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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으면 개혁은 끝이다"

<기자의 눈> 리콴유에게서 청와대가 배울 점

"호미로 막을 것을 이젠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됐다."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향응 파문'이 청와대의 '축소은폐' 의혹으로 번져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공통된 목소리다.

양자는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참모 한 사람의 '부적절한 처신'의 문제냐, 청와대의 '의도적 거짓말'의 문제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직기강을 다잡아야 할 민정수석실이 논란의 당사자가 됐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청와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사회가 가학적, 집단적 테러리즘에 빠져있다"?**

따져보면 양 전 실장의 '향응' 사건은 엄청난 규모의 비리 게이트가 아닌 이상, 민정수석실이 조사 결과만 충실하게 발표했더라도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매듭지을 수 있었다.

양 전 실장이 나이트클럽 소유주인 이원호씨를 4월 혹은 지난해 11월에 이미 만났었는지, 정화삼씨 외에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친구가 동석했는지 등은 그 자체로 상황을 크게 악화시킬만한 것은 아니었다. 조사 결과에 이를 한마디 덧붙여 발표했더라도 애당초 언론이 몇날 몇일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질만한 '꺼리'가 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어쩌면 조사내용을 한점의 누락 없이 솔직하게 발표하고 양 전 실장의 과오를 호되게 질책했다면, 일벌백계의 원칙에 입각한 청와대의 추상같은 공직기강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일부 언론에 '의도적인' 의혹 제기가 있었다 할지라도, 화를 자초한 쪽은 청와대, 좁게는 민정수석실의 안일함에 있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다.

그런데도 문희상 비서실장은 8일 "민정수석실은 그 권한에 걸맞게 조사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항변했다. 문 실장의 말을 전한 조광한 부대변인은 "이쯤 했으면 (청와대의) 도덕적 수준을 상당히 올리는 반면교사가 됐으리라 생각한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나, 도덕적 수준을 올리기에는 아무래도 때를 놓친 느낌이다. 특히 조 부대변인이 "잘못한 것만 비판하고 처벌하면 되는데 미주알고주알 들춰내는 등 우리 사회가 가학적, 집단적 테러리즘에 빠진 것 같다"고 말한 대목에는 과오에 대한 자성보다 언론의 십자포화에 대한 '억울함'만 짙게 뭍어있을 뿐이다.

***"신뢰를 잃으면 개혁은 끝이다"**

싱가포르를 오늘의 부국으로 만든 리콴유 전 총리는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절친한 친구가 선처를 호소했을 때, 이를 악물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후 여론의 매서운 질타 앞에 그 친구는 결국 자살해 버렸다. 리콴유에겐 이 사건이 오랜 세월 동안 아픈 기억으로 가슴에 남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리콴유는 훗날 그 사건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 친구는 고작 1백만 달러의 뇌물 스캔들로 자살까지 해야 했는데, 아마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 벌어준 돈은 그 수백 배는 되었을 것이다. 정말 유능하고 좋은 친구였기에 그가 내게 와서 선처를 호소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거절해야 했다. 그런 매서운 각오 없이 부정부패 척결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30년 동안 국민들이 나와 정부를 신뢰해 준 것 같다. 신뢰를 잃으면 개혁은 끝이다."

청와대는 지금 양 전 실장이 지난해 11월에 이원호씨를 만났는지 아닌지를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제2의 옷로비 사건이 되는 게 아니냐"는 최악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의 경중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노 대통령의 몫이지만, 자기반성적인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할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획기적인 비서실 개편이든, 읍참마속의 문책인사이든 요체는 국민들의 도덕적 믿음을 회복하느냐에 있다.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로서는 "신뢰를 잃으면 개혁은 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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