.

임옥상 화백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작품이 화실과 갤러리보다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데 있다. '당신도 예술가' 행사를 통해 인사동 거리, 여의도 광장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부터 새만금 갯벌까지 어디든 가리지 않고 활발히 누비며 수많은 참여 미술 행사를 이끌었다.

<그림1.2> 당신도 예술가

***서울녹색병원의 임옥상 팬들**

이런 '거리의 미술가' 임옥상 화백이 더불어숲학교에서 가장 침을 튀어가며 자랑하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서울녹색병원의 벽화였다.

<그림3> 서울녹색병원 벽화(작품명: 노동을 위하여, 2003)

서울녹색병원은 원진녹색병원과 같은 재단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직업병이 인정된 원진레이온 사건을 계기로 산재.직업병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임 화백은 녹색병원으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무얼 할까 고민하다 흉물스럽게 우뚝 서 있는 엘리베이터 탑에 주목했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에 노출돼 있어 강한 햇빛, 비, 바람, 눈을 모두 견뎌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재료를 선택하지 못했는데, 마침 시멘트에 섞어도 색이 변하지 않는 시멘트용 피그먼트를 발견해 벽화를 그리기로 했단다.

그리고 지금처럼 벽화를 그리게 됐는데, 처음에 완성하고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병원 앞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에게 은근슬쩍 물어봤단다. "저기 병원에 벽화 보고 사람들이 뭐래요?", "아. 그거 난리에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사진도 찍어가고 그래요." 임 화백은 "저거 제가 그린 겁니다"라며 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그림4>서울녹색병원 벽화(작품명: 노동을 위하여, 2003)

임 화백은 녹색병원의 경영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해 '작품료'를 모두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임 화백은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집에 있던 작품 몇 점을 병원 벽에 걸었다. 그런데 입원 환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더란다. 게다가 자기 작품을 가장 열심히 봐주는 사람들이 입원 환자들이라는 것이다. 어디 딱히 갈데고 없는 환자들이 심심하면 나와서 작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감상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임 화백은 "집에 쑤셔 박혀 있는 작품을 앞으로 계속 병원에 가져다 걸 것"이라고 말한다.

***'꿈꾸는 별이 뜨는 학교'**

임 화백의 '거리로 뛰어든' 공공미술은 최근 학교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꿈꾸는 별이 뜨는 학교' 프로젝트인데, 국민은행의 후원으로 회색공간에 둘러싸인 아이들에게 꿈과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학교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미술 프로젝트다.

그 첫 번째 학교로 아이들과 함께 서울 구로구 영일초등학교의 담을 그렸고, 경기도 광주의 분원초등학교는 주변에 백자 가마터가 있음을 착안 운동장 한켠에 쉼터를 만들었다. 이밖에 최근 인천 서화초등학교의 '책 나무'를 포함, 모두 6개 학교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림5,6>'꿈꾸는 별이 뜨는 학교'

***매향리**

임 화백은 열렬한 '운동가' 이기도 하다. 최근 폐쇄 결정이 내려진 매향리 사격장에도 임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림7> 매향리 조형물

매향리에 관한 작품을 의뢰 받고 한동안 고민했던 임 화백은 구상이 떠오르지 않아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정답은 '현장'에 있었다. 현장에서 뒹구는 폭탄 파편들과 집집마다 쩍쩍 갈라진 담장을 보며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임 화백은 유린당한 이 땅과 고통 받는 매향리 주민을 형상화시키기 위해 파편 쇳덩이들을 이어 붙여 유기체를 만들었다. 그 흉물스런 모습에서 불굴의 정신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적게는 5kg에서 많게는 250kg이나 되는 포탄을 용접해 이어 붙였다.

***숟가락으로 만드는 예술-청와대 녹지원 벤치, JSA 엘자**

<그림8>청와대 녹지원

임 화백의 주요 '재료' 중에 '숟가락'이 있다. 그의 작품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볼 수 있는데,숟가락으로 벤치를 만들었다. "대통령이 벤치에 앉아서 쉴 때 민중들의 밥 그릇을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숟가락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단순히 우스개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임 화백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설치한 소 한 마리도 인상적이다. JSA 경비를 맡고 있는 스위스에서 플라스틱 소를 한 마리를 기증하며 임 화백에게 작품을 의뢰했는데, 임 화백은 이 소를 어떻게 형상화 할까 고민하다가 알미늄으로 소를 코팅하고 역시 포크, 나이프를 이용해 날개를 달아줬다. "처음 스위스측에서 예산을 2백만원만 지급할 예정이었는데, 조르고 졸라 7백만원을 받아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런데 임 화백은 이 역사적 조형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주 관심사이기도 한 미군 문제가 그 것인데, 미군 부대에서 나온 중고 포크, 나이프를 구하려 해도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양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군 기지 근처를 헤매고 다니다가 포기할 무렵, "내 이렇게 쓸 날이 올 줄 알았지"라는 어느 농가 주인으로부터 창고 가득 쌓인 미군 포크와 나이프를 얻었다. 그 농부는 주변 미군 기지에서 버려진 포크, 나이프를 한,두개씩 꾸준히 모아 창고에 쌓아뒀다는 것이다. 임 화백은 몇 날 몇 일 녹을 벗겨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9> 엘자

