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한달만인 11일 말문을 텄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을 함께 올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지난 1년간 국민들이 본 정치는 혼란과 갈등의 정치, 대립과 갈등의 정치였다"며 "총선 이후에는 한국 정치의 고질들이 해소돼 나가고 극단적 대결의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전환돼 갈 것"이라는 총선후 정국을 낙관했다.
***盧대통령, 참모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자들과 등반**
이날 산행은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총선을 불과 나흘 앞둔 민감한 시기라는 점에서 참모진들은 이날 기자들과의 등반을 만류했었다고 홍보수석실 관계자가 전했다. 청와대 측은 이날 아침 7시께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과의 산행 일정을 통보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측은 이날 행사와 관련, "등반 자체가 목적이지 정치적 의미는 부여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노 대통령은 이날 두시간 반동안 등반 틈틈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전직 대통령 중 누가 가장 성공한 대통령에 근접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만 "정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며 대답을 피했을 뿐, 정치적 메시지를 전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총선후 정국 전망에 대해 "내가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정치 자체가 많이 달라지지 않겠냐"며 "정치 자체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고 상호 관계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긍정적 기대감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제일 큰 변화는 부패정치, 지역정치 이 두개 고질이 좀 해소될 것이고, 관계에 있어서도 사생결단식 대결 정치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국민들의 뜻과 정서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정치가 시도되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끝나면 혼란.갈등 극복될 것"**
노 대통령은 또 "그동안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변화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너무 고생들 많이 했다"면서 "여야, 대통령, 정당, 국민 모두 지난 한해 동안 정말 대단히 큰 혼란과 갈등을 겪어 오지 않았나"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보면 소위 분당사태가 있고, 분당을 둘러싼 갈등, 그 다음에 정치자금 수사, 정치인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이런 사태를 국민들이 전부 혼란과 갈등으로 느끼는 거고, 고통스런 정치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총선 전에는 정치권이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내지 못했다. 총선이 있으니까 정치적 이해관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될 수 밖에 없는 거다"며 그간의 대립이 지속됐던 이유를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이면 대통령, 어느 정당 지도자면 정당의 지도자 등이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시대마다 거역할 수 없는 대세, 큰 흐름이 형성되며 서로 협력과 상생의 정치, 대화의 정치의 방향으로 잡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간 우리가 겪었던 것을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짜증스러워 하는데 저는 이것이 새로운 질서를 태동하기 위한, 출발시키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라고 본다"며 "총선이 끝나면 이 모든 혼란과 갈등이 극복되고 새로운 정치의 희망을 뚜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총선 지나면 좀 숨쉬기 나아질 것"**
노 대통령은 총선이후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노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로) 법적인 연금 상태며, 지금은 총선 때문에 정치적 연금까지 돼 있다"며 "총선 지나면 그런 점에서 조금은 숨쉬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 정치활동 재개 방식과 관련, "법적인 대통령 직무 이외에 필요한 의견을 수렴한다든지 또는 비공식적인 토론 등을 열 수 있을 것"이라며 "나한테는 정치적 해금, 법적 해금 두개의 해금이 있는데 조금씩 숨통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등산로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쉬는 과정에 벤치 배열을 가르치며 "전부 쌍방향으로 되고 있다"면서 "등산로 의자 하나도 내가 지시하지 않았는데 제가 쌍방향을 좋아하니까 우리 경호실장이 그렇게 해 놓았다. 이런 게 변화라는 거다"라고 시대 변화를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은 시대가 좌우이념 대립의 시대에서 거버넌스(governance : 지배구조) 경쟁의 시대로 시대의 주제가 바뀌어 간다. 피라미드와 네트워크의 경쟁 시대다. 폐쇄적이냐 개방적이냐,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 그 다음에 힘에 의한 지배냐 합의에 의한 지배냐 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좌우는 점차점차 정책적으로 수렴이 돼 가지만 대신에 아직까지도 민주주의에 큰 경쟁이랄지 갈등이 있는 부분이 수직적 구조와 수평적 구조, 쌍방향 구조, 대화형 구조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노 대통령은 이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며 직무 정지 한달째를 맞는 답답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심경을 묻는 질문에 "시간이 자꾸 가니까, 청와대에 봄이 오니까, 바깥도 침침하면 그냥 좀 느낌이 덜할 텐데 봄이 오고 꽃이 활짝 피고 하니까 어두운 심경하고 좀 대비가 된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어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우리 비서관 하나가 춘래불사춘이라고 하더라"며 "나는 봄을 맞이하려면 심판을 두개 거쳐야 한다"면서 "그래서 요새 재판을 앞둔 피고인 심정"이라고 말했다. 두 개의 심판은 총선과 헌재의 탄핵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거역할 수 없는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부질없는 일들에 매달려서 너무 우리가 아웅다웅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든다"며 "자연의 섭리와 같이 역사에도 섭리가 있어서 몇 사람이 애를 쓰고 바둥댄다고 역사에 큰 흐름이 금방금방 바뀌겠냐는 생각도 든다"고 '뼈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날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청와대 뒤편 북악산이 산행 코스였으며, 이병완 홍보수석, 윤태영 대변인, 안연길 춘추관장, 양정철 국내언론비서관, 안영배 국정홍보비서관 등 홍보수석실 참모들이 함께 했으며, 권양숙 여사는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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