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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여섯가지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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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여섯가지 모순

[한반도 브리핑] '아시아 패러독스'보다 '한반도 패러독스'가 문제다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가 한국외교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표현으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정치 및 안보분야의 협력수준은 매우 낮을뿐더러 영토분쟁, 군비경쟁, 역사논쟁, 핵무기개발 등 지역안정을 위협하는 요소가 증가되고 있는 면을 가리키는 것이다. 최근에 개최된 한-아세안정상회담과 동아시아정상회담에서 다시 강조하면서 한미 및 한중 정상회담에서 제안했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다자외교 이니셔티브의 주요개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진단은 일단 정확한 지적이고, 국제사회에서도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한 공감을 기반으로 한국이 중견국으로서 아시아외교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정세를 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패러독스 해결을 위해 연성이슈들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어려운 경성이슈들도 협력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기저에 깔고 있는데 새로운 방법론도 아니며,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참여국들의 실천의지와 헌신이 매우 중요한데 끌어내기가 쉽지 않고, 연성이슈에서의 협력이 일어난다 해도 경성이슈로의 확산(spillover)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용어 자체가 높은 경제적 상호의존도라는 연성이슈에서의 협력관계가 경성이슈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어려운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용어가 아닌가? 결국 순환논리일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긴급한 경성이슈를 많이 가진 한국의 입장에서는 연성이슈에 집중할 여력이 크지 않다. 잘못하다가는 지금도 적지 않은 정상 간 회담이나 기구들만 늘어날 뿐, 실제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참여국가의 숫자와 규모만 증가시키는 옥상옥(屋上屋)이 되어 시간과 외교자원을 낭비하기 쉽다. 매우 급박하고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의 세력재편과 이에 따른 한·미·중·일 4국의 치열한 외교전에 보다 집중해야 할 외교력에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아시아 패러독스를 내세우기 이전에 우리가 당면한 한반도 패러독스 또는 딜레마상황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함께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한국이 당면한 한반도 패러독스 상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패러독스는 한국의 국력 및 군사력이 세계 10위권에 이를 만큼 성장했고, 지난 20년간 북한보다 10배나 많은 군사비를 지출해왔으며, 40배나 많은 GDP를 가지고 있음에도 전쟁에서 군대를 독자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전작권 환수가 한차례 연기되었음에도 현 정부는 다시 연기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여론은 자신들은 재정위기로 국방비삭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안보 무임승차의 책임회피를 한다고 비난하는 분위기다.

▲ 지난 2일 서울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5차 한미 안보협의회의 ⓒAP=연합뉴스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고 자신은 약화되는 상황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최대의 전략적 목표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에 군사적 부담을 가능한 한 많이 부담시키려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들고 나와 안 그래도 한참이나 기울어진 한미관계를 더욱 열세로 몰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진행되었던 전작권 환수문제를 국내 정치맥락에서 이념대결의 프레임을 입히고, 안보 담론을 통한 권력 강화에 이용하고 있다.

둘째 패러독스는 한국의 국방력이 업그레이드되고 한미동맹은 어느 때보다 견고해졌다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실제 체감안보는 한층 불안해졌다는 부분이다. 북한도발이 1차적 원인이지만 억지(deterrence)라는 측면에서는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전면전에 대한 억지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서해에서의 충돌이나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보듯이 도발이나 국지적 충돌에 대해서는 비효율적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오히려 안보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자주포 80발이 전부일 정도로 미약한 대응을 했다. F-15와 F-16이 발진했으나 실제 공격은 무산되었다. 공격무산이 미국의 압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미 양국 모두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셈이 되었고, 북한으로 하여금 국지도발에 더 적극적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전작권문제와도 연결된다. 북의 국지도발에 대해 한미공동대비계획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전작권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반격을 하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고, 북한은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즉, 한국에 작전권이 없는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더 모험적인 행위를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셋째 패러독스는 정부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는 무기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인데, 이것이 오히려 한반도에서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안보딜레마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비대칭전략을 통해 생존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개발된 비대칭 전략무기는 이제 남한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협에 대해 미국은 핵우산과 확장억지를 약속했고,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구축을 통해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정권이 집착하고 있는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킬체인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해 이를 30분 내에 탐지한 다음 선제적으로 타격하고, 킬체인의 공격을 피한 미사일들이 발사되면 그것은 KAMD에 의해 요격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북한의 위협을 확실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예상되는 비용과 부작용이 너무 크다. 군 추산으로도 2022년까지 15조 2000억을 얘기하는데, 정부는 부인하지만 미국의 MD 체제로의 편입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훨씬 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도 MD 계획은 비용 문제와 요격의 정확성이 논란의 중심이다. 또한 킬체인은 상대방의 공격능력을 무력화하는 선제공격을 기본으로 하는 전략인데, 기술적 신뢰도는 물론이고 북한도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앉아서 당할 리 만무다.