***흙돌담 '세월'**

붉은 '황토'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유명한-그래서 '빨갱이'로 몰리기까지 한- 임 화백은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전남 영암 구림 마을의 '세월'이라는 작품을 꼽았다. 삼한시대부터 도자기 가마가 있었던 곳으로 '구림 흙 축제'가 열렸는데, 처음에는 논바닥에 황토로 만든 두상을 박아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낭패가 생겼다. 당시 외국에서 체류하다 축제를 위해 급히 귀국했는데, 논 곳곳에 황토가 쌓여 있고, 이미 다른 작가가 비슷한 컨셉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임 화백은 시간은 없고,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작품은 못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며 마을을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으니, '흙담'이었다.

임 화백은 바로 다음날 마을 주민들에게 작품의 취지를 설명 하며 "돌 하나씩만 갖다 쌓아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작품 취지에 공감한 마을 주민들은 돌 하나씩을 들고 와서 임 화백과 함께 담을 쌓으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운데 감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며 작품을 만들었고, 결국 마을 사람들 모두의 손이 모인 마을 사람들의 작품이 됐다는 것이다. 임 화백은 "그 와중에 이 소식을 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통해 '국회의원 OOO' 글씨가 박힌 돌을 보내와 난처했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10> 세월

***분당 율동 책테마파크, 그리고 경주...**

세월의 '나선' 컨셉은 최근 임 화백이 공모전에서 당선된 분당 율동공원 책 테마파크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임 화백은 건축가 승효상씨와 함께 나선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가 지하로 내려간 뒤 다시 원형 광장으로 나오는 동선의 공원을 기획해 착공에 들어갔다.

그의 도시와 공원, 환경에 대한 관심은 최근 경주에 까지 이어져 있다. 경주의 상징이 될만한 테마 공원을 구상중인데, 경주가 고분의 도시임을 감안해 움푹 팬 광장을 구상중이다. 위로 솟은 고분을 양(陽)이라고 봤을 때, 음(陰)을 만들어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구상이 실현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다.

***"사회를 꿈꾼다"**

임 화백은 스스로를 '영원한 아웃사이더'라고 부른다. 임 화백은 그러나 자기 자신의 세계에 갇히길 거부한다. 그는 "내가 꾸는 꿈은 나 개인의 꿈이 아니고 사회다. 나의 화두는 미술의 공공성·사회성이다. 생태적 미술! 집단이기주의와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여하히 미술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진> 비조불통 계곡

***대자연에서 어울어지는 한마당, 더불어숲학교**

임옥상 화백과의 흥미진진한 미술 이야기는 갑갑한 도시의 화랑이 아니라 대자연의 풍취가 넘치는 인적 드문 계곡이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3시간의 강의에도 선생이나 학생이나 지치지 않고 밤하늘 가득한 별을 등불삼아, 모닥불을 안주 삼아 향내 가득한 더덕 막걸리와 함께 새벽까지 이야기와 노래가 이어졌다.

더불어숲학교는 지난 해 10월 18일, 한국의 비경(秘境)인 내린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산계곡의 개인산방(開仁山房)에 열었다. 장엄한 암벽과 소나무와 개울이 어우러져 실경산수화를 재현하고,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는 비조불통(非鳥不通)계곡의 원시미(原始美)가 압도하는 절경이다. 최근에는 개인산방에서 인근 '살둔산장'까지 이어지는 옛길이 열려 원시림을 체험할 수도 있다.

더불어숲학교는 강제되는 것이 없다. 스스로 여유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꽉 짜여진 일정은 그저 가이드 라인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더불어숲학교 학생은 단골 손님이 많다. 계절마다 천차만별인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올 때 마다 새로이 사람들을 알아가는 설레임이 있고, 강의마다 바뀌는 선생님들 저 마다의 독특한 강의를 들으며 많은 것을 담아 돌아간다.

더불어숲학교는 대자연의 깊고 아늑한 품에서 주말의 하룻밤을 묵으며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줄 문화적 주제들에 대해 강의, 토론하고 나아가 대안도 모색하며 살아 숨쉬는 문화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는 6월23일부터 27일까지는 전지(轉地)강의행사로여름 특강 '백두산 야생화 트래킹'이 열리고, 8월4일부터 7일까지는 2박3일 동안 미산계곡 개인산방에서 신영복 교장 선생님과 함께 음악제와 영상제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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