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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애들요? 딴나라 사람이에요"

[강남 르포] 불안의 근원은 '빈곤 세습화'와 '상대적 박탈'

최근 다시 강남 일대에 납치사건 및 폭행, 강도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 이어 강남 거주 초등,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협박성’ 편지까지 출현하는 등 아파트 투기를 계기로 강남에 대한 적개심이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강남 8학군 학생 죽여버리겠다” 협박편지**

지난달 31일 강남의 모 초등학교에는 ‘백청산’이라는 이름으로 A4용지 2장 분량의 협박편지가 배달됐다. 편지에는 “지방대를 공대를 졸업하고 제대한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취직을 못하고 있다”며 “이 나라는 일류대만 찾는 세상이다. 강남 8학군 지역에 다니는 학생들을 다 죽여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백청산’은 또 “강남 부동산은 폭등하고 정치인은 다 부패했다”며 “국회의사당과 타워팰리스도 폭파하겠다”고 적었다. 이같은 협박 편지의 직접적 동인이 강남 아파트 폭등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날 강남의 한 유치원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고, 또다른 초등학교에는 “음식물에 독극물을 넣어 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이같은 테러 위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지난 9월에도 경찰 112 신고전화에 폭발물 협박이 들어와 경찰이 도곡동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 적이 있다.

***잇따른 강남 강력사건 발생**

단순한 협박뿐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6월 강남 일대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납치사건’이 최근 다시 일어나면서 강남 거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날치기, 퍽치기 등 강도 사건도 최근 늘어나 경찰이 바짝 긴장하고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나섰다.

특히 최근의 강력 사건들이 문제되는 것은 유흥가가 아닌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나 주택가 골목 등 일반 거주 지역에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경찰은 최근 강남 지역에 강력 범죄들이 증가하는 데 대해 “강남이 잘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부유층이 많다”는 인식이 범죄 동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52개 중대의 병력을 동원 방범을 강화키로 했고, 도심 범죄 의심자에 대한 검문검색도 강화했다.

***불안한 강남 주민들**

최근 이러한 ‘강남 적개심’에 대해 강남 주민들은 “어느 사회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며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신이 표적이 되지나 않을까 경계하는 눈치다.

지난 1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4일 앞두고 ‘집중탐구’ 강의가 한창인 강남 도곡동 일대 학원가에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대의 승용차가 길게 늘어서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3 딸을 기다리고 있던 주부 송모(47)씨는 “원래 학원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직접 왔다. 수능시험이 얼마 안남아 딸을 편하게 해주려 왔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요즘 다시 납치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서 딸이 불안해 할까봐 요즘은 매일 차에 태워 등-하교와 학원길에 태우고 다니고 있다”고 불안한 속내를 토로했다.

밤길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여대생 최미영(21. 성균관대)씨는 최근 “집에서 늦게 다니지 말라고 성화여서 요즘은 11시도 채 되기 전에 집에 들어가는 편”이라며 “사실 요즘은 밤에 택시를 타기 꺼려지는 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북 노원구에 거주하며 강남 역삼동으로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 강모(28)씨는 “주로 친구들과 강남역이나 압구정동에서 만나 놀았는데 요즘은 종로나 대학로에서 주로 만난다”며 “강남 사는 친구들도 있고 강북에 사는 친구들도 있는데, 요즘은 강남 사는 친구들도 강북에서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딸을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 밤 1시에 부모가 차를 몰고 나오는 경우까지 목격되고 있다.

***커져만 가는 상대적 박탈감**

지난 1일 도곡동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경찰의 검문을 당한 류모(19. 성동구)씨는 “재수하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검문을 당했는데 기분이 나쁘다”라며 “솔직히 말해 강북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경찰은 콧방귀도 안끼었을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도곡동 ‘쪽집게’ 학원에 아들을 마중나온 주부 양모(52. 용산구)씨는 “10년전만 해도 시동생이 우리 단지에 살다가 시동생이 강남에 있는 회사로 옮겨 개포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요즘 집값이 뛴 것을 보면...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어찌 맘이 편할 수 있겠냐”고 위화감을 토로했다.

아이들의 말은 더욱 적나라했다. 양모씨의 아들 주모(18)군은 “강남애들요? 딴나라 사람이에요. 애들 입고 다닌 옷, 신발 다 달라요. 딱 보면 쟤가 강남애인지 강북애인지 다 알아요”라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강남-강북간의 위화감을 "남북문제가 심각하다"라고 표현한 지 이미 오래다.

***'빈곤의 세습화' 심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이 특정 지역에 대해 표출되는 것이 최근 부동산 가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강남지역이 '부'의 상징이 되면서 구체적 표적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지역적 갈등이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소비 패턴, 문화적 차이 등으로 내재화돼 막연한 적대심으로 강화돼 젊은 세대에서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근 아파트 폭등이 초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곤의 세습화'가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정치-사회적 우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서울시민 가운데 40%가 아직 자그마한 연립주택조차 갖지 못한 상태"라며 "이들에게 구매력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리 아파트를 많이 지어 공급한다 할지라도 집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텐데 최근의 아파트값 폭등으로 인해 이같은 모순이 한층 심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서울시민의 40%에 달하는 무주택자가 집을 갖기란 더욱 힘들어졌고 그들의 자녀들 역시 집을 장만하기 어려워지는 '빈곤의 세습화'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최근 강남에 대한 적개감 확산도 이같은 빈곤의 세습화가 초래한 결과가 아닌가 우려된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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