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치권-언론의 한심한 '얼짱 여성정치인' 띄우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치권-언론의 한심한 '얼짱 여성정치인' 띄우기

<기자의 눈> 참된 '여성정치 세력화'를 막는 장애물

'얼짱 여성정치인'과 '후궁 간택'.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리라 기대하는 17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여성들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말이다.

***정치권에도 상륙한 '얼짱' 바람**

며칠 전부터 스포츠 신문의 정치면을 장식하는 기사 중 하나가 '얼짱 여성정치인'에 대한 것이다.

대표적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민주당 전세연 공보팀장(26), 열린우리당 윤선희 청년위원장(28). 한나라당에서 비례대표 1순위로 영입을 추진둥인 최연소 여성박사 윤송이(29)씨 등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여성특보로 가는 곳마다 눈길을 끌었던 나경원 변호사(39)도 얼짱 중 한명이다.

외모가 빼어난 얼짱 정치인들은 네티즌 등 젊은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가가 크게 솟았다.

오락 스포츠 신문만이 아닌 일간지에서도 너도나도 정치권 얼짱들을 소개하는 등 '얼짱 바람'을 부추키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12월 정치에 입문한 새내기 정치인인 전 팀장은 벌써 인터넷에 팬카페가 생겼다. 정치 신인들이 가장 서러워하는 '무관심'의 벽을 전 팀장은 세련된 외모 덕에 훌쩍 뛰어넘었다.

이처럼 얼짱 정치인들이 세인의 관심을 모으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겨레신문은 최근 '20대 정치인, 먼 이야기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번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갑 지역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는 정현정(27)씨와 우리당 윤선희씨의 대담을 실었다. 하지만 정작 상당수 네티즌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대담 내용이 아니라 두 사람의 외모에 대한 비교로 표출됐다.

'얼짱 바람'의 대표적 부작용이다.

***"1kg 뺄 때마다 1천표씩 온다"**

총선 출마 예정인 한 여성 출마자는 "선거를 앞두고 주변에서 '1kg 뺄 때마다 1천표씩 온다'며 다이어트를 할 것을 권유한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정치권에서 외모에 대한 중요성은 여성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남성 정치인들에게도 잘 생긴 외모는 중요한 득표 요인이다. 하지만 여성 정치인들처럼 직접적이고 결정적 압력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또 이런 흐름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더 무게를 두는 '이미지 정치'와 맞물려 있다.

특히 내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얼짱 바람은 궁극적으론 얼짱 정치인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역할도 한다.

열린우리당의 윤선희씨는 '얼짱'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에 부담을 표시하면서 "얼짱이 아니라 일 잘하는 '일짱'으로 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각당의 치열한, 지명도 높은 여성 영입 경쟁**

앞서 지적했듯 이번 총선에 여성계가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다행스럽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각 당이 비례대표 후보자에 여성을 50%이상 공천하도록 의무조항으로 명문화했다. 이전에는 권고조항으로 있던 것이다. 이에 따라 5.9%에 불과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이번 총선에선 10%대에 진입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북유럽의 경우 여성의원의 비율이 40%가 넘고, 전 세계 평균은 14%다.

또 대선자금 검찰 수사 등으로 기존 정치인에 대한 강한 불신이 유권자들 사이에 팽배한 상황에서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다. 때문에 여성 신인 정치인들이 틈새를 공략, 정치권에 진출하기에 좋은 기회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각 당도 비례 대표의 5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하는 만큼 이름있는 여성들의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박영선 전 MBC 기자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대변인으로 기용됐고 김명자 전 환경장관도 열린우리당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성매매와의 전쟁으로 유명한 김강자 전 총경과 이승희 전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을 영입했다.한나라당은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의 누나인 서은경씨(아줌마가 키우는 아줌마연대 공동대표), 무조건적인 이라크 파병론자로 유명한 송영선 국방연구위원, 이온죽 서울대 교수 등이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계 내에서도 늘어난 수요 만큼 여성 정치 신인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등 단체가 중심이 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얼마 전 지지·당선운동을 벌일 여성후보 1백2명의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치권, 여성들 후궁처럼 써놓고 버려"**

이처럼 고무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마감된 각 당의 17대 총선 공천 신청 1차 접수를 마감한 결과, 여성 비율은 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16대 여성의원 중 지역구 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재희, 민주당 추미애 김경천,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등 5명에 불과하다.

여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돈과 조직에서 열세인 여성들에게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필요에 의해 여성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지만 그 때뿐이다. 막상 여성정치인이 독자적 공간을 확보, 활동하기엔 역부족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한나라당 김정숙 여성위원장은 얼마 전 '후궁간택론'을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정당간 여성 영입 전쟁에 대해 "마치 왕이 후궁에 반색하듯 이름 좋은 여성을 영입하면서 광고하고, 후궁처럼 써놓고선 다시 바로 버린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여성계가 많이 화나 있지만 (후궁으로) 간택돼 가는 이들이 있어 (여성계가) 갈라져 있다"고 자탄하기도 했다.

그는 "각 당이 여성 후보들을 발굴을 많이 하고 공천도 많이 해주어야 하지만 당선이 된 후에도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영입 경쟁에 그칠 게 아니라, 여성 정치인을 키우고 지속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이 '여성 정치 세력화'의 출발점**

'얼짱 정치인'과 '후궁 간택론'은 모두 현 정치판이 여전히 남성중심의 시각과 논리로 굴러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들은 여전히 빼어난 '외모'를 경쟁력으로 권력을 가진 남성의 '간택'을 기다리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여성정치인'은 있어도 '여성정치'까진 못 갔다는 게 현 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이번 총선을 맞아 '맑은정치 여성네트워크'뿐 아니라 '총선 아줌마 물갈이 연대'가 "육아와 교육 등 생활과 밀착한 정책을 펼칠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당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하는 등 여성 유권자들이 스스로의 이해와 요구를 찾으려고 움직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 유권자 운동이 있었지만 총선에서는 처음이다. 이런 변화는 최근 몇년간 '여성 정치세력화'를 위한 여성계의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원이 전체 의원의 5.9%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정치권에서 여성은 마이너리티다. '간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협상'과 '경쟁'을 통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갖추기 위해서는 여성 정치인, 그리고 여성계의 좀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여성 정치인들을 외모에 우선해 평가하거나 여성이라면 일단 자질을 의심하고 보는 유권자들의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 또 정치권 진입뿐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여성 정치인들에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어찌보면 이번 총선이 '여성 정치 세력화'의 출발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