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새로운 핵실험장이 발견됐다는 뉴욕타임스의 1일자 보도는 북핵문제에 대한 향후 대책을 논의할 한-미-일 비공식 3국회담과 미-중 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기 상황임을 암시하는 새로운 정보를 내세워 자신들의 강경한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전형적인 '정보 흘리기' 수법이 또 나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경수로 공사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둘러싼 한미일 3국의 미묘한 시각차를 극복하고 공사 중단과 의장성명 채택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만장일치의 찬성이 필요한 의장성명 채택을 거부하려는 듯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일 미군 정찰기와 북한 전투기들의 조우 사건을 담을 비디오를 미 국방부가 전격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 반응 엇갈려**
핵실험장 보도와 관련한 정부 당국자들의 반응은 '금시초문'이거나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는 전혀 상반된 것이다.
CIA가 최근 수주 동안 북한 핵실험 장소와 관련한 정보를 한국.일본과 공유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우리 국방부 쪽 정보 당국자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태도다.
외교통상부 쪽 관계자들은 정보 전달 사실을 부인할 뿐 특별한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한 당국자는 "어느 선에서, 어떤 내용이, 어떻게 전달됐는지 전혀 모른다"면서 "내가 그런 정보를 보고받거나 전달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외교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미국과 정보 공유는 계속되고 있지만 정보 사항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만 말했다.
이같은 반응과는 달리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라는 당국자들도 있다. 한 당국자는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평북 구성시 용덕동은 한미 양국이 지난 90년대부터 핵실험 장소로 추정했던 곳으로 전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면서 "보도 내용은 그야말로 추정이지 확인된 내용은 전혀 없고, 고폭실험 증거가 발견된 것도 아니다. 핵탄두가 개발 가능하다는 보도 내용도 단순한 추정일 뿐이다"고 말했다.
***'용덕동'은 어디에**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핵실험장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점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앞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한 당국자는 그 위치를 평북 구성시 용덕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영덕동(Youngdoktong)'이란 지명은 북한 지도에 없고 '평남 숙천군 용덕리' 또는 '평남 증산군 용덕리'가 맞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쪽에서는 평북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평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까지 삽입해 황해도 해주 부근을 영덕동이라고 가리키면서 "평북 영변의 핵시설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도 뚜렷치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보도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김근식 교수는 "98년 금창리 핵시설 의혹과 유사하다"며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강요하기 위한 전통적인 '언론정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기로 했다는 올해 초의 보도도 언론이 흘려서 분위기만 잡고 미국 정부는 공식 확인을 안했다"며 "이번 보도 역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우리 정부로서도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다. 아무것도 없던 것으로 판명됐던 금창리 핵시설 의혹이 대표적인 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이같은 설명은 "금창리 핵시설때도 이런 식의 보도가 많았다. 그 이상은 노 코멘트"라고 말하며 분위기 조성용일 가능성을 암시했던 한 외교 당국자의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과도 일치한다.
***미 국무부, 관련 논평 거절**
미 국무부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정보관련 사안은 논평하지 않는 게 관례"라며 일체의 언급을 삼갔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하고 "본인은 그같은 보도가 우리의 정보사항인지 아닌지 등에 관해 논평을 하거나 또는 언론간 보도를 비교논평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은 북한이 핵 실험에 나서는 것을 핵 상황을 악화시키려 할 경우 취할수 있는 최우선 조치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한 주한 외교소식통은 2일 "미국은 북한이 일련의 핵 관련 조치를 악화시키려 할 경우 가장 우선적인 조치는 핵 실험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북한의 지형이나 입지조건이 핵 실험을 하기에 상당히 적합한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영변이나 금창리를 '핵시설'로 일컬은데 반해 뉴욕타임스가 이번 용덕동 시설을 '핵실험장(nuclear testing site)'이라고 직접 지칭한 것은 이같은 언급에서 드러난 미국의 인식에 비춰볼 때 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부채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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