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구구장에서 삼성과 LG사이에 일어난 빈볼시비에 대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는 11일 주먹다짐을 했던 이승엽(삼성)과 서승화(LG)에게는 2게임 출장정지와 3백만원 벌금 조치를 내렸고 김응용 삼성 감독과 이광환 LG 감독에 대해서도 이틀 연속 빈볼 시비로 인한 경기 중단사태에 지휘 책임을 물어 각각 5백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상벌위원회의 조치로 삼성과 LG의 빈볼시비는 일단락됐지만 야구계에서는 삼성과 LG 덕아웃이 서로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작전구사로 시비의 단초를 제공했고 선수들은 부상의 위험이 있는 팔꿈치에 보복성 투구를 했다는 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빈볼시비는 야구판의 악습**
9일 삼성과 LG의 경기에서 이승엽과 서승화의 주먹다짐이 있은 후 10일에는 삼성과 LG의 투수 공히 양팀의 주포인 김재현과 마해영의 팔꿈치를 겨냥한 보복성 투구를 했다. 전날부터 계속된 빈볼시비가 어느 팀의 잘잘못인가를 따지기 전에 두 팀의 투수들은 부상의 위험이 큰 팔꿈치에 고의성 투구를 한 것은 '동업자정신의 실종'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또한 삼성의 김응용 감독과 LG 이광환 감독도 상대팀을 감정을 자극하는 번트와 고의사구 등의 작전과 엉뚱한 투수기용으로 선수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빈볼시비를 부추겼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흔히 '브러시백 피치(Brushback Pitch)'로도 불리는 빈볼은 선수들의 감정이 격해졌을 때나 라이벌간의 대결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으로 야구문화의 단면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경기장폭력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빈볼시비는 야구판의 악습으로 그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며 이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지만 언제나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해피엔드로 끝난 마리찰-로스보로 사건**
빈볼시비로 인한 폭력사태를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사건은 1965년 8월 22일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이다. 당시 두 팀은 내셔날리그를 대표하는 두 투수 샌디 쿠펙스와 후안 마리찰을 등판시켜 명승부가 예상됐다. 하지만 자이언츠의 후안 마리찰은 다저스 타자에게 빈볼성 투구를 던졌고 다저스 선수들은 이에 흥분했다.
후안 마리찰이 타석에 들어서자 다저스의 포수 존 로스보로는 고의적으로 마리찰의 얼굴에 바짝 붙여서 공을 투수에게 던졌고 마리찰은 급기야 배트를 들고 로스보로를 가격해 14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상처를 남기게 했다.
뉴욕에 연고지를 두고 있을 때부터 내셔날리그의 앙숙관계였던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이 사건은 결국 양팀 벤치멤버들이 모두 합세하는 난투극으로 변모해 14분 동안이나 계속됐고 당사자인 마리찰은 8게임 출장정지와 당시로서는 큰 액수는 1천7백50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마리찰과 로스보로는 미국야구계를 뒤흔들었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 친구사이가 됐다. 마리찰과 친구가 된 로스보로는 후문에 의하면 '이 사건의 불명예 때문에 후안 마리찰 투수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까지 갖게 됐다'고 전해진다. 로스보로는 마리찰의 이미지개선을 위해 마리찰의 조국인 도미니카를 방문해 같이 자선활동을 했고 LA 다저스 OB 경기에서 서로 다정하게 사진을 찍으며 후안 마리찰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언론은 우여곡절끝에 1983년 후안 마리찰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자 '로스보로와 마리찰 사건은 결국 미담으로 마무리됐다'는 표현을 쓰며 두 선수간의 지난 얘기를 대서특필했다.
1997년 부정배트시비, 2002년 조인성(LG)과 배영수(삼성)의 몸싸움에서 이번 사건까지 그라운드에서 자주 격돌한 삼성과 LG는 1965년 메이저리그사상 가장 유명한 빈볼시비를 벌였던 LA와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확실한 팬층과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팀이다.
삼성과 LG는 8월 22일부터 잠실 3연전을 펼치게 된다. 삼성과 LG는 그라운드에서 폭력배들과 같이 배트를 들고 싸움을 했던 마리찰과 로스보로가 사건이후 사진 속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라이벌 의식은 야구규칙에 입각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만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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