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이 기사 제목 등을 뽑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줄여 '盧'라고 표기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가 정식으로 문제삼고 나섰다. 앞으로는 盧대통령, 노무현대통령, 대통령 등으로 표기해 달라는 주문이다.
양정철 국내언론비서관은 28일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브리핑>에 쓴 '22만명의 대통령'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그만 둔 총리가 '高'로 표기된 적이 없고, 박근혜 대표가 '朴'으로 표기된 경우도 없다. 장관이든 국회의장이든 그 어느 공직자도 마찬가지"라면서 "전직 대통령들도 '朴'(박정희) '全'(전두환) '盧'(노태우) '金'(김영삼·김대중)의 성씨만으로 대통령을 표기한 신문 제목은 전무하다"며 언론들이 노대통령을 '盧'라고 표기하는 것을 문제삼고 나섰다.
그는 특히 "이 표기 연원은 지난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두 유력 후보의 성과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 '盧-昌'으로 제목을 달기 시작한 것이 효시"라면서 "이 표기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부 신문의 '협량'에서 비롯됐다는 일각의 해석을 믿지 않지만 이런 풍토가 최근엔 방송 편집에까지 통용되고 있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양 비서관은 이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盧씨 성을 가진 분들은 지난 2000년 기준으로 모두 22만3백여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신문 제목대로만 보면 노씨 성을 가진 분들 22만명이 일제히 대국민 담화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거나 어떤 구상을 한 것으로 봐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편집자들의 글자수 함축 고충이나 편의를 알지만 언론의 생명은 정확성"이라고 전제하고 "대통령 표기 제목은 盧가 아니라 盧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음은 양 비서관이 쓴 글 전문.
***"22만 명의 대통령"**
대통령에게 '이름'과 '직책'을 돌려 주십시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해진 성(姓)은 아마 노(盧)씨일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입니다.
신문을 펼치면 하루에도 몇 번씩 '盧'가 넘쳐납니다. 그만큼 대통령은 뉴스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익숙해진 '盧' 표기가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을 지칭하는 상징처럼 돼 버렸습니다. 신문 제목은 오래 전부터 이름과 직책을 생략한 채 '盧'자 하나로 대통령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盧 담화" "盧 전화통화" "盧 구상" "盧 정치행보" "親盧-反盧"….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노(盧)씨 성을 가진 분들은 지난 2000년 기준으로 모두 22만3백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신문 제목대로만 보면 노씨 성을 가진 분들 22만 명이 일제히 대국민 담화를 했다는 얘기일까요. 또 22만 명이 같은 날 일제히 어떤 전화통화를 하거나 어떤 구상을 한 것으로 봐야 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이 22만 명의 노씨를 모두 좋아하거나(친노) 반대하는 경우(반노)도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 분들의 전화통화나 구상이 기사화 될 리가 없고 그 분들에 대한 호불호가 신문 제목거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대통령이 노씨 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줄여 '盧'로만 표기하면서, 22만 명의 다른 노씨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신문 제목에서 대통령과 같은 정치행위 행정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도매금으로 아주 따끔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진 표기를 두고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느냐고 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괜한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만 둔 총리가 '高'로 표기된 적이 없고, 박근혜 대표가 '朴'으로 표기된 경우도 없습니다. 장관이든 국회의장이든 그 어느 공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보다 훨씬 친근하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도 이름과 직업이 함께 생략된 채 성씨 하나로 표기되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생경한 이름의 어느 평범한 시민이 아무리 불미스런 일로 기사화되더라도 일단 신문에 등장하면 이름 석자가 모두 표기됩니다.
전직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朴'(박정희) '全'(전두환) '盧'(노태우) '金'(김영삼·김대중)의 성씨만으로 대통령을 표기한 신문 제목은 전무합니다.
대한민국 신문 편집사(史)에서 이제까지 성씨 하나로 특정인이 표기된 것은 아마도 노 대통령이 처음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외국에서는 이름이나 애칭으로 대통령을 표기하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호칭에 대한 문화가 우리나라와 다르고, 더구나 한국 신문에서 그런 시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표기의 연원은 지난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두 유력후보의 성과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 '盧-昌'으로 제목을 달기 시작한 것이 효시일 겁니다.
두 분이 이전 시대 유명 정치인들과 달리 영문 이니셜(DJ, YS, JP)이나 알려진 호가 없었기에, 선거 시기 후보간 대칭 차원에서 성과 이름 한 자씩을 나란히 실어 표기한 것입니다.
즉 '盧'라는 줄임표기는 당시 두 분의 대칭개념으로서만 존재가치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 후 한 분은 대통령이 됐고 한 분은 정계를 떠나면서 신문에서 관련기사를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盧'입니다. 이런 표기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부 신문의 '협량'에서 비롯됐다는 일각의 해석을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토가 최근엔 방송 편집에까지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편집자들의 고충이나 편의를 모르는 게 아닙니다. 편집을 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글자 수 하나로 넉자, 여섯 자를 함축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일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의 생명은 정확성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사들이 정확성 하나로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성의를 다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언론에 처음 등장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이름이나 직책, 나이 가운데 한 글자만 틀려도 반드시 정정을 하는 것은 정확성의 전통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대통령을 표기하는 제목은 '盧'가 아니라 '盧 대통령' 혹은 '노무현 대통령' 혹은 '대통령'으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盧'는 대통령을 지칭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노씨 성 모두를 대표하는 씨족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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