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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5년도 못버텨"

<현장 이야기> 화물연대 경인지부 총회가 있던 날

지난 4일 화물연대 경인지부 총회가 열린 서울대 학생회관. 총회가 잠시 휴회되는 사이 지회별 토론 시간이 있었다.

"백기 들고 항복하면 노조는 분명 탄압을 받을 것이다."
"지더라도 명분과 실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 백기를 들면 모두 잃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도 물러설 길이 없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상태에서 대립만 있는 상태다. 여기서 포기하면 무엇이 남겠는가."
"추석때까지는 (파업을 계속할) 맘이 있다. 조합원 단결시킬 수 있도록 연락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하지 않겠나."

부산에서 업무에 복귀한 컨테이너 위수탁 지부 조합원들이 운송업체로부터 배차 거부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면서 터져나온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노성이었다.

<사진1> 삭발

***"추석때까지라도 하자"**

하나같이 검게 그을린 얼굴, 핏줄선 손등과 팔뚝, 3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부터 60대의 반백의 노인까지 모여 있는 조합원 들 중 "나이가 좀 들어보이죠? 원래 화물 운전하는 사람들은 그래요"라며 멋쩍은 미소를 띄우는 조합원 한 명은 기자에게 "무거운 짐을 많이 들고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릎이고 손목이고 허리고 성한 곳이 없어 일찍 늙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요즘 가장 큰 불만이 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상기된 표정으로 "저기 카메라들 백날 들고 다니며 찍으면 뭐합니까? 우리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오고 우리를 무슨 악의 집단인 것처럼 말하는데 저 테이프 나중에 다 경찰 정보과로 흘러들어가 우리 잡아가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흥분속에 순박함까지 엿볼 수 있었다.

38세의 그에게 예순은 훌쩍 넘은 듯한 반백의 조합원 한 명이 다가왔다.

"이씨, 나 밤에 잠깐 내려가서 차 좀 빼면 안될까?"라고 볼멘 목소리로 슬며시 물었다.
"앞뒤로 다 박아놔서 차 빼기 힘들텐데"라며 "내 차는 차적 조회해서 찾기 힘들어요"라고 말을 돌리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최근 운송회사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어 차량을 압수해간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이를 걱정한 것이다.

기자는 대화상대를 바꿔 차를 걱정하는 조합원에게 파업이 길어지고 있는데 생계비는 어떻게 조달하냐고 물었다.

"마이너스 통장이 이제 한 천은 됐을거요"라고 대답하는 그에게 여대생 한 명이 지나가자 담배를 깊게 내쉬며 "우리 딸도 대학교 3학년인데 아빠 생각해서 이번 학기 휴학한다는 걸 카드빚 내서 등록시켰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파업한다고 집에서 쉰 날이 많아 딸과 이번학기 등록 문제로 싸우기는 했어도 처음으로 오랫동안 얘기를 많이 해 본 것 같다며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처음 보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털어 놓는 것을 보니 가슴 속에 답답함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신원이 공개되는 것은 한사코 반대했다. 딸이 대학에 다니고 아들도 군대에 있어 불이익이라도 갈까봐서라며 그냥 자기를 '서씨'라고 소개했다.

<사진2>삼삼오오 모여 있는 조합원들

***"예전엔 일한 만큼 벌수 있어 좋았지"**

그는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쉰 여섯'이라고 했다. 운전을 시작한지는 20년 남짓 됐는데, 그래도 10년 전에는 '추레라'가 고소득 직종이었다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도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화물차를 몰기 시작해서 고속도로에서 새우잠을 자며 개미처럼 죽어라고 차만 몰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IMF이후로 사정이 급변했다고 한다. 그는 대형운송회사의 고용 운전사였는데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나이가 많아 1순위로 퇴직금 대신 차를 받고 지입차주가 됐다고 한다. 당시 그렇게 지입차주가 된 화물차가 많고,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뀌어 차가 많이 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 때는 '내차'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은 몰랐지"라며 "그 이후로 신기하리만치 저축해 놓은 돈을 다 까먹었다"고 말했다.

***"이대로는 5년도 못 버틴다"**

그러던 중 화물연대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주위 동료들이 권유해서 화물연대에 가입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다 가입하니 자기도 스티커 사서 차 문에 붙이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번 파업에 대해 '복귀'냐 '파업'이냐를 묻자 의외로 대답이 명확했다.

"지난 5월 파업할 때는 대단했지. 이렇게까지 우리 힘이 대단한지 몰랐죠. 그 때 외운 '파업가'를 그 이후에도 운전하면서 흥얼거렸거든. 화물차 모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억세요. 그렇다 보니 끈끈한 동료애나 정이 많아요. 힘을 모아야지. 근 10년 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여기서 이도 저도 안되면 이대로 가다가는 5년도 못 버텨."

20여년간 화물차를 몰며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지금은 무릎이 안좋고 힘이 부쳐 부산같은 장거리는 엄두도 못낸다는 그는 "딸 시집보내고 아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며 다시 긴 한 숨을 내쉬었다.

***깊은 주름 속에 파업의 피로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이**

반백의 머기칼과 검고 깊은 주름 속에 긴 파업으로 인한 피로가 엿 보였지만, 그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를 쉬 피로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친한 후배로 보이는 조합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서형, 이거 하루에 적재함을 서너번 씩은 들었다 놔야 몸이 풀리는데 이거 너무 오래 쉰 것 같아"라며 가뜩 우울해 보이는 서씨에게 환한 미소를 던지며 농을 걸었다.

<사진3>집회

지회별 토론회가 끝나고 다시 시작된 화물연대 경인지부 총회에서 투표자 4백41명 중 4백19명이 '끝까지 가자'에 표를 던졌다. 후끈한 열기가 달아오른 서울대 학생회관에 줄을 지어 앉아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며 '파업가'를 부르는 조합원들 사이에 '서씨'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물연대는 5일 저녁 파업 종료와 복귀 여부를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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