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촘스키는 지난 1월 세계사회포럼(WSF) 연설에서 브라질의 저 유명한 '무토지농민운동(MST)'에 대해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흥미진진한 대중운동이다. 이 운동이 WSF와 어우러져 합의와 연대, 상호부조가 생겨나면서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고 극찬했다.
MST란 무엇인가. 극소수의 자본가들에게 땅을 빼앗겨버린 브라질 농업노동자들이 농장을 무단으로 점거해 스스로 경작·생활하면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노동자·농민들의 빈곤을 심화시켜 최빈층 40%가 경작지의 단 1%만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싸움보다 생존이 급선무였던 브라질 농민들은 경작 그 자체를 싸움으로 삼았다.
***'변이'가 아닌 '대안'을 위해**
세계화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를 위한 투쟁은 WTO 각료회의나 G7 정상회의가 열리는 도시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것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노출된 세계 민중들은 저항과 생존, 그리고 미래를 위한 대안이 공존하는 운동을 택해야 했다. 그것이 MST였고,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브라질 쿠리티바 시의 생태도시 실험이었으며, 쿠바의 유기농업 장려정책, '지속가능한 칠레' 프로젝트 등이었다.
<책표지>
대안 제시를 중심으로 한 반세계화 운동의 이론과 사례, 논리를 집대성한 책이 나왔다. 제목은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세계화국제포럼 지음/이주명 옮김/필맥 펴냄/392쪽/1만5천원).
세계사회포럼의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가 아니라 '더 나은 세계(A Better World)'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세계화 추세에 대해 단순히 비판하거나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파괴, 저항, 반대의 초기단계를 거쳐 대안제시로 나아가는 것은 사회운동이 일반적인 경로다. 그러나 견고한 기존 질서 위에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대안을 표방하며 나타났다가 아무런 함의도 주지 못한 채 '변이'로 사라져갔던 수많은 운동들은 이를 반증한다. 기존 질서가 세워진 시간보다 더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각오해야 한다.
***반세계화 대항운동 이론서이자 지침서, 사례집**
반세계화 대안운동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대안은 정말로 지금보다 더 나을까를 확인해 보는 것이 이제는 필요하다.
이 책을 지은 세계화국제포럼(IFG)은 반세계화 진영을 대표하는 60여개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을 망라하는 연대의 네트워크다. '지구의 친구들' '제3세계 네트워크'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 등 국내에도 알려진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고 미국 소비자운동가 랄프 네이더와 <노동의 종말>의 제레미 리프킨도 회원이다.
<사진>
월든 벨로, 헬레나 노르베르크-호지, 반다나 시바, 존 캐버나프, 사라 앤더슨 등 반세계화운동의 쟁쟁한 핵심 이론가 19명이 지난 1999년부터 3년간 공동 저술한 이 책은 따라서 반세계화 운동의 결정판이다. 기업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지속가능한 사회 조직화의 10가지 원칙을 소개한 전반부를 보면 반세계화 운동의 이론서이고, 에너지와 수송, 농업과 실량체제 등에 관한 대안 운영체제를 소개한 후반부는 하나의 지침서이며, 책 사이사이에 상자글로 처리해 놓은 사례모음은 일종의 매뉴얼이다.
한 사람이 쓴 듯 시종 흐트러짐 없이 전개되는 논리는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 쓰여졌는지를 입증한다. 같은 이슈를 두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진 운동의 중간 종합 보고서로 손색이 없는 이 책을 통해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확인, 가늠해 보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출신의 이주명씨가 출판운동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번역하고 출판해낸 첫번째 작품으로 시민운동, 대안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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