핵과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면 북한이 항복하게 되리라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다. 결국 안보딜레마에 의한 군비경쟁은 가속화될 것이다. 북한은 2차, 3차 공격능력 확보를 위해 더 많은 수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들 것이고, 이동성을 증가시키며 더 정교한 은폐에 노력할 것이다. 게다가 요격이 불가능한 북한의 주력 타격수단인 장사정포, 단거리미사일, 다연장 로켓포들에 대해서는 무용하다. 신뢰도가 보장되지 않는 섣부른 선제타격론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오히려 높이는 역설에 빠지게 될 것이다.

넷째 패러독스는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의 미묘한 관계에서 초래되고 있다. 지금까지 양 동맹은 대미 관계와 동북아의 정세변화에 따라 서로 때로는 보완재 때로는 대체재 관계였다. 물론 미국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양국이 보완재로 기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미, 미-일, 그리고 한-일 관계에 갈등이 발생할 경우 동맹의 선호도가 실제로 달라지기도 하고, 또는 선호도를 동맹국을 움직이는 압력카드로 사용했다. 한미동맹은 공동의 적과 직접 대치하고 있다는 면에서 동맹의 결속력이 강했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일 동맹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을 의식할 때는 그렇다. 또한 탈냉전 이후 한미동맹은 한국의 자율성 확보노력과 대북 위협인식의 감소로 흔들렸던 반면에, 미·일 동맹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 경비부담과 역할분담 의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미국의 동북아에 대한 최우선 전략목표는 분명하다. 패권하락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Rebalancing)' 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전략의 성패가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통한 아웃소싱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가장 원하는 바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구축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말 시도되었던 한일군사정보비밀협정의 체결 시도는 그 포석이었으며, 미국의 배후압력이 있었다. 아베(安倍晋三)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는 미국의 구상에 도움이 되는 반면, 한국의 대일강경책은 미국의 구상을 꼬이게 만든다. 미국이 한국의 입장에 정서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지만 국익의 측면에서 일본의 손을 든다. 한국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했던 가장 큰 이유다. 한국이 그렇다고 일본과 이어지는 삼각동맹에 참여할 경우 국내적으로는 여론의 반발을, 국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향후 한국외교가 당면할 가장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다섯째 패러독스는 중·미 관계에서 발생한다. 아시아 패러독스와 마찬가지로 중·미 관계 역시 경제적 상호의존도는 깊어지는데 반해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경쟁과 갈등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중국정책도 일관된 전략을 수립하기 보다는 중국위협론에 기초한 중국봉쇄와 상호의존론에 의한 대중협력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오바마가 취임 초기에 제시한 G2 개념은 중국의 커진 영향력을 인정함으로써 상호의존적인 관계증진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급부상한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 보통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협력을 촉구하는 정치수사들이 난무하지만, 양국의 전략적 목표는 수렴보다는 갈등요소가 점점 우세해지고 있다. 안정과 공존을 위해 미국이 일정 정도의 영향력약화를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본격화해서 우위를 확실히 다질 것인지는 미국의 선택이다. 반면에 미국이 주도하려는 질서에 순응하며 공존할지, 아니면 도전할지는 중국의 선택이다. 패권국가의 부침을 구조 및 지정학적 변수로 설명하는 이들에 따르면 양국의 충돌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될 수도 있다.

여섯째 패러독스는 남북관계다. 탈냉전이 도래했고 남북한의 국력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음에도 통일이나 평화공존은 없고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히 분단을 해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화시키고 상호적대감은 커졌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아킬레스건은 미·중 관계이고, 한반도 패러독스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남북관계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한미동맹에 있어 군사적 요소가 지배하고 있으며 남북은 물론이고 동북아 전체의 안보딜레마와 군비경쟁이 초래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군비경쟁의 갈등구조를 역내국 정부들이 공통적으로 국내 정치에 적극 이용하면서 배타적 민족주의와 안보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이는 다시 아시아 패러독스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물론 남북 관계개선만으로 미·중 갈등이나 아시아 패러독스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관계개선을 통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강대국들의 권력재편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함몰될 수밖에 없다. 연성이슈들에 관한 아시아국가의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는 경성이슈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미·중 갈등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처지는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구도가 재현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군사동맹 강화나 군비경쟁보다는 균형외교를 추진하고, 진영을 초월해 중첩적 전략대화를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두 초강대국의 선택과 함께 구조 및 지정학적 변수를 함께 내포한 중국의 부상과 미국 패권의 하락에 따른 복잡하고 불안정한 동북아와 한반도의 역학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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