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스로 원해서 앞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세상은 그 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자 하는 우리가 그 속 깊숙이 들어가 변화시켜 나가야 할 현장입니다."
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싸움의 일선에 언제나 우뚝 서 계시던 김승훈 신부가 2일 새벽 2시35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향년 64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전 명동성당으로 옮겨졌으며, 오는 4일 명동성당서 장례미사를 가질 예정이다.
***"모든 필름이 정지된 것 같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시위 현장에서 별세 소식을 접한 고인의 절친한 벗 문규현 신부는 "모든 필름이 정지된 것 같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문 신부는 "김승훈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30년을 이끌며 끊임없이 헌신한 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도 고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유해가 안치된 명동성당으로 서둘러 향하던 길에 본지와의 통화에서"너무 착잡하다"고 말했다. 김승훈 신부는 1987년 전두환 신군부의 붕괴를 가져온 고 박종철군 고문은폐.축소 조작사건때 이를 앞장서 폭로하고, 그 뒤에도 박종철 기념사업회장을 맡아왔던 까닭에 박정기씨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였다.
박정기씨는 "신부님이 그동안 많은 문제들을 종교적 사회적 입장에서 기여를 했는데 막상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군사독재자들이 자기들의 아성을 키워나가려 하는 것을 김 신부님께서 종철이 죽음에 대한 진상을 폭로해 무너뜨린 것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인간다운 존엄을 되찾기 위한 노력,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신음과 호소에 귀 기울이시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하고자 노력하셨다"며 고인의 별세를 안타까와 했다.
***노동 인권 통일운동에 몸바친 30년**
고인의 생전 모습은 말 그대로 '참 성직자' 바로 그것이었다.
193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한 고인은 해방이 되자 부모님을 따라 남으로 내려왔다. 서울 성신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직자의 길을 걷던 고인이 역사현장의 일선에 나선 것은 인혁당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인혁당 사건의 '조작성'을 폭로한 지학순 주교가 1974년 9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 김승훈 신부 등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한 신부들은 그 유명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들어 그후 30년간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의 기둥역할을 했다.
70~80년까지 동대문성당에서 재임했던 고인은 동일방직 사건의 여공들을 비롯해 노동계 등 각계의 핍박받는 이들을 끌어안았고, 1976년에는 함석헌옹, 문익환목사, 김대중씨 등과 함께 3. 1 민주구국선언을 한 일명 '명동사건'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1987년에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은폐 축소조작 사건을 폭로해 그후 6월 민주화항쟁을 촉발시킴으로써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연장 음모를 파괴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기도 했다.
고인은 민가협, 범민련 등 단체의 활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임수경씨 방북 당시에도 당초에는 자신이 가톨릭신자인 임수경씨를 곁에서 동행하겠다고 우겨 주위사람들을 애먹이기도 했 것으로도 알려졌다. 험한 일은 반드시 자신 몫으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또한 단병호 민주노총위원장 등이 옥고를 치루고 있을 때에는 이들의 석방을 위해 청와대 등으로 동분서주하기도 했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는 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때문에 고인에겐 언제나 "사회정의와 민주화 운동의 선각자", "거물급 재야인사", "정치하는 신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를 지근에서 지켜봐온 신자들이나 그의 도움을 받았던 가난한 이들은 그를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라 불렀다.
박노해 시인이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 자신의 석방을 위해 힘써준 김승훈 신부를 위해 노래한 시를 소개하며 고인의 영면을 빈다.
***"우리 신부님은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스스로 꽃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김승훈 마티아 신부
제 몸을 때려 울리는 종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 귀를 만들지 않는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목수는
자기가 살기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제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어두웠던 지난 시대에 젊음을 다 바치고
지금 시린 눈빛으로 말없이 앞을 뚫어보시지만
우리 신부님은 과거를 내세워 오늘을 살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흙과 뿌리를 보살피지만
스스로 꽃이 되고 과실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모두가 웃으며 오실 길을
변함없이 젖은 얼굴로 걸어갈 뿐이다.
오늘
새벽에 길을 떠난다.
참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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