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4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 재의를 요청한 측근비리 의혹 특검법안을 찬성 2백9표 반대 54 표로 재의결했다. 재적의원 2백72명 가운데 2백66명이 표결에 참석했으며 기권 1표, 무효 2표였다. 지난번 1차 특검법 통과때보다 25표가 늘어난 압도적 통과다.
***3야 공조 성공**
무기명비밀투표로 진행돼 정확한 찬반 분석은 불가능하나 한나라당은 표결에 참석한 1백48명 가운데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김홍신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찬성 2백표를 넘김에 따라 야3당 공조도 성공했다는 표정이다.
소속 의원 60명 중 59명이 참석한 민주당과 10명이 전원 참석한 자민련도 대부분 찬성 당론에 동참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47명의 소속의원들 가운데 44명이 참석해 반대표 몰이에 나섰으나 역부족을 실감해야 했다.
***최 대표, 휠체어 타고 표결 참석**
한편 이날 표결에는 9일째 단식투쟁중인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최 대표는 당초 동조 단식중인 이재오 사무총장과 함께 입장할 계획이었으나 “사무총장이 회의장에 먼저 가 있는 것이 보기에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2시11분 경 이 총장이 먼저 회의장에 도착했다.
이 총장은 정장을 차려입었으나 면도를 하지 않아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으며, 국회 1층 계단을 오를 때는 윤두환 도종이 박혁규 의원 등이 부축을 했다.
최 대표는 투표가 진행 중인 3시30분경 입장했다. 휠체어를 탄 최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못할 만큼 기력이 쇄진한 모습이었다. 최 대표는 정문으로 들어가자는 주변의 권유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본회의장 옆문으로 입장해 한 표를 행사했다.
표결 직후 최 대표는 중앙 통로에 길게 늘어선 한나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당사로 향했다.
최 대표는 “처음 의결 때부터 3분의 2 가결로 찬성된만큼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실시는 일관된 국민의 뜻”이라며 “이를 계기로 대통령 겸허한 자세로 국정쇄신을 단행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박진 대변인이 전했다.
최 대표는 “그동안 국회가 중단된데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며 “오늘부터 즉시 국회 정상화하고 예산 등 민생현안을 위해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대표는 당초 본회의 직후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늦춰 5일 오전 단식을 마치고 서울대병원에 입원, 1주일 이상 요양키로 했다. 한나라당이 원외투쟁의 일환으로 지난달 28일 진행중인 ‘특검쟁취, 정치개혁, 나라구하기 대장정’이 5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 집결키로 함에 따라, 최종 보고를 받고 단식을 끝맺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단식투쟁이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뿐 아니라 총체적인 국정쇄신을 관철하기 위해 시작된 만큼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고 해서 곧바로 단식농성을 끝낼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국회마비 사과” vs “대통령의 횡포”**
표결에 앞선 찬반 토론에서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은 “특검법안은 밝혀야 할 비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비리를 덮고자 하는 것”이라며 “증권가 정보지의 뜬문으로 법안을 만든 만행”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 유시민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한나라당은 10일 씩이나 국회를 마비시킨데 대한 사죄를 해야한다”며 “홍사덕 총무는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전제하에 국회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의원과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에 장내에 있던 야당 의원들은 “마이크 꺼”라고 하는 등 야유를 보냈으며, 박관용 국회의장도 거듭 “의사진행 발언만 하라”고 제지했다.
찬성토론자로 나선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은 “국회의원 3분의 2가 찬성한 것을 다수당의 횡포로 폄훼하는 것은 유권자의 2%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의 횡포”라고 역공했다. 최 의원은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한 진정한 이유는 자신의 연루 사실이 드러나면 탄핵까지 갈까봐 두려운 것”이라며 압도적 찬성을 호소했다.
민주당 양승부 의원도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특검법을 재의결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며 “한나라당과 공조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것은 공조가 아니라 여론을 존중한 독자적인 결정”이라고 민주당의 찬성당론을 재확인했다.
***정국 주도권 다툼 격화 전망**
정국 파탄의 불씨였던 특검법안이 재의를 통해 가결됨에 따라 국회는 공전 열흘 만에 정상화됐다. 노 대통령도 측근비리 특검법을 지체없이 공포해야 한다. 법안이 정부에 이송된 후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하게 된다.
이처럼 특검법 재의논란은 마무리됐으나 특검 수사와 검찰 수사의 병진 속에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정국 주도권 다툼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별반 효력 없이 되돌아온데 대한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검법이 규정한 수사대상은 최도술, 이광재, 양길승씨 등 3명에 맞춰져 있으나, 이영로씨와 김성철 부산상공회의소회장,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이 대상에 포함돼 있어 전방위 수사가 가능하다.
더욱이 청와대는 특검문제를 포함해, 이라크 추가파병 등 중대 현안을 12월 중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국정운영의 불안정성이 더욱 가중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연말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통해 국정운영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야3당 공조를 이끌어낸 한나라당은 특검 쟁취를 자축할 겨를이 없다. 특검법 통과로 검찰이 한나라당 대선자금 비리의혹에 대한 마무리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 돼 한나라당에 불리한 수사결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또한 그동안 ‘민생을 볼모로 한 파행국회’라는 여론의 비판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예산안이나 민생현안 처리를 주도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부담도 따른다.
민주당은 국회정상화 카드를 내세워 특검 정국을 돌파한 조순형 체제의 위상이 확립, 한나라당, 열린우리당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게 자체평가다.
그러나 특검 재의 몰표가 한나라당과의 야합으로 비쳐질 경우 당 안팎의 역풍에 휘말릴 소지가 없지않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의혹까지 포함한 새로운 특검법안을 제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3야 공조의 부당성’을 적극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당 내에선 특검 재의를 계기로 야3당과 우리당의 차별성이 드러난 만큼, 이를 총선 전선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사 영입과정에서의 잡음, 소장-중진간 당내 주도권 다툼, 정체된 당 지지율 등 복합적 난국 속에 이렇다 할 돌파구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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