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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공생' 가능했던 세계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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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공생' 가능했던 세계 그리고 싶었다"

[인터뷰]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제15권을 완간한 지금, 머리가 텅 빈 상태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년부터 매년 한 권 씩 책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여름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어디로 갈지는 미정입니다. 아무도 몰래 갈 겁니다. 혹시 모르죠. 한국에 갈지도…."
  
  일본에서 1992년부터 출간된 로마제국 흥망사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69)가 15년 간 로마제국으로의 여정을 끝내고 16일 도쿄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났다. 이날 자리는 그의 책을 국내 번역 출간해 온 한길사 주최로 마련됐다.
  
  회색 정장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꼿꼿한 자세로 모습을 드러낸 시오노는 두시간 넘게 이어진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시종일관 진지하게 답했다. 간간이 "여기 오신 기자들 중 젊어 보이는 분들이 많은데 15년 전에는 몇살이셨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제1권을 펴내면서 매년 한 권씩 15년에 걸쳐 완결하겠다고 약속한 시오노는 "당연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이 책 중심으로 생활했다"고 말했다. 그는 15년 간 200자 원고지 2만1000장 분량의 글을 썼다.
  
  오랜 기간 집필에 매달린 이유에 대해 "종교도, 음식도, 민족도 다른 사람들이 공존공생했던 로마라는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민족이 다르더라도 역량이 뛰어나면 인재로 등용했던 로마인의 개방성을 통해 공생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미다.
  
  시오노는 하나의 종교만 믿는 일신교,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세계가 된 중세 이후 양쪽 종교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면서 상대방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됐다며 "종교가 없던 때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를 생각한 것이 집필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또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상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한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옆나라와는 전쟁만 안 나면 잘 되는 것"이라며 독도문제를 예로 들었다. 일본에서 '다케시마', 한국에서 '독도'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양측의 역사인식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양국의 시선에서 문제를 분석한 책을 각자 만들어 바꿔 읽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오노는 "종교적 열광과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타협점을 찾으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린다"고 덧붙였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의 입장에서 본 로마사만 있었으니 기독교를 믿지 않는 비유럽인이 쓴 자신의 책도 독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인 시리즈'를 영어로 출간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시오노는 "다른 로마사 저서와 달리 나는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닌 로마 문명의 역사를 썼다"며 "마지막 권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을 넘어 지중해 수평선에 이슬람의 세계가 드리워진 7세기까지를 다룬 것도 로마제국의 멸망이 아닌 로마 문명의 종말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마지막 권을 쓰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냉정하게 볼 것이냐, 눈물을 흘리며 볼 것이냐를 고민했다"면서 "그 대상이 개인이 아닌 민족이라는 점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
  
  로마제국의 흥망을 통해 들여다본 리더의 중요한 자질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조직 구성원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역량, 운, 시대와의 부합성을 리더의 3대 요건으로 꼽았다"면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으면 리더가 되기 힘들며,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개, 즉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국가 흥망의 요인이자 개인에게는 재기의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눈앞의 이익만 보고 본질은 인식하지 못한 채 수단이 목적이 되면 자멸한다고 경고했다. 작은 문제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쳐버리는데, 이로인해 일본인에게 나타난 '나쁜' 결과가 바로 '내셔널리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카이사르처럼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현대국가에서 나올 수 있겠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정치인들도 거론했다. "정치가는 정치를 해야 되고 역사가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 일본의 총리가 역사를 말할 필요는 없다. 아베 총리는 나처럼 유머있는 화법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편이다. 열심히 하는데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 뿐이다. 총리와 친구가 된다면 이 점을 조언하겠다."
  
  미국에 대해서는 화살을 겨누었다. "'팍스 로마나'가 로마인에 의한 세계질서를 뜻한다면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인에 의한 독재 질서이며 미국은 진실로 세계 질서를 위하려는 의욕이 없다"고 꼬집었다.
  
  앞으로는 알렉산더에 대해 기술하고 싶지만 "그가 지나온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이 분쟁지역이어서 가 볼 수가 없다"며 "밟아보지 않은 땅에 대해 쓰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로마에 관한 집필계획과 관련해서는 "아직 예정에 잡힌 게 없다"고 밝혔다.
  
  "인간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대상이에요. 학자들은 권위가 떨어질까봐 역사를 재미있게 보려는 자세마저 거부했죠. 그 결과 그들이 쓴 역사는 재미가 없어요. 역사가 어렵다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어둡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아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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