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통일, 보건복지, 문화관광부 3개 부처에 대한 조기 개각 단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제청권 행사를 거부하고 있는 고건 총리에게 다각도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고건 총리의 거부로 인해 대통령직에 복귀한 노대통령의 권위에 커다란 손상이 입게 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 총리의 입장이 워낙 단호해, 청와대를 크게 당혹케 하고 있다.
***청와대, 고건총리에게 공개압박**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3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통일부, 복지부, 문광부 등 3개 부처에 대한 조기 개각 입장을 기정사실화했다. 그간 여권 일각에서 조기 개각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처음이다. 그는 또 고건 총리를 지난 주 2번 만난 사실을 공개하면서 24일 고 총리를 다시 한번 만날 것임을 밝혀 고총리를 압박했다.
김 실장은 이날 "정무직의 경우 인사를 하려면 인사추천위, 총리 추천,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면서 "그러나 절차는 절차지만 모든 인사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 못 박아 말했다.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총리의 제청권 행사 권한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제청권 행사를 고사하고 있는 고 총리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김 실장은 또 "개각 시기는 인사추천위와 총리 제청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데, 고 총리를 사실 내가 두번 만났다"면서 "고 총리는 본인은 법리적 문제가 없지만 정서적으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게 도리가 아니잖느냐고 말하고 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2~3일이 고비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4일 고 총리를 한번 더 찾아가겠다"면서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할 것"이라며 '삼고초려'하겠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일각에서 거론되는 있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통한 편법 제정방식과 관련해선, "고 총리가 제청을 하지 않고 퇴임할 경우에도 경제 부총리가 대신 각료 제청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새 총리가 절차에 따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고 총리가 끝내 제청을 거부할 경우, 개각은 늦어지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럴 경우 개각은 새 총리의 국회 인준절차가 끝나는 다음달 하순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청와대에서는 24일 김우식 실장이 고 총리를 한번 더 면담하고, 그래도 고 총리가 고사하면 25일 국무회의가 끝난 뒤 노 대통령이 고 총리를 직접 설득하는 방안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청와대의 공개압박에도 불구하고 고 총리는 "물러나는 총리가 각료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뿐더러 결국 노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며 제청권 행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고 총리가 끝까지 고사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복지, 정동채 문광 유력시**
김 실장은 또 개각범위와 관련해선 "이번 개각은 3개 부처에 국한할 것"이라면서 "노 대통령은 전면 개각은 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몇개씩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어 "누가 어디에 가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인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당초 통일부장관으로 기정사실화됐던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원내대표 측이 당초 행정자치부장관을 희망했다가 거부당한 정동영 전의장이 그 대신 통일부장관을 희망, 최근 정동영의 통일부장관행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데 따른 반발을 감안한 발언으로 보인다. 김 전대표는 현재로서는 복지부 장관으로 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광부 장관으로는 정동채 의원이 유력하다.
한편 '김혁규 전경남지사 총리 카드는 계속 유효하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답변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고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지만 아직 사표 수리가 안된 상태다. 그 문제가 정리된 후 새 총리 문제를 거론하는 게 맞지 않냐. 고 총리는 5월29일까지가 내 임기라고 말하고 있다"며 '김혁규 총리설'이 조기에 불거진 데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집권 2기 참여정부에 쓰라린 타격**
고건 총리의 제청권 거부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난 청와대는 크게 당화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4.15총선에서 여대야소를 이룩한 뒤 당당히 대통령직에 복귀한 노대통령에게 적잖은 정치적 타격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건 총리가 이같은 제청권 거부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고건 총리가 노대통령에게 형식적 퇴임절차를 밟기도 전에 4.15총선 직후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안팎에서 즉각 김혁규 총리기용설, 정동영-김근태 입각설 등이 터져나오면서 고 총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대목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 총리가 두 달여의 초유의 탄핵사태 기간동안 국정을 이끌어온 자신에 대해 현 정권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하지 않고 있다고 불쾌해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참여정부 초기 입각시 '책임총리'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후 실제 국정 운영과정이 그렇지 못했던 점 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이번에 퇴임시까지 '허수아비 각료 제청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형식으로 폭발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서둘러 단행하는 개각이 열린우리당내 차기대권 주자들에 대한 '논공행상' 및 '견제'를 목적으로 한 정치성 개각으로 여권의 눈총이 따갑다는 점도 고건 총리로 하여금 제청권 거부를 결심할 수 있게 만든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고건 총리의 제청권 거부로 인해, 집권 2기를 스타트한 노무현 정부는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된 양상이며, 이는 앞으로 김혁규 총리 기용을 둘러싸고 예상되는 야권간의 갈등국면에서 여권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